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거래의 함정
카본 크레딧 거래원이 발견한 회계 부정. 신고할지, 침묵할지, 그 중간 어딘가를 선택하는 윤리적 딜레마
탄소 거래의 함정
카본(Carbon Credit)은 매일 아침 자신의 이름표를 들여다봤다.
작고 초록빛 플라스틱 카드. 표면에는 “1톤 CO₂ 감축 인증”이라고 새겨져 있었고, 그 아래 일련번호가 촘촘히 찍혀 있었다. 카드 뒷면에는 “VERRA 국제 검증 완료”라는 도장이 눌려 있었다. 카본은 자신의 이 도장이 자신의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존재 이유랄까.
그가 일하는 곳은 서울 여의도 한복판, ‘ESG 파트너스’라는 유리 건물 12층이었다. 창밖으로는 한강이 보였고, 복도 끝에는 대형 전광판이 걸려 있었다. 전광판에는 실시간으로 숫자가 흘렀다. 탄소 크레딧 거래 가격. 오늘은 톤당 $18.40이었다.
카본은 매일 그 숫자를 흘겨봤다. 올해 초만 해도 $12였던 게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ESG 붐 덕분이었다. 기업들이 탄소 중립 선언을 경쟁처럼 쏟아내던 2023년 이후, 그의 몸값은 꾸준히 올라갔다.
카본의 직장 동료는 에스지(ESG Fund)였다.
에스지는 항상 깔끔한 정장을 입었다. 머리는 빳빳하게 젤로 고정했고, 말할 때마다 “지속가능성”이나 “임팩트 투자” 같은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는 대형 자산운용사들을 상대로 탄소 크레딧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일을 했다. 요컨대 카본 같은 인증서들을 대량으로 사모아 묶음 상품을 만들고, 그걸 연기금이나 보험사에 팔았다.
“이번 분기 목표는 5만 톤이야.”
에스지가 아침 회의에서 말했다. 카본은 고개를 끄덕였다. 5만 톤이면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인증 절차, 현장 실사, 서류 검토까지 거치면 보통 석 달은 걸렸다.
“충분히 공급될 수 있어?”
에스지가 카본 쪽을 쳐다봤다. 카본은 잠시 망설였다.
“될 거야.”
그게 첫 번째 거짓말이었다.
문제는 2주 뒤 터졌다.
카본이 서류를 검토하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공급 목록 중 약 3,000톤 분량의 크레딧이 인도네시아 산림 보전 프로젝트에서 온 것이었는데, 그 프로젝트의 VERRA 등록 번호가 어딘가 익숙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너무 흔했다. 번호 하나가 두 개의 다른 공급처에서 동시에 올라와 있었다.
카본은 손이 살짝 떨렸다.
이건 중복 발행이었다. 같은 감축량이 두 곳에서 팔린 것. 하나의 숲이 두 번 팔린 셈이었다. 숲은 가만히 서 있는데 서류는 두 배로 뛰어다녔다.
그는 일단 창을 닫았다. 아무도 안 봤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뇌는 이미 그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카본은 오래된 친구 옵션(Option Contract)을 만났다. 옵션은 항상 두 가지 경우의 수를 갖고 다니는 친구였다. 낙천적인지 비관적인지 항상 모호했다. 그래서 카본은 그에게 솔직하게 털어놨다.
“나 오늘 뭔가 이상한 거 봤어.”
“얼마짜리?”
“톤 계산하면 지금 시세로 $18짜리 3,000톤이니까…”
“5만 달러 넘네.”
“그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게 가짜라는 게 문제야.”
옵션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한강이 강 건너편 빌딩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신고하면?”
“에스지가 뭐라 할 것 같아?”
“모른 척하면?”
“그럼 나는 뭐가 되는 거야.”
카본이 자기 이름표를 내려다봤다. ‘1톤 CO₂ 감축 인증’. 뒤집으면 ‘가짜일 수도 있음’이라고 쓰여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옵션이 말했다.
“근데 말이야, 시장 전체가 지금 그런 거 모르고 돌아가. 네가 신고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냐?”
카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이 마음에 걸렸다.
다음날 오전, 카본은 에스지를 찾아갔다.
에스지는 전화를 두 개 동시에 받으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보고서 더미가 쌓여 있었고, 그 위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Q2 마감 D-3”이라고 적혀 있었다.
카본이 서류를 내밀었다.
“이 번호 확인해봐. 중복이야.”
에스지는 전화를 끊고 서류를 훑었다. 표정이 잠깐 굳었다가 다시 풀렸다. 그게 더 무서웠다.
“어디서 났어?”
“인도네시아 공급처. 두 곳에서 동시에 올라왔어.”
에스지는 서류를 카본에게 돌려줬다.
“납품처에 확인 요청 보내. 행정 오류일 수 있어.”
“행정 오류라고?”
“서류 번호 실수는 가끔 있잖아.”
카본은 잠시 그의 얼굴을 봤다. 에스지의 눈은 이미 모니터로 돌아가 있었다. 서류는 카본의 손에서 공중에 떠 있었다.
행정 오류.
그 두 단어가 한동안 귀에 맴돌았다. 그 두 단어의 실제 의미는 아마도 ‘네가 알아서 해라’였다.
카본은 사무실로 돌아와 VERRA 공식 사이트를 열었다.
2023년 이후 탄소 크레딧 시장에 관한 자료들을 뒤졌다. 실제로 2023년 초 영국 가디언과 독일 연구기관이 공동 조사한 보고서가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마존 우림 보전 크레딧의 90% 이상이 실제 감축 효과가 없는 ‘유령 크레딧(phantom credit)‘이라는 내용이었다. VERRA는 해당 보도에 반박했지만, 시장은 잠깐 흔들렸다. 그 해 탄소 크레딧 가격이 일시적으로 30% 넘게 하락하기도 했다.
그 뉴스를 처음 봤을 때, 카본은 “내 얘기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아닌 것 같았다.
카본은 점심을 굶었다. 오후 내내 그 번호를 보며 앉아 있었다.
어떤 선택지가 있나 따져봤다.
첫째, 에스지 말대로 납품처에 확인만 하고 넘어간다. 만약 행정 오류로 정리되면 해피엔딩. 만약 진짜 중복이면 서류상 정리되는 척 덮인다. 카본은 아무것도 몰랐던 셈이 된다.
둘째, 직접 VERRA에 신고한다. 조사가 들어오고 해당 크레딧은 취소된다. 에스지의 포트폴리오에 구멍이 난다. Q2 마감이 날아간다. 카본은 아마 그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않게 될 것이다.
셋째,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 한강을 바라본다. 강은 오늘도 흐른다.
카본은 세 번째를 선택했다. 일단은.
창밖으로 해가 기울었다.
카본은 자신의 이름표를 책상 서랍 안으로 밀어넣었다. 딸깍 소리가 났다. 작고 조용한 소리였는데, 그날 오후 가장 크게 들렸다.
그리고 그는 노트를 꺼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납품처에 보내는 공문이었다. 형식적인 확인 요청문이었지만, 그는 서류 번호를 아주 구체적으로, 빠짐없이, 다 적어넣었다. 담당자명, 날짜, 번호 두 개를 나란히 적고 밑줄을 그었다. 그 공문이 무사히 파묻힐 수도 있었지만, 누군가 나중에 감사를 하게 된다면 이 종이가 남아 있을 터였다.
카본은 그걸 봉투에 넣었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웅이 될 배짱도 없었다. 그 중간 어딘가, 서류 한 장이 지나갈 수 있는 틈새. 그 틈새가 오늘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자리였다.
그날 저녁, 카본 크레딧 시장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종가 $18.40을 기록했다.
VERRA 등록 번호 하나가 두 번 팔렸다는 사실은 여전히 서류 어딘가에 묻혀 있었다. 에스지는 Q2 보고서를 제때 제출했다. 고객사 연기금은 ‘친환경 포트폴리오 구성 완료’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숲은 인도네시아 어딘가에 조용히 서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카본은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를 하나 샀다. 계산대에서 영수증을 받으며 생각했다. 이 맥주 캔을 재활용하면 탄소 몇 그램이 줄어들까. 아마 아주 조금. 아무도 거래하지 않을 만큼.
그래도 줄어든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게 위로가 됐다. 조금.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