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떨어진 기획, 모든 꿈의 종말
앱개발 스타트업 앱앤드의 정승현 대표가 3년간의 아이디어 검증 끝에 깨달은 불편한 진실: 고객들은 그의 앱을 원하지 않았다. 스타트업 신화와 현실의 괴리를 다크 유머로 그린다.
앱앤드 사무실은 강남역 4번 출구에서 도보 3분, 정확히는 도보 3분이라고 부동산이 우겼던 12분 거리에 있었다. 정승현은 그 12분을 3년 동안 매일 걸으며 자신이 만든 앱을 사랑하는 상상 속의 사용자를 만나러 다녔다.
앱의 이름은 “밥친구”였다. 혼밥러들을 위한 소셜 매칭 앱. 컨셉은 간단했다. 오늘 점심 혼자 먹기 싫은 사람과 근처의 다른 혼밥러를 연결해준다. 정승현은 이 아이디어를 술자리에서 처음 떠올렸고, 그 자리에 있던 다섯 명 중 세 명이 “오 그거 괜찮은데?”라고 말했다는 사실 하나로 시드 투자를 받으러 다녔다.
3년 전 그날, 그는 엑셀 시트에 TAM(전체 시장 규모)을 계산하며 “대한민국 1인 가구 수 × 하루 세 끼 × 365일 = 뭐 아무튼 엄청 큰 숫자”라는 공식을 만들었고, 그 공식이 적힌 슬라이드로 시드 5억을 받았다. 투자자는 그 숫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그 숫자가 실제로 뭘 의미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스타트업 신화라는 게 원래 그렇다. 숫자가 크면 질문이 작아진다.
첫 6개월, 정승현은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우리는 외로움이라는 진짜 문제를 풀고 있다”는 문장을 노션에 다시 썼다. 문장은 조금씩 바뀌었다. “외로움을 해결한다”에서 “식사 경험을 혁신한다”로, 다시 “관계의 마찰 비용을 줄인다”로. 문장이 바뀔 때마다 팀원들은 박수를 쳤다. 아무도 사용자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사용자에게 물어보는 건 나중 일이었다. 지금은 “비전을 정렬”할 시기였다.
1년 차에 첫 프로토타입이 나왔다. 베타 테스터 200명을 모았다. 정승현은 이 200명이 “얼리어답터”라고 믿었다. 사실 그들은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준다는 말에 설문지에 이름을 적은 사람들이었다. 앱을 다운로드한 사람 중 실제로 매칭을 신청한 사람은 14명이었고, 그중 실제로 만난 사람은 2명이었으며, 그 2명은 서로 마음에 안 들어서 20분 만에 헤어졌다는 후기를 남겼다. 정승현은 이 후기를 팀 회의에서 “초기 마찰(friction)이 있었으나 제품-시장 적합성(PMF)의 초기 신호”라고 요약했다. 회의실의 화이트보드에는 “PMF”라는 글자가 형광펜으로 세 번 밑줄 쳐져 있었다.
2년 차, 투자자들이 “유저 리텐션이 왜 이래요?”라고 물었을 때, 정승현은 “저희는 지금 그로스보다 코호트 퀄리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문장은 아무 뜻도 없었지만, 회의실은 조용해졌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스타트업 세계에서 이런 문장은 방탄복 같은 것이다. 아무도 방탄복을 벗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벗기면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게 드러나니까.
시리즈 A를 준비하던 시기, 정승현은 처음으로 진짜 사용자 인터뷰라는 걸 했다. 20명을 대면으로 만났다. 이 인터뷰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의 멘토가 “제발 좀 나가서 사람을 만나보라”고 세 번째로 잔소리한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정승현은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앉아 질문지를 읽었다. “혼자 밥 먹을 때 불편하셨던 점이 있으신가요?”
20명 중 17명이 이렇게 답했다. “딱히요. 혼자 먹는 게 편한데요. 유튜브 보면서.”
정승현은 이 대답을 노트북에 받아 적으며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3년의 세월, 5억의 시드, 12억의 시리즈 프리 A, 팀원 여덟 명의 인생,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움이라는 진짜 문제”라는 문장이 적힌 노션 페이지 47개가 그 순간 허공으로 흩어지는 소리를 그는 들었다고 훗날 회고했다. 물론 그런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카페의 에어컨 소음과 그의 심장 박동 소리뿐이었다.
나머지 3명은 뭐라고 답했을까? 한 명은 “저 사실 앱 안 깔려 있는데 지금 인터뷰 사례금 받으려고 왔어요”라고 정직하게 말했다. 한 명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 한 명은 정승현의 얼굴을 한참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근데 이거 만드신 분이 대표님이세요? 그럼 대표님이 저랑 밥 먹어주시면 안 돼요? 혼자 먹기 싫어서 신청한 건데.”
그 말을 들은 순간 정승현은 웃었다. 나중에 그는 이 웃음이 “번아웃 초기 증상”이었다고 진단받았지만, 그 순간에는 그냥 웃겼다. 3년간 만든 매칭 알고리즘, 팀원 여덟 명, 투자금 17억, TAM 슬라이드, 코호트 퀄리티라는 방탄복 문장 — 이 모든 것의 결론이 “그냥 대표님이 저랑 밥 먹어주세요”였다.
앱앤드는 그 해 겨울 조용히 문을 닫았다. 공식 발표문에는 “시장 환경의 변화와 자금 조달의 어려움으로 인해”라고 적혔다. 이 문장도 진짜 이유를 말하지 않는 방탄복이었다. 진짜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들은 혼자 밥 먹는 게 편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걸 3년 전에 물어보지 않았다.
정승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는 강남의 한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한다. 매주 화요일, 신규 기능 기획 회의에서 그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거 실제로 사용자한테 물어봤어요?” 팀원들은 이 질문을 싫어한다. 그의 상사는 지난주 그에게 “너무 디테일에 집착하지 말고 비전을 크게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매일 점심시간, 정승현은 혼자 회사 앞 김밥집에 가서 유튜브를 보며 밥을 먹는다. 아주 편안하게. 그가 3년간 풀려고 했던 문제를, 그는 이제 매일 아주 성공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다만 앱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