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영혼
내연기관 엔진을 40년 만든 가공의 부품사 장인이 전동화 전환 통보를 받는 날을 그린다. 실제 기업·티커는 등장하지 않는다.
남기철이 작업복 앞주머니에서 공문을 꺼낸 건 오전 여섯시 반이었다.
소환장이라고 쓰여 있지는 않았다. 한솔부품 인사팀의 공지였다. “전략 전환에 관한 중요 안내 — 오전 11시, 3층 대회의실.” 그는 종이를 다시 접어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손가락 끝에 아직 기름이 남아 있었다.
40년이었다. 1984년 이 공장에 들어온 뒤 남기철이 만지지 않은 엔진 블록 부품은 없다시피 했다. 크랭크샤프트 연삭이 그의 전문이었다. 허용 오차 0.001밀리미터. 동료들은 농담처럼 “남 기사 눈금자는 심장으로 읽나”고 했다. 그는 웃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어서.
공장은 일곱 시가 되어야 돌아갔지만 그는 항상 두 시간 먼저 왔다. 기계가 식어 있을 때의 냄새 — 절삭유와 금속 분진이 섞인 냄새 — 가 좋았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혼자 선반 앞에 서면 그게 기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은 그 냄새를 오래 맡았다.
11시 회의실에는 공장 직원 이백여 명이 모였다. 대표이사가 화면을 띄웠다. 유럽연합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한 결정은 이미 2년 전 확정됐지만, 완성차 업체들이 부품사에 전동화 로드맵을 요구하기 시작한 건 올해부터였다. 화면에는 숫자들이 나열됐다. 수주 잔액, 예측 감소율, 전환 투자 규모.
“엔진 관련 부서는 내년 3월부터 단계적으로 모터 조립 라인으로 재편됩니다.”
남기철은 첫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등 뒤에서 술렁임이 번졌다.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 누군가 코를 훔치는 소리.
그는 화면을 보지 않았다.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기름때는 잘 씻기지 않는다. 손금 사이에, 손톱 밑에 박혀서 며칠씩 간다. 싫었던 적이 없었다. 일한 표시라고 생각했다. 살아 있다는 표시.
회의가 끝나고 동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재교육 얘기, 명예퇴직 패키지 얘기. 남기철은 그 무리를 지나쳐 공장으로 돌아갔다. 오후 작업이 남아 있었다.
크랭크샤프트 하나가 가공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는 측정기를 집었다. 손이 평소처럼 움직였다. 눈금을 읽었다. 0.0008밀리미터. 허용치 안이었다.
이 공정을 몇 번 했는지는 셀 수 없었다. 수십만 번쯤은 됐을 것이다. 세상에 내연기관 자동차가 달리는 한, 어딘가의 엔진 속에 그의 손이 스친 부품이 들어가 있다. 그 생각이 항상 그를 버티게 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작업을 마치고 공구를 닦았다. 바이트, 마이크로미터, 각도계. 하나씩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서두르지 않았다. 매일 하던 대로 했다.
퇴근 무렵, 후배 하나가 옆에 와서 섰다.
“선배, 어떡하실 거예요?”
그는 잠시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을 정해진 척 말하기가 싫어서였다.
“내일도 나오지.”
그게 전부였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당장 내일은 분명히 출근할 것이었다. 그다음은 그다음이 됐을 때 생각하면 됐다.
공장 불이 꺼졌다. 남기철은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바깥은 9월의 늦은 오후였다. 하늘이 맑았다.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걷다가 잠깐 멈춰, 손바닥을 한 번 들여다봤다.
기름때가 아직 남아 있었다.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