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날 친 걸까
자율주행자동차 보험 청구인이 첨단 기술 시대에서 범인을 특정할 수 없는 교통사고의 아이러니를 경험한다.
나는 지금 보험 접수 창구 앞에 서 있다. 대기 번호표를 손에 쥔 채 이미 서른 분째 서 있다. 번호는 147번. 창구 위 숫자판은 여전히 131번에 머물러 있다.
사고가 난 건 사흘 전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오전 11시 23분, 성수동 어느 교차로였다. 내 차는 자율주행 모드였다. 상대 차도 자율주행 모드였다. 신호등은 도시 통합 교통관제 서버에 연결되어 있었고, 도로 위 센서들은 클라우드에 실시간 데이터를 올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 교차로에서 인간이 직접 무언가를 결정하는 존재는 나를 포함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쿵, 이었다. 아주 짧고 단호한 쿵. 에어백은 터지지 않았고, 범퍼 한쪽이 긁혔으며, 나는 가지고 있던 아메리카노를 무릎에 쏟았다. 피해는 소박했다. 그러나 안전구동 손해보험사 앱은 즉각 사고 접수를 권고했고, 나는 그 권고에 따랐다. 법적으로 옳은 행동이라 판단했다.
문제는 앱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었다.
“가해 차량 번호판을 입력해 주세요.”
번호판은 알고 있었다. 상대 차는 사고 직후 멈췄고, 나는 번호판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 차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확히는 있기는 했다. 뒷좌석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코까지 골고 있었다. 쿵 소리도 못 들었는지, 사고가 난 줄 자기 차가 난 줄 모르고 있었다.
“당사자 연락처를 입력해 주세요.”
상대 보험사 정보를 받아 적고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대단히 친절했다.
“차량이 자율주행 모드였다면 제조사 측에 먼저 확인하셔야 합니다.”
제조사 고객센터로 돌렸다.
“자율주행 중 충돌은 알고리즘 판단의 결과입니다. 당시 구역 HD 지도 데이터에 오류가 있었다면 지도 서비스 제공사와 협의가 필요합니다.”
지도 서비스 회사에 연락했다.
“저희 데이터는 정확합니다. 다만 해당 도로의 차선 도색이 마모 상태였다면 지방자치단체 도로관리사업소 소관입니다.”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맑은 가을 하늘이었다.
자율주행 관련 사고 건수는 최근 몇 년 사이 매년 수백 건 단위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단일 책임 주체가 명확히 확정된 사례는 손에 꼽는다는 것이 이미 보험 업계의 통설이다. 나는 사고 접수 이틀째 되던 날 그 통설의 한 점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번호표를 뽑았다. 147번. 전화로는 닿을 수 없는 무언가가 직접 방문하면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안전구동 손해보험 직영 창구로 찾아왔다.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숫자판이 132번으로 바뀌었다.
옆자리에 앉은 중년 남성이 말을 걸었다.
“저도 자율주행 사고예요. 몇 달 됐어요?”
“사흘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로의 고개 끄덕임이었다.
“저는 두 달째예요. 알고리즘 버전이 어떻게 되세요?”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내 차 알고리즘 버전을 나는 알지 못했다. 차를 살 때 확인하지 않았다. 차를 살 때 그것을 확인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거 중요해요,” 그가 말했다. “버전에 따라 어느 회사 책임인지가 갈린다고 하더라고요.”
두 달. 나는 그 단어를 입속에서 굴렸다. 두 달이면 곧 겨울이다. 긁힌 범퍼는 눈을 맞을 것이다.
“근데,” 그가 덧붙였다. “저는 이제 사고 당시 누가 잘못했는지보다, 누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가 더 궁금해요.”
숫자판이 133번이 됐다.
나는 그 말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범퍼를 고치는 것보다 그 질문에 답하는 쪽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예감도.
147번. 창구는 여전히 멀었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