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경영진의 악몽
배터리 업체 CEO가 신규 공장 준공식에서 경쟁 기업의 가격 폭락 소식을 받으며, 수조 원 과잉 투자의 숙명 앞에 홀로 서게 되는 경영 스릴러.
준공식 테이프가 잘리는 순간, 강민준의 왼쪽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그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고, 양 옆에 선 이사들이 박수를 쳤다. 북부 산업단지 한가운데 세워진 공장—공식 명칭은 셀-2라인—은 그의 임기 3년을 통틀어 가장 큰 도박이었다. 연면적 18만 평방미터. 착공부터 오늘까지 총 2조 9천억 원. 연간 생산 목표 35기가와트시.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
홍보팀장이 귓속말로 다음 일정을 읊었다. 귀빈 오찬, 공장 투어, 저녁 간담회. 강민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군중과 악수를 나누는 틈에 그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메시지 발신자는 전략기획실장 오형준이었다.
“대표님, 지금 즉시 확인하셔야 합니다. GreenPower 발표 있었습니다.”
강민준은 걸음을 멈췄다. 뒤따르던 수행직원이 등에 부딪혔다. 그는 미안하다는 손짓도 없이 복도 모퉁이로 빠졌다. 링크가 첨부되어 있었다. 테라 대륙 한 경제지의 속보였다.
GreenPower, 차세대 배터리 셀 킬로와트시당 52달러 달성 발표. 업계 추정 원가의 61% 수준.
그는 숫자를 다시 읽었다.
52달러.
자사의 현재 원가는 85달러였다. 올해 목표는 78달러. 2027년 목표가 68달러였다. GreenPower—노바 대륙 최대 배터리 기업, 상장 코드 GPA—는 그가 도달하려는 지점을 이미 지나 있었다. 그것도 3년은 일찍.
오찬장 입구에서 임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이미 로컬 도의원, 산업부 국장, 은행 지점장이 자리를 잡았다. 오늘 준공식을 위해 두 달 전부터 잡아놓은 자리였다.
강민준은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웃음을 꺼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찬은 한 시간 반이 걸렸다. 그 사이 오형준에게서 메시지 세 통이 더 왔다. 그는 하나도 읽지 않았다. 테이블 아래서 폰을 뒤집어 놓았다.
국장이 말했다. “이 지역에 이런 공장이 들어서는 건 이십 년 만입니다. 고용 효과만 해도—”
“2,400명입니다. 직고용 기준으로요.”
강민준은 자동으로 답했다. 프레스킷에 나와 있는 숫자였다. 국장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머릿속은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원가 차이 33달러. 연간 35기가와트시 생산. 킬로와트시는 기가와트시의 100만 배. 35기가와트시는 35억 킬로와트시. 33달러 곱하기 35억. 자사가 GreenPower와 동일한 원가로 경쟁하려면 매년 약 1,155억 달러의 비용 차이를 감내하거나 그만큼의 원가 절감을 달성해야 했다.
한화로 환산하면.
그는 계산을 멈췄다.
한화로 환산하면.
그는 계산을 멈췄다.
공장 투어가 끝날 무렵 오형준이 직접 나타났다. 그는 방문객용 안전모를 쓴 채 라인 끝에서 강민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 좀 피할 수 있겠습니까?”
둘은 외벽 쪽 비상계단으로 나왔다. 바람이 불었다. 멀리 굴뚝 세 개가 하늘을 찔렀다.
“GreenPower 발표, 분석팀이 오전 내내 돌렸습니다.” 오형준의 목소리는 낮았다. “수치가 맞습니다. 지난 분기 그쪽 원자재 조달 계약서 일부가 노바 규제 공시로 유출됐는데, 역산하면 52달러는 충분히 가능한 숫자입니다.”
“양극재?”
“리튬인산철 전환 비율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에너지 밀도는 우리보다 낮지만 가격으로 누릅니다. 알파 대륙 전기차 업체들이 이미 문의 중이라는 소식도 들어옵니다.”
강민준은 난간에 손을 얹었다. 아래쪽 주차장에는 오늘 행사를 위해 동원된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알파 대륙 업체들. 그것이 문제였다. 셀-2라인의 사업 계획서에서 2028년까지 물량을 소화하기로 되어 있는 고객사 중 세 곳이 바로 그쪽에 있었다. 장기 계약이 아니었다. 양해각서. 구매 의향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종이들.
“계약 전환 가능성은?”
“법무팀 의견으로는 30%, 영업팀 의견으로는 50%입니다.”
“다들 제 듣고 싶은 말을 하는군.”
오형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강민준은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낮았다. 이 공장을 처음 구상했을 때, 그는 세계 배터리 시장이 2030년까지 연 20% 이상 성장한다는 컨설팅 보고서를 들고 이사회에 들어갔다. 이사들은 두 번 물어보고 승인했다. 당시 GPA의 주가는 지금보다 40% 낮았고, 그쪽의 원가 경쟁력이 이 정도일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언론 대응은요?”
“오늘은 준공식 보도만 나갑니다. GreenPower 건은 내일 시장이 먼저 반응할 겁니다.”
강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시장이 열리면 자사 주가는 아마도 조정을 받을 것이었다. 얼마나? 그것은 알 수 없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늘 이 자리에서 잘린 테이프와 찍힌 사진들이 내일 뉴스에 나란히 실릴 거라는 사실뿐이었다. 2조 9천억 원짜리 공장 준공식. 그리고 경쟁사의 원가 혁신 소식.
“오찬 자리 비운 것 눈치챘겠죠?”
“국장님은 모르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이군.”
그는 다시 웃음을 꺼냈다. 아직 저녁 간담회가 남아 있었다.
자정이 지나 강민준은 혼자 사무실에 앉았다. 오늘 하루 쌓인 서류들이 책상 위에 있었다. 그는 건드리지 않았다. 창밖으로 셀-2라인의 윤곽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외벽 조명이 켜져 있어서 형태만은 보였다. 거대하고 새것이었다.
그는 결재판 위에 올려진 종이 한 장을 집었다. 오늘 행사 팸플릿이었다. 표지에 공장 조감도가 인쇄되어 있었고, 맨 아래에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미래를 먼저 짓는 자가 미래를 갖는다.
그는 팸플릿을 다시 내려놓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먼저’가 얼마나 앞서도 되는가였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미 더 먼저 지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창밖의 공장은 조용했다. 가동은 다음 달 1일부터였다.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