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의 최후 경매
40년을 현물 거래로 살아온 중견 거래인이 블록체인 시대 앞에서 자신의 마지막 거래 상대를 만나며, 아날로그 거래 세상의 종말을 맞이한다.
금고 문을 여는 소리는 마흔 해가 지나도 똑같다. 쇠가 쇠를 긁는 그 둔탁한 마찰음이 나면, 나는 손끝이 먼저 저릿해진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뿐이었다.
내 이름은 서상현. 종로3가 뒷골목에서 귀금속 현물을 취급하는 중개상이다. 스물셋에 이 골목에 들어와 예순셋이 된 지금까지, 나는 오로지 손에 잡히는 것만 믿고 살았다. 통장의 숫자보다 저울 위의 무게를, 계약서의 도장보다 손바닥에 남는 서늘한 감촉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금소라고 부른다. 본명이 아니다. 본명이랄 게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녀는 원소기호로 불리는 게 더 어울릴 존재였지만, 나는 처음 만난 날부터 그렇게 불렀다. 노란 저녁 햇살이 골목 끝에서 비쳐 들어오던 어느 가을날, 도매상 뒤편 창고에서 24K 골드바 한 덩이를 손질하다가 처음 그 이름을 붙였다. 금소는 서두르지 않는 여자였다. 시세판이 요동칠 때도, 전쟁이 나고 환율이 뒤집히고 은행이 무너져도 그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나는 변하지 않아. 세상이 변할 뿐이야.” 그녀가 종종 하던 말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2020년 봄, 전염병이 전 세계 증시를 반토막 냈을 때도 그녀만은 오히려 값이 올랐다. 그해 8월, 온스당 2,075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는 뉴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날, 나는 창고 구석에서 그 소식을 들으며 웃었다. 세상이 무너질수록 사람들은 그녀를 찾았다. 불안할 때 사람이 손을 뻗는 곳, 그게 그녀였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게 늘 그렇듯, 화려한 순간보다 지루한 시간이 더 많았다. 나는 그녀를 만지고, 무게를 재고, 순도를 시험하고, 영수증에 도장을 찍는 일을 반복했다. 그 반복이 지겹다고 느낀 적은 없다. 오히려 그 지루함 속에서 나는 안심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저울이 가리키는 숫자는 언제나 정직했고, 그 정직함이 내가 이 일을 사십 년이나 붙들고 있었던 이유였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골목의 공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이 창고에 들어와서는 저울을 쳐다보지도 않고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봤다. “이거 실물 안 봐도 되죠? 토큰으로 살게요.” 그들은 그녀를 만지지 않고 소유하고 싶어 했다. 블록체인이라는 원장 위에 그녀의 존재를 코드로 새기고, 그 코드 한 조각을 사고파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런던의 어느 협회가 금괴마다 디지털 인식표를 붙여 원장에 등록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실물은 창고 어딘가 깊숙한 곳에 눕혀 놓은 채, 사람들은 화면 속의 숫자만 주고받았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다기보다, 서운했다. 금소를 만지지 않고 소유한다는 게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의 값어치는 손끝의 감촉에서 나온다고 믿었으니까. 차갑고, 묵직하고, 흠집 하나 없이 매끈한 그 표면. 그걸 건너뛰고 그녀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겨울, 금소가 처음으로 내게 불안한 표정을 보였다. “상현씨, 나 이제 두 얼굴로 살아야 하나 봐.” 그녀는 창고 선반 위에 앉아 발끝을 까딱이며 말했다. “나를 원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은데, 이제는 나를 안 만지고도 나를 가질 수 있대. 내가 진짜 나인지, 화면 속 숫자가 나인지도 모르겠어.”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사십 년간 그녀와 나눈 대화 중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다. “너는 그대로야. 바뀐 건 사람들이 너를 만나는 방식이지.” 위로랍시고 건넨 말이었지만, 스스로도 그 말을 얼마나 믿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 창고에서의 마지막 거래를 앞두고 있었다. 건물주가 재개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다음 달이면 이 골목은 철거 크레인이 들어선다. 내 나이의 중개상들은 하나둘 문을 닫거나 온라인 플랫폼에 자리를 내줬다. 현물을 저울에 달아 손에서 손으로 넘기던 이 방식이, 이제는 골동품처럼 취급받는다.
마지막 손님은 젊은 여자였다. 서른 초반쯤 됐을까. 명함에는 ‘디지털 자산 운용사’ 라는 낯선 직함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창고에 들어서자마자 신기하다는 눈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실제로 이렇게 저울에 달아서 파시는 거예요? 처음 봐요.” 나는 대답 대신 골드바 하나를 저울 위에 올렸다. 바늘이 흔들리다가 멈췄다. 정확히 1킬로그램. 오차 없는 숫자였다.
“저는 사실 이걸 사서 토큰으로 다시 발행할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실물은 금고에 보관하고, 소유권만 블록체인에 올리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이 굳이 이렇게 창고까지 안 와도 되잖아요.” 말투에 악의는 없었다. 오히려 담담했다. 그녀에게 이건 그저 효율의 문제였다.
나는 골드바를 그녀의 손에 건네기 전에, 잠시 붙들고 있었다. 창고의 낡은 형광등 아래서 표면이 은은하게 빛났다. 금소가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 무게로, 그 서늘함으로 존재를 증명할 뿐이었다.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내가 물었다. “당신들이 토큰으로 만들어도, 결국 이 실물은 어딘가의 금고에 그대로 있어야 하잖아요. 그럼 결국은 내가 사십 년간 만져온 이게 진짜인 거 아닌가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웃었다. “맞아요. 저희가 파는 건 결국 이 무게에 대한 약속이에요. 무게 자체는 여전히 여기 있어야 하죠. 저는 그 약속을 더 빨리,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을 할 뿐이에요.”
그 말이 이상하게 내 마음을 눅여줬다. 금소는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다만 그녀를 만나는 통로가 늘어나는 것뿐이었다.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던 그 감촉이, 이제는 화면 속 숫자 하나로도 전해질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을 배신이라 여겼지만, 어쩌면 그저 확장이었는지도 모른다.
계약서에 마지막 도장을 찍고 나서, 나는 금소가 담긴 케이스를 여자에게 건넸다. 그녀가 창고를 나서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오랫동안 서 있었다. 저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다시는 이 저울 위에 그녀를 올릴 일이 없을 것이다.
밤이 되어 창고 문을 잠그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빈 진열장을 훑어봤다. 사십 년 동안 이 자리에서 그녀와 나눈 시간들이 먼지처럼 쌓여 있었다. 억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한 구석도 있었다. 사랑이란 게 원래 붙잡아 두려 할수록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법이니까. 그녀는 내가 아니어도, 이 창고가 아니어도, 어디에선가 계속 그 무게로 존재할 것이다. 화면 속 숫자로든, 금고 속 덩어리로든.
골목을 나서며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손바닥에 아직 남아 있는 그 서늘한 감촉만을 오래도록 만지작거렸다. 언젠가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저울도 창고도 없이, 그저 화면 속 숫자로 마주 앉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