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7 · Vol. III · No. 44
Car vehicle car factory assembly
Openverse (CC0)
스릴러
GLOBAL

광산 깊은 곳의 양심

배터리 원자재 개발을 주도하던 엔지니어가 공급망의 은폐된 착취를 마주하고 경력과 양심 사이에서 절실한 결단을 맞이한다.

· 3분 읽기 · #스토리#스릴러

강민준은 파일을 열기 전에 잠시 멈췄다.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 새벽 두 시. 나머지 직원들은 퇴근한 지 오래였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다 꺼졌다. 노트북 화면만이 그의 얼굴을 밝혔다. 이메일 첨부파일의 이름은 단순했다.

공급망감사_초안_삭제요망.pdf


강민준이 대지소재에 입사한 지 7년 됐다. 배터리 원자재, 특히 코발트 조달을 전담하는 수석 엔지니어였다. 이 일을 택한 건 전기차 혁명의 한복판에 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깨끗한 에너지, 더 나은 세상. 그 말은 처음엔 가볍지 않았다.

파일을 열었다.

스크롤이 내려갈수록 손가락이 느려졌다. 문서는 대지소재의 코발트 공급사 중 하나인 콩고민주공화국 하청 광산 세 곳을 다루고 있었다. 도표와 위성 사진, 현지 NGO의 인터뷰 녹취 발췌문. 그중 한 문단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감사팀장이 손으로 그은 것 같았다.

열두 살에서 열다섯 살 사이의 아이들이 갱도 안에서 발견됐습니다. 장비 없이 손으로. 환기가 없는 터널.

강민준은 화면에서 눈을 뗐다. 창밖의 한강이 검은 띠처럼 누워 있었다.

전 세계 코발트 생산량의 70퍼센트 이상이 콩고에서 나온다. 그건 업계 상식이었다. 그리고 그 상식의 이면에 이런 문서가 있다는 것도, 사실 반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다는 것과 파일로 직면하는 것은 달랐다. 알고 있을 때는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파일을 열고 나면 그 여지가 사라졌다.

이메일 발신자는 감사팀의 이재원 팀장이었다. 수신자는 강민준 혼자였다. 본문은 짧았다.

민준 씨, 이거 당신한테만 보내는 겁니다. 다음 주 임원 보고 전에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이미 결정했어요. 당신은 어떻게 할지.

이재원은 다음 날 회사에 오지 않았다. 인사팀은 “건강상 이유로 장기 휴직”이라고 했다.


강민준은 일주일을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회의에 참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후배들의 질문에 답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내부에서는 달랐다.

그는 밤마다 그 파일을 다시 읽었다. 읽을수록 세부 항목들이 구체성을 더해갔다. 아이들의 키. 갱도의 너비. 하루 교대 시간. 그리고 대지소재가 그 광산과 맺은 계약의 단가. 단가는 낮았다. 말도 안 되게 낮았다. 그 낮음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였다.

임원 보고 전날 밤, 그는 상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공급망 감사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일 보고 전에 잠깐 시간 주시겠습니까?

답장은 오 분 만에 왔다.

민준 씨, 그거 이미 알고 있어요. 법무팀이랑 조율 중이고. 당신이 신경 쓸 건 아닙니다.

강민준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이미 알고 있다. 그 말의 무게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알고 있으면서 보고서에 적지 않은 것이다. 알고 있으면서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재원이 보낸 파일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각주가 하나 있었다. 이 문서의 원본은 세 곳에 보관됩니다. 그 아래에 세 개의 경로가 적혀 있었다. 하나는 대지소재 내부 서버. 하나는 감사팀장의 개인 드라이브. 하나는 강민준이 한참을 바라본 끝에야 이해한, 공란으로 남겨진 세 번째 경로였다.

이재원은 그 자리를 비워두고 떠났다.


임원 보고는 오전 열 시에 시작됐다.

강민준은 회의실 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잡았다. 내부에서 목소리들이 들렸다. 파워포인트 화면이 넘어가는 소리. 누군가 웃었다. 분기 실적이 좋았다.

손잡이는 차가웠다.

그가 가진 것은 두 가지였다. 임원 보고가 끝나기 전에 그 파일을 외부로 넘길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쓰지 않을 선택.

7년 치 경력이 한쪽에 있었다. 다음 달 아이의 학교 입학금이 있었다. 팀원 네 명의 얼굴이 있었다.

다른 쪽에는 갱도의 너비와 아이들의 키가 있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강민준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복도 끝에서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몇 분이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이 켜졌다. 저장된 연락처 목록이 떴다. 스크롤이 멈춘 곳에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그 이름을 누를지 말지를, 강민준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렸다.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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