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신협의 5억 원
디지털 입금 하나로 사라진 전통 금융기관의 마지막 거래.
마지막으로 창구에 앉아 근무한 것이 어느 날이었는지, 최은자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날도 오전 내내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한솔신용협동조합은 삼십칠 년째 하구리 사거리에 있었다. 조합 건물은 땅에 단단히 뿌리내린 것처럼 낡고 익숙한 냄새가 났다. 입구 유리문에는 “정기예금 연 3.5%”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그게 언제 붙은 건지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최은자가 처음 이곳에 입사한 해부터였을 수도 있다.
금융감독원 통계에서 전국 신용협동조합 수가 이십 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는 자료가 공개된 것은 2023년이었다. 폐업과 합병이 이어진 결과였다. 하구리 한솔 신협은 그 절반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쪽이었다.
그 오후 두 시 십삼 분, 전산 단말기에서 알림 소리가 났다.
5억 원.
최은자는 화면을 한 번 보고, 다시 한 번 보았다. 입금처는 ‘박정수’였다. 오십대 중반, 하구리에서 감자 농사를 짓다가 5년 전 도시로 이주한 남자. 예전엔 매달 첫째 주 화요일마다 직접 조합에 들러 통장을 정리하던 사람이었다. 이제 그는 서울 어딘가의 아파트에서 스마트폰 화면으로 거래를 끝냈다.
메시지가 함께 왔다. “토지 매각 대금입니다. 잠시 보관해 주세요.”
최은자는 메시지를 읽고, 전산 처리를 하고, 영수증을 뽑았다. 영수증을 받을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영수증을 서랍에 넣었다.
창구 너머 대기석에는 번호표 뽑는 기계가 있었다. 오늘 뽑힌 번호표는 0장. 어제도 그랬고, 그 전날도 그랬다. 조합원 수는 아직 오백 명 남짓이었지만 직접 창구를 찾는 사람은 이제 월 평균 열둘에서 열다섯 명 사이였다. 통장 분실 신고, 대출 이자 납부, 그리고 가끔씩 어르신들이 자녀 대신 현금을 찾아가는 경우.
조합장은 지난달에 말했다. 연말까지 합병 여부를 결정한다고. 마을금고도, 인근 군청 소재지의 또 다른 조합도, 모두 중앙 지점으로 통합됐다. 한솔 신협은 조금 더 버텼다. 그것뿐이었다.
최은자는 박정수의 잔액을 다시 확인했다. 5억 2천만 원. 그가 처음 이 조합에 통장을 만든 게 1989년이었다. 그때 최초 입금액은 삼만 원이었다고 서류에 적혀 있었다. 물론 그 서류는 지금 없었다. 전산화되면서 구형 장부들은 트럭에 실려 나갔다.
화면에 뜨는 것은 숫자뿐이었다.
최은자는 창밖을 보았다. 하구리 사거리에는 편의점 하나와 세탁소 하나, 그리고 문을 닫은 약국 건물이 있었다. 약국도 작년에 읍내로 이전했다. 마을이 천천히, 조용히, 스스로 조각나고 있었다.
박정수가 토지를 팔았다는 것은 그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5억 원이 이 조합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도 최은자는 알았다. 다음 달쯤 연락이 올 것이다. 수도권 증권사 계좌로 이체해 달라고, 혹은 온라인으로 직접 뺄 테니 그냥 두라고.
오후의 햇살이 창구 유리를 비스듬히 통과했다. 먼지 한 점이 빛 속에서 흘러내렸다.
최은자는 서랍에서 영수증을 꺼내 한 번 더 살펴봤다. 그리고 다시 서랍에 넣었다.
전산 단말기는 화면보호기로 넘어가 있었다. 조합 마스코트인 파란 새가 천천히 날아다니는 화면이었다. 누가 만든 건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이 글은 허구입니다. 실존하는 금융기관·인물과 무관하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AI가 생성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