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 전쟁: 인수 앞의 최후 저항
통신탑 운영사들이 거대 합병의 위협 속에서 인프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저항을 펼친다.
구성환이 마지막으로 그 철탑에 오른 것은 이른 아침이었다.
충북 음성의 산기슭, 해발 480미터 능선 위에 청탑인프라 제217호 기지국이 서 있었다. 높이 38미터의 격자형 강철 구조물. 기초 콘크리트가 박힌 지 열여섯 해가 지났고, 구성환이 회사에 입사한 것도 그 해였다. 그는 안전모를 고쳐 쓰고 사다리 첫 번째 가로대에 발을 올렸다. 등 뒤로 새벽 안개가 계곡을 채우고 있었다.
꼭대기에 올라서자 사방이 트였다. 동쪽으로 물안개 속에 물류단지의 조명이 번지고 있었고, 남서쪽으로는 어느 통신사의 중계탑이 붉은 경고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구성환은 안테나 고정 볼트를 점검하면서 먼 쪽 탑을 오래 바라봤다. 저게 결국 대륜통신 것이 되겠지, 그는 생각했다. 아니면 우리 것이 저쪽으로 넘어가든지.
그날 오후 서울 본사에서 임시 이사회가 소집됐다.
청탑인프라는 2009년 세 개의 중소 통신탑 운영사가 합쳐져 만들어진 회사였다. 전국에 4,800기의 철탑과 옥상 기지국을 보유했고, 임직원이 340명이었다. 큰 회사는 아니었다. 대륜통신이나 한별네트 같은 대형 통신사와 비교하면 손바닥만 한 규모였다. 그러나 충청도와 강원도, 경북 산간 지역의 커버리지는 청탑 없이는 불가능했다. 산 위에 구멍이 생기면 재난 문자도, 긴급 출동도 흔들렸다.
구성환은 2019년부터 대표이사직을 맡았다. 전임 대표가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진 뒤 이사회가 선임한 내부 발탁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시설팀장이었다. 재무도 몰랐고 M&A는 더 몰랐다. 그러나 철탑은 알았다. 어느 부지가 겨울에 결빙 문제가 생기는지, 어느 산등성이가 번개를 많이 먹는지, 어느 임대인이 갱신 때마다 땅값을 올리려 하는지. 그 지식이 그를 5년 동안 버텨주었다.
이사회실은 을지로 본사 19층에 있었다. 긴 테이블에 일곱 명이 앉았고, 두 명은 화상으로 연결됐다. 구성환은 맨 끝자리에 앉아 재무팀장 박호연이 띄운 슬라이드를 봤다. 숫자들이 낯설지 않았다. 그는 지난 사흘 동안 같은 숫자를 밤마다 들여다봤다.
“대륜 측이 제시한 가격은 주당 2만 4천 원입니다.” 박호연의 목소리는 의도적으로 평탄했다. “현재 주가 대비 약 38% 프리미엄입니다.”
아무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이사회 의장인 송대진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창업 멤버 중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었다. 일흔한 살. 음성의 첫 번째 철탑 기초 공사를 자기 손으로 감독했다는 얘기를 구성환은 입사 첫날 들었다.
“38%가 좋은 프리미엄인가요, 구 대표?”
“지난 5년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EV/EBITDA가 16배입니다.” 구성환이 답했다. “미국 타워 시장 평균이 25배 이상이고, 동남아시아도 18에서 20 사이입니다. 우리가 할인받은 겁니다.”
“그렇다면 더 받을 수 있다는 뜻이군요.”
“아니면 팔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침묵이 왔다.
대륜통신이 인수 의향서를 보내온 것은 삼 주 전이었다. 그러나 그 전조는 이미 반년 전부터 보이고 있었다. 통신업계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대형 통신사들이 철탑 자산을 한데 묶어 별도 법인으로 분리하는 작업을 추진하던 때였다. 인프라를 소유하되 운영을 전문화한다는 논리였다. 실상은 장부에서 고정자산을 털어 재무비율을 개선하면서, 동시에 작은 독립 운영사들의 네트워크 접근을 통제하겠다는 계산이었다.
한별네트가 먼저 움직였다. 자사 보유 탑 2,200기를 분리해 자회사 한별타워를 세우고, 6개월 만에 군소 운영사 세 곳을 흡수했다. 그 중 하나가 청탑과 오랫동안 공동 유지보수 계약을 맺어온 새벽타워였다. 이달 초 새벽타워 대표 최재용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짧은 메시지였다. “우리는 선택지가 없었어. 미안해.”
구성환은 그 메시지를 아직 지우지 않았다.
이사회가 끝난 뒤 그는 박호연을 붙잡았다.
“법무팀이 말하는 방어 옵션이 뭐야?”
박호연이 파일을 펼쳤다. “세 가지입니다. 하나, 백기사를 찾는다. 둘, 자산 재평가로 가치를 올려 프리미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셋, 전략적 파트너십을 먼저 체결해 대상을 비매력적으로 만든다.”
“백기사.”
“국내에서 나설 곳이 없습니다. 한별은 이미 반대편이고, 나머지 통신사들은 관망 중입니다. 외국계 인프라 펀드가 관심을 보일 수는 있는데—”
“그러면 결국 주인만 바뀌는 거잖아.”
박호연은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네, 그렇긴 합니다.”
인수 압력이 가시화된 것은 두 번째 접촉이 오면서였다.
대륜통신 사업전략실장 김태원이 직접 찾아온 것은 목요일 오전이었다. 스물 명이 들어가는 소회의실에 두 사람만 앉았다. 김태원은 사십대 중반의 남자였다. 넥타이를 매지 않았고 말이 빠르고 간결했다.
“구 대표님, 저는 대립 구도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가 시작했다. “업계 현실을 같이 보자는 겁니다.”
“들어보죠.”
“5G 고도화가 본격화되면 소형 기지국 밀도가 지금보다 세 배 이상 늘어납니다. 도심 외곽, 산간, 고속도로 구간—청탑이 강한 곳들이죠. 그걸 유지·확장하려면 투자 규모가 지금의 두 배가 넘게 필요합니다. 혼자서 할 수 있겠습니까?”
구성환은 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청탑의 네트워크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청탑의 위치를 원하는 겁니다. 산 위에 박힌 철탑 4,800개를. 그걸 사는 겁니다.” 김태원이 잠깐 멈췄다. “공정한 가격으로.”
“그 공정한 가격이 할인된 가격이라고 아까 재무팀장한테 들었습니다.”
김태원이 미소지었다. 억지스럽지 않은, 익숙한 협상가의 표정이었다. “협상할 여지는 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구성환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을지로 거리는 점심 인파가 붐볐다. 그는 길 건너 편의점 앞에 서서 생수를 마셨다. 한 블록 떨어진 곳에 대형 통신사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자사 제품이 아닌 것들이, 이 도시의 거리를 더 많이 채우고 있었다.
그가 입사했던 해, 철탑 하나를 세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사십일이었다. 부지 계약, 설계 인가, 기초 공사, 철탑 조립, 장비 납품, 통신사 테스트. 지금은 빠르면 스물다섯 일 안에 끝낼 수 있었다. 그 기간이 반으로 줄어드는 동안 세상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그리고 이제 그것이 또 다른 의미에서 끝나려 하고 있었다.
저항의 실마리는 뜻밖의 곳에서 왔다.
인수 의향서가 접수된 지 열흘째 되던 날 오후, 청탑인프라 시설팀의 현장 직원 임순철에게서 문자가 왔다. 임순철은 강원도 담당 팀장으로 15년 경력의 철탑 전문가였다.
“대표님, 오늘 홍천 기지국 점검 나갔다가 이상한 거 봤습니다. 대륜 차량이 우리 부지 인근을 두 번 지나갔습니다. 측량 장비 들고.”
구성환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떤 부지요?”
“제209호랑 제213호 사이 능선입니다. 거기 새로 기지국 세울 만한 위치가 없는데 측량을 하더라고요. 우리 탑이 없으면 커버리지 공백이 생기는 자리입니다.”
구성환은 잠시 생각했다. “사진 찍어둬요.”
전화를 끊고 그는 법무팀장 조민아를 불렀다.
“공시 의무 검토해줘요. 인수 의향서 접수 이후 대상 회사의 사업 영역 내에서 경쟁 행위가 발생할 경우, 공정거래법 관련 쟁점이 있는지.”
조민아가 눈썹을 올렸다. “인수 과정에서 상대방이 대체 인프라를 선점하려 한다면—지배력 남용 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단, 아직 인수가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위가 일어나고 있으므로 ‘사전 공조’로 볼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증거 만들어봅시다.”
그날 밤 구성환은 임순철에게 팀원 두 명을 더 투입해달라고 했다. 강원도 산간 주요 거점 열두 곳의 현황 사진과 좌표, 그리고 대륜 측 행적을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공식 민원도 아니고 소송도 아니었다. 아직은 그저 기록이었다.
열나흘 뒤, 공정거래위원회에 한 장의 서류가 접수됐다.
청탑인프라 법무팀이 작성한 시장 경쟁 환경 변화에 대한 의견서였다. 내용은 단순했다. 대형 통신사 두 곳이 독립 타워 운영사를 인수합병할 경우, 충청·강원·경북 산간 지역 기지국 인프라의 약 68퍼센트가 단일 계열사 체제로 편입된다는 것. 그리고 독립 운영사들이 공유 철탑에 접속하는 비용이 협상력 불균형으로 인해 불합리하게 책정될 위험이 있다는 것. 거기에 임순철 팀이 기록한 사진과 좌표 파일이 붙었다.
공정위 심사가 시작되기까지는 보통 두 달이 걸렸다. 두 달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협상 테이블에서 두 달은 다른 의미였다. 상대가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무게가 달라졌다.
구성환은 박호연과 함께 이번에는 다른 방향의 숫자를 만지기 시작했다. 자산 재평가 보고서였다. 철탑 4,800기의 장부가는 2009년 취득원가 기반이었다. 그러나 토지 임차권과 네트워크 위치가치, 5G 전환 시 임대료 수익 증가분을 반영하면 가치는 달라졌다. 외부 평가기관 두 곳에 의뢰했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일상은 계속됐다.
임순철은 매일 아침 현장을 돌았다. 폭우로 기초 침하가 생긴 제228호를 보수했고, 임대인이 땅값 50퍼센트 인상을 요구해온 홍천 부지를 협상했다. 장비 교체 주기가 도래한 기지국 여섯 곳의 발주를 넣었다. 인수가 어떻게 되든, 철탑은 서 있어야 했다.
청탑인프라 고객사 중 하나인 소규모 MVNO 업체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형 타워사로 청탑이 넘어가면 우리 요금이 오르는 거냐고. 구성환은 현재로서는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그 말이 어느 정도 진실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결전은 이사회 세 번째 소집에서 왔다.
대륜통신이 공개 입장을 냈다. 인수 조건을 주당 2만 7천 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청탑인프라의 독립 브랜드를 3년간 유지하며, 현 임직원 전원의 고용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정위 심사가 진행 중인 점을 감안해 이르면 내년 상반기 안에 거래를 마무리하겠다는 일정표도 첨부됐다.
2만 7천 원. 기존 주가 대비 56퍼센트 프리미엄.
이사회실은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4시가 넘도록 이어졌다. 구성환은 처음 한 시간은 말하지 않았다. 숫자들이 탁자를 오갔다. 재무이사가 현금흐름 분석을 제시했고, 사외이사 두 명이 각각 다른 논리로 수용과 거부를 주장했다. 누군가가 외부 인프라 펀드와의 협상 가능성을 다시 꺼냈다. 누군가는 공정위 심사가 길어지면 회사가 불확실성 속에 1년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송대진 의장이 구성환을 봤다. “구 대표, 당신 생각은 뭔가요.”
구성환은 준비한 말이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그것이 옳은 말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저는 여기 사람들한테 물어봤습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임순철 팀장이 강원도 현장에 있고, 경북 팀장은 안동 출장 중이고, 충남 팀은 오늘 세 곳 점검 나갔습니다. 다들 자기가 맡은 철탑 고치러 간 겁니다. 인수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그 사람들이 내일도 모레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느냐가 저한테는 중요합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대륜이 제시한 고용 보장은 3년짜리입니다. 3년 뒤에는 통합 인력 조정이 있을 겁니다. 유지보수 인력은 외주화 1순위입니다. 그건 협상 조건에 없어요.” 그는 멈췄다. “그리고 68퍼센트 집중이 현실화되면, 작은 통신사들은 접속 비용을 놓고 매년 불리한 협상을 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 산간 지역 커버리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아무도 보장 못 합니다.”
사외이사 한 명이 끼어들었다. “구 대표, 그게 주주 이익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56% 프리미엄이면—”
“주주 이익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구성환이 잘랐다. “다만 그게 유일한 판단 기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외부 평가 보고서가 이번 주 안에 나옵니다. 그 숫자를 보고 다시 이야기합시다.”
의장이 손을 들었다. “일주일 뒤에 다시 모입시다.”
보고서는 닷새 뒤 나왔다.
두 평가기관의 결과는 일치했다. 5G 고도화 시나리오를 반영한 청탑인프라의 공정 가치는 주당 3만 1천 원에서 3만 3천 원 사이였다. 대륜이 제시한 2만 7천 원은 그 범위의 하단보다도 낮았다.
구성환은 그 숫자를 김태원에게 보냈다. 문자 한 줄로.
“우리 측 평가결과입니다. 참고하세요.”
두 시간 뒤 답장이 왔다. “검토하겠습니다.”
그 검토가 어떤 결론을 낼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공정위 심사는 진행 중이었고, 외부 인프라 펀드와의 예비 접촉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이사회 날짜가 잡혔지만 그날 무슨 결정이 나올지는 열려 있었다.
임순철이 그날 저녁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홍천 능선의 제217호. 저녁 빛이 안테나 끝을 물들이고 있었다. 아래로 구름이 깔리고, 저 멀리 산들이 겹쳐 있었다. 일상적인 점검 보고였다. 설비 이상 없음, 신호 정상, 이라고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구성환은 사진을 한동안 바라봤다.
철탑은 여전히 서 있었다. 그것이 누구의 소유가 되든, 그 위에서 신호는 계속 흘렀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재난 문자가, 위치 데이터가.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 그 흐름이 끊기지 않는 한, 어느 쪽이 이기든 그 일은 계속될 것이었다.
다만 누가 그것을 지키는가, 라는 질문은 남아 있었다.
한 달 뒤, 공정거래위원회는 청탑인프라를 포함한 독립 타워 운영사 시장에 대한 실태 조사 착수를 발표했다. 조사 기간은 석 달로 명시됐다. 대륜통신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구성환은 그 발표를 모바일로 확인하고 있었다. 음성 제217호 기지국 기초 보수 현장이었다. 임순철과 작업 인원 두 명이 콘크리트 균열 부위를 메우고 있었다. 작은 균열이었지만 그냥 두면 안 됐다.
그는 공사 현황판에 사인을 했다. 점검 완료. 날짜: 2026년 10월.
바람이 산 위에서 내려왔다. 철탑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설계 공차 안에서. 정상 범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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