2021년 봄, 나는 우리 회사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확신으로 이사회 앞에 섰다. 슬라이드 한 장에는 클라우드 마이그레이션 5개년 로드맵이 그려져 있었고, 마지막 장에는 “온프레미스 서버실 철거”라는 굵은 글자가 선명했다. 박수를 받았다. CFO 이상호 전무는 나를 보며 “드디어 우리도 디지털 전환이군요”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자랑스러웠다.
지금은 2026년 3월이다. 나는 같은 이사회실 앞에 다시 서 있다. 이번 슬라이드 마지막 장에는 “온프레미스 복귀 3개년 계획”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박혜영 팀장이 복도에서 나를 잡은 것은 어제 오후였다.
“재현 씨, 이번 보고서 숫자 맞아요? 5년 동안 우리가 클라우드에 쓴 돈이 진짜 이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는 정확했다.
“월 2억 4천이 넘어간 게 작년 3분기부터예요. AMZN 리저브드 인스턴스 요금이 두 번째 인상됐을 때였죠. EC2 On-Demand는 그전에 이미 18퍼센트 올랐고요.”
박 팀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물었다.
“처음 설계할 때,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알았다고 하기에는 그때의 나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예측치가 달랐어요”라고 했다.
2021년에는 다 맞는 것처럼 보였다. 클라우드는 탄력적이었고, 확장은 버튼 하나였으며, 서버 관리자를 더 뽑을 필요도 없었다. IDC 입주 비용도 아꼈다. 세계 곳곳의 기업들이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 흐름 위에 올라타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이었다.
처음 3년은 실제로 좋았다. 피크 트래픽 때 서버가 터지는 일이 없어졌다. 개발팀은 인프라 걱정 없이 기능을 출시했다. 나는 컨퍼런스 발표를 두 번 했다. “성공적인 올-클라우드 전환”이라는 제목으로.
균열은 작게 시작됐다. 2023년 말, 결제 팀에서 이상한 알림이 왔다. 그달 청구서가 예상보다 40퍼센트 높았다. 조사해 보니 데이터 이그레스 비용이었다. 멀티 리전 아키텍처를 도입하면서 리전 간 트래픽이 예상의 세 배를 넘어 있었다. 나는 아키텍처를 손봤다. 비용은 줄었다. 그리고 잊었다.
2024년 여름, 상황은 달라졌다. 세 분기 연속 On-Demand 요금이 올랐다. 마이크로소프트 애저는 엔터프라이즈 계약 갱신에서 기존 고객에게도 인상안을 내밀었다. 나는 리저브드 인스턴스 비율을 높이고, 스팟 인스턴스를 섞어 넣으며 버텼다. 비용 최적화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구멍 막기였다.
이상호 전무가 처음으로 직접 전화한 것은 그해 11월이었다.
“재현 씨, TCO 비교 다시 한번 해봐요. 요즘 온프레미스 상면 비용이 많이 떨어졌다던데.”
나는 며칠 뒤 분석 자료를 보냈다. 그리고 그 숫자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오래 화면을 보고 있었다. 안정적인 베이스라인 워크로드, 그러니까 24시간 항상 켜두어야 하는 배치 처리와 내부 ERP 시스템만 놓고 보면, 3년 TCO 기준으로 온프레미스가 38퍼센트 저렴했다. 우리 회사 워크로드의 70퍼센트가 그 안정적 베이스라인에 해당했다.
나는 그 수치를 메모장에 써두고 잠시 창밖을 봤다. 서울 한강이 보이는 사무실 13층이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이틀이 길었다. 단순히 데이터를 정리하는 게 아니었다. 지난 5년의 결정을 하나씩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이었다. 2021년의 나는 틀리지 않았다. 당시의 가격 구조로는 클라우드가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2026년의 나는 그 결정의 결과를 수습해야 했다.
박혜영 팀장이 다시 말했다.
“솔직히 말해요, 재현 씨. 이걸 보고하면 책임 문제 나오지 않아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나올 수도 있죠.”
“그런데도 해요?”
“안 하면 내년에 더 나빠요.”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대답이었다.
이사회 보고는 예상보다 조용했다. 이상호 전무는 숫자를 훑더니 “얼마나 걸려요, 복귀에?”라고 물었다. 나는 “36개월입니다. 캐팩스는 처음 18개월에 집중됩니다”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 사람과 뭔가를 짧게 이야기했다. 질타는 없었다. 그게 더 불편했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화장실에서 잠깐 멈췄다. 거울 속에 피곤해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5년 전, 저 자리에서 이 모든 일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같은 사람이었다.
클라우드가 나쁜 선택이었다고는 아직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이 달라진 속도를, 우리가 따라잡지 못했다. 또는 따라잡으려 했지만 이미 구조가 굳어 있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복귀 계획은 승인됐다. 나는 다음 주부터 하드웨어 벤더 미팅을 시작해야 한다. 5년 전 내가 다시는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그 서버실을, 다시 설계해야 했다. 도면은 아직 비어 있다.
이 이야기가 우리 회사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2025년 이후 글로벌 기업들이 같은 계산을 다시 꺼내 들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어디선가 또 다른 재현이 같은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 창밖을 볼 것이다.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