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생산라인
구조조정 바람 속 자동차 공장의 마지막 근무를 맞는 노동자의 불안과 수용의 과정을 그린다.
정만호는 새벽 다섯 시 반에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리기 전이었다. 몸이 기억하는 것이었다. 30년 동안 이 시각에 일어났고, 앞으로 일어날 이유가 없어질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이부자리를 걷어내는 순간, 창밖 가로등 불빛이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아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정만호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발끝으로 걸었다.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보았다. 머리카락이 흰 남자가 보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했다가 그만뒀다. 그런 계산은 오늘 같은 날에 어울리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서리가 내려 있었다. 9월 말의 새벽이라 아직 서리가 이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만호의 눈에는 서리처럼 보였다. 그냥 이슬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발은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27번 버스는 늘 그래왔듯 정시에 왔다. 문이 열리자 낯익은 기름 냄새 같은 것이 코끝에 스쳤다. 아니, 그건 버스 안의 냄새가 아니었다. 그의 작업복에 배어 있는 냄새였다. 세탁을 아무리 해도 지워지지 않는, 한빛오토텍 공장 특유의 냄새. 절삭유와 금속 분진과 기름이 섞인 냄새.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불 켜진 편의점 하나, 신호등 하나, 그리고 어딘가로 달려가는 쓰레기 수거 차량 한 대. 30년 전 이 버스를 처음 탔을 때도 이런 새벽이었다. 스물여덟 살이었다. 전역한 지 두 해가 지났고, 공장 취직이 이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공장 문이 열렸을 때, 박기동이 먼저 와 있었다.
“왔어.”
박기동은 그 말 한 마디만 했다. 정만호도 그 말 한 마디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둘은 나란히 탈의실로 걸어 들어갔다. 사물함 번호 37번과 38번. 정만호가 37번, 박기동이 38번. 1998년부터 한 번도 바뀐 적 없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정만호는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손이 떨리는 나이가 된 것인지, 아니면 오늘이라는 날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안전화 끈을 묶으며 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멘트 바닥에 낡은 신발 자국들이 새겨져 있었다. 누군가의 30년이, 누군가의 20년이, 수십 명의 세월이 저 바닥에 눌려 있을 것이었다.
생산라인에 들어서자 기계들이 보였다.
한빛오토텍의 제6라인은 피스톤 링 전문 라인이었다. 정만호가 1995년에 처음 배치받은 곳이었다. 내연기관 엔진이 숨을 쉬게 하는 부품이었다. 차가 달리면 이 링이 움직인다. 그는 30년 동안 자신이 만든 부품이 전국 어딘가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말로 꺼낸 적은 없었지만.
요즘 세상이 달라졌다. 2024년 무렵부터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전환이 빨라지면서 내연기관 부품 수요가 빠르게 줄었다. 전기차에는 피스톤 링이 없다. 배기 시스템도 없다. 수십 년을 버텨온 부품사들이 하나씩 문을 닫았다. 한빛오토텍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문을 닫는 곳은 여기였다.
류성희가 다가왔다.
“만호 씨, 커피 가져왔어요.”
류성희는 열다섯 해를 이 공장에서 일했다. 정만호가 아는 동료 중 가장 빠르게 일하고, 가장 조용하게 웃는 사람이었다. 종이컵을 건네는 그녀의 손이 붉었다. 새벽부터 와서 기계 청소를 했을 것이었다.
“고마워.”
커피는 자판기 커피였다. 이 자판기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동전을 넣으면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컵이 나오던 그 자판기. 정만호는 그 소리를 앞으로 다시 들을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전 내내 마무리 작업이 이어졌다. 기계에서 재료를 빼내고, 설비를 닦고, 도구를 반납했다. 공구함을 정리하면서 정만호는 자신이 직접 갈아 만든 지그 하나를 발견했다. 2009년에 라인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스스로 고안해 낸 것이었다. 그때 공장장이 칭찬을 했었다. 지그는 손때가 까맣게 묻어 있었다.
그것을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그냥 주머니에 넣었다.
점심 때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다. 관리팀에서 마련한 도시락이었다. 누구도 많이 먹지 않았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잘 이어지지 않았다. 함께 일했던 세월이 너무 길어서,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실감이 너무 또렷해서였을까.
박기동이 술 한 잔 하러 가자고 했다.
“오늘 저녁에.”
정만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류성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오후 세 시, 마지막 공식 라인 가동이 시작됐다.
마지막 피스톤 링 배치였다. 실제로 납품될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결정했다. 그냥 멈추는 것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돌리자고. 정만호는 자신의 자리에 섰다. 기계가 깨어났다. 그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30년 전과 같은 진동이었다.
가공이 시작되고, 링들이 하나씩 만들어졌다. 금속이 깎이는 소리가 났다. 절삭유가 뿜어져 나왔다. 정만호는 계기판을 확인하고, 불량 여부를 점검하고, 흐름을 조절했다. 몸이 알아서 움직였다. 머리가 생각하기 전에 손이 먼저 갔다. 30년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라인이 멈추었을 때, 정만호는 자신이 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울지 않았다. 다만 기계에 손을 얹고 잠시 서 있었다. 차가운 금속. 여름에는 뜨거웠고 겨울에는 이랬다.
퇴직 서류를 받았다. 도장을 찍었다. 사물함을 비웠다. 안전화를 반납 바구니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공장 문을 나서면서 정만호는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주차장을 절반쯤 걸었을 때 발이 멈추었고, 몸이 먼저 돌아섰다.
큰 건물이었다. 지붕에는 한빛오토텍이라는 글씨가 여전히 붙어 있었다. 창문이 몇 개는 이미 꺼져 있었다. 조명이 꺼졌기 때문이었다.
박기동이 옆에 와서 섰다.
“갈까.”
“어.”
둘은 나란히 걸었다. 버스 정류장 쪽으로. 해가 아직 지지 않아서 하늘이 주황빛이었다. 정만호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가, 그 안에 지그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손가락 끝에 닿는 금속이 차가웠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아직 모른다. 나이가 쉰여덟이고, 내연기관 부품 기술자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위로금이 있고, 아내가 있고, 두 아이는 이미 컸다. 그것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내일 새벽 다섯 시 반에 눈이 떠질 때, 무엇을 향해 일어나야 하는지. 그것은 아직 없었다.
버스가 왔다. 27번이 아니었다. 다른 번호였다.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는 버스였지만, 박기동이 먼저 탔고, 정만호도 올라탔다. 요금을 내고 자리에 앉자 창밖에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의 지그가 여전히 차가웠다.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