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보험료
탄소 중립 공약과 실제 생산 원가 괴리 속에서 조직 내 이해 충돌에 직면한 환경경영팀 부사장의 도덕적 선택
강민준은 이른 아침부터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의도 본사 35층, 창문 너머로 한강이 회색빛 하늘 아래 조용히 흘렀다. 그의 책상 위에는 A4 용지 두꺼운 묶음이 놓여 있었다. 2026 ESG 통합보고서 초안, 300페이지. 그가 이 자리, 대영케미칼 환경경영팀 부사장직을 맡은 지 3년째였다.
그는 보고서 58페이지를 폈다. ‘탄소중립 로드맵: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 2050년 넷제로 달성.’ 그가 직접 설계하고, 이사회에서 박수를 받은 문장이었다. 공약 발표 당시 대영케미칼(티커: DYC)의 주가는 이틀 동안 8.3% 올랐다. ESG 채권 발행 이자율은 0.7%포인트 낮아졌다. 최형준 CEO가 전경련 포럼에서 그의 이름을 직접 언급했다. “강 부사장은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그때의 강민준은 그 말이 자랑스러웠다.
지금은 달랐다.
이혜진이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환경경영팀 대리, 서른두 살. 환경공학 박사 과정을 접고 이쪽으로 온 원칙주의자였다. 강민준은 그녀가 내민 보고서 한 장을 건네받았다.
“부사장님, EU CBAM 4분기 예측치 나왔습니다.”
2026년 1월, EU는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을 전면 시행했다. 강민준은 3년 전부터 이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측치와 실제 숫자는 달랐다. EU ETS 연계 탄소 가격은 톤당 €62로 올라 있었다. 대영케미칼이 유럽에 수출하는 염화물 복합수지의 탄소 내재도는 제품 톤당 1.8톤CO2환산량이었다. 연간 유럽 수출량 22만 톤에 단순 곱셈을 하면 CBAM 납부액은 연간 약 2,450만 유로, 한화로 360억 원이 넘었다.
강민준은 숫자를 한 번 더 봤다. 360억 원. 작년 환경경영팀 연간 예산의 여섯 배였다.
“이걸 CFO실에 보냈습니까?”
“네. 어제 오후에요.”
이혜진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강민준은 그 표정의 의미를 알았다. 숫자가 나오면 반드시 박철수가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박철수 생산부문 부사장은 같은 날 오후 2시에 강민준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노크 없이.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대영케미칼에서 30년을 버틴 생산 전문가. 여수 공장에서 시작해 울산, 당진을 거쳤다. 그의 언어는 언제나 단위원가와 설비 가동률이었다.
“강 부사장, 솔직하게 얘기합시다.”
그는 의자에 앉지도 않고 책상 모서리에 기댔다.
“CBAM 360억, 거기에 K-ETS 유상 배출권 추가 구매 비용 280억. 올해 우리가 탄소 관련으로 나가는 돈이 640억을 넘어요. 그런데 재생에너지 전환 계획까지 올라오면 전력 단가가 현재 대비 28% 오릅니다. 여수 3공장 기준으로 연간 추가 전력비가 190억이에요.”
강민준은 팔짱을 꼈다.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그 로드맵을 그대로 밀고 가겠다는 겁니까?”
“로드맵은 이사회 의결 사항입니다.”
“이사회 의결이 현장 원가를 바꿔줍니까?” 박철수의 목소리가 한 단계 낮아졌다. “여수 3공장 영업이익률이 작년에 4.2%였어요. 올해 이 비용 다 반영하면 1%대로 떨어집니다. 1%면 거의 공짜로 돌리는 겁니다. 손익분기점 아래로 내려가면 공장 못 돌려요.”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탄소 감축 목표를 현실화하자는 거죠. 2030년 40%를 25%로 낮추고, 일정을 5년 늦추는 걸 이사회에 올립시다. 요즘 다들 그렇게 합니다. 여러 글로벌 기업들도 목표를 조정했잖아요.”
강민준은 창밖을 봤다. 한강 건너편 빌딩들이 흐릿했다.
“그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 박 부사장.”
“당신 소관으로 만들어야 해요. 이 숫자를 설계한 사람이 당신이니까.”
박철수가 나간 뒤, 강민준은 오래 앉아 있었다. 그는 이 회사에 오기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11년을 보냈다. 전공은 고분자화학이었다. 연구소를 떠난 건 2021년, 대영케미칼이 K-ESG 도입 초기에 외부 전문가를 영입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당시 홍대식 CFO가 직접 전화를 했다. “강 박사님, 이제 ESG가 리스크 관리입니다. 회사 생존의 문제예요.”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와 실제 감축은 다른 얘기였다. 강민준은 취임 이후 그 경계선 위에서 줄을 탔다. 목표는 높게, 실행은 단계적으로. 보고서는 정직하게, 단 불리한 숫자는 부록에. 그는 스스로 이것을 ‘현실적 이상주의’라고 불렀다. 이사회도 투자자도 그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혜진은 달랐다.
“부사장님,” 그녀가 퇴근 전 사무실에 다시 들어왔다. “CSRD 제3자 검증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녀가 파일을 열었다. EU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에 따른 공급망 실사 보고서였다. 대영케미칼은 유럽 3개 고객사에 수지 원료를 납품했고, 그 고객사들이 CSRD 의무 대상이었다. 검증 기관은 독일계 SGS 컨소시엄이었다.
“Scope 3 배출량에 대한 재계산을 요청했습니다. 현재 당사가 보고한 Scope 3 수치가 하위 공급망 실제 배출량을 38% 과소 반영했다는 게 검증단 의견이에요.”
강민준은 파일을 받아 들었다. 숫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Scope 1, 직접 배출. Scope 2, 간접 에너지. Scope 3, 공급망 전체. 그동안 대영케미칼이 보고한 Scope 3 수치는 주요 원재료 공급사 15곳만 포함한 것이었다. 하위 2, 3단계 공급망의 배출량은 추정치였고, 그 추정은 낙관적으로 잡혀 있었다. 검증단이 보기에 허수가 있었다.
“이걸 다음 보고서에 반영하면 어떻게 됩니까?”
“전체 Scope 3 배출량이 약 31만 톤 늘어납니다. 그러면 2030년 목표 달성률이 현재 계획 대비 22%포인트 하락합니다.”
강민준은 파일을 닫았다.
“우선은 내가 검토합니다.”
이혜진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 침묵이 길었다.
“부사장님, 이건 공개 보고서에 들어가야 하는 수치입니다. 검증 결과는 고객사가 이미 받았을 거예요.”
강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이 대리. 오늘은 먼저 들어가세요.”
이틀 뒤, 홍대식 CFO가 강민준을 불렀다.
CFO 사무실은 34층이었다. 한 층 아래지만 강민준은 그 엘리베이터가 늘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홍대식은 마른 체형의 55세 남자였다. 그는 항상 스프레드시트를 보며 대화했다.
“강 부사장, CBAM 비용 최적화 방안을 하나 제안하고 싶어서요.”
홍대식은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 슬라이드 제목은 ‘탄소 크레딧 포트폴리오 재조정’이었다.
“현재 우리가 K-ETS에서 유상 구매하는 배출권 가격이 톤당 1만 2,000원 수준이에요. 그런데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비교적 저가 크레딧을 확보하면 동일한 상쇄 효과를 훨씬 싸게 낼 수 있습니다. 산림 탄소 프로젝트 크레딧은 톤당 3,000원대도 있어요.”
강민준은 화면을 봤다.
“자발적 탄소시장 크레딧은 CBAM 인정 요건을 충족합니까?”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일부 기준은 충족합니다. 단 EU 측이 인정하는 기준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강민준은 한 번 더 물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어느 정도입니까?”
홍대식이 안경을 고쳐 썼다.
“실무적으로는, 우리가 EU 규제 당국에 직접 노출될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한국 기업에 대한 현장 실사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거든요.”
그 말의 의미를 강민준은 정확하게 이해했다. 걸릴 가능성이 낮으니 써보자는 것이었다. 규정을 어기는 게 아니라 규정의 빈틈을 이용하는 것. 업계에서는 그것을 ‘탄소 차익거래’라고 불렀다. 규제 당국은 ‘그린워싱’이라고 불렀다.
“홍 CFO, 이건 제 영역이 아닌 것 같은데요.”
“강 부사장 영역이 맞습니다. ESG 보고서 서명이 부사장님 이름 아닙니까.”
강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토해 보겠습니다.”
강민준은 그날 밤 집에 가지 않았다. 사무실 소파에서 잠을 청하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불을 켰다. 책상에는 세 가지 문서가 놓여 있었다. CSRD 검증 결과. CFO의 자발적 탄소시장 크레딧 제안서. 2026 ESG 통합보고서 초안.
그는 연필을 들었다가 내려놨다.
10년 전, 연구소에서 탄소 포집 촉매를 연구할 때, 그는 숫자를 실험으로 검증했다. 숫자가 틀리면 실험이 틀린 것이었다. 수정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 이 숫자들은 실험이 아니었다. 이 숫자들은 공약이었고, 시장 기대였고, 주가였고, 사람들의 월급이었다.
CSRD 검증 결과를 그대로 반영하면 Scope 3 수치가 31만 톤 증가한다. 그것은 2030년 감축 목표를 공개적으로 하향하거나 일정을 재조정한다는 의미였다. 투자자 반응은 예측 가능했다. ESG 채권 이자율이 올라갈 것이다. 주가는 단기적으로 하락할 것이다. 박철수는 그 숫자를 들고 이사회에서 목표 완화를 밀어붙일 것이다.
반대로 검증 결과를 부록에 묻어두고 본문 수치는 현행 유지하면, 보고서는 매끄럽게 나간다. 고객사들이 이미 검증 보고서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CSRD 조항상 최종 책임 주체는 대영케미칼이 아니라 고객사다. 직접 제재를 받을 가능성은 낮았다. 홍대식의 말처럼.
강민준은 오래된 습관대로 계산을 시작했다.
단기 비용: 수치 반영 시 주가 영향 추정 5~8% 하락, 시총 약 3,200억 원 감소. 채권 이자율 상승분 연간 추가 이자 약 47억 원.
단기 이익: 수치 미반영 시 보고서 무결점, 이사회 마찰 없음, 탄소 크레딧 차익거래로 비용 절감 연간 약 130억 원.
그런데 계산이 거기서 멈췄다. 다음 항목을 어떻게 수치화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혜진이 그 파일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을 때의 표정. “이건 공개 보고서에 들어가야 하는 수치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녀의 목소리에 실렸던 무게감. 그것은 재무 모델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이혜진이 일찍 출근해 있었다.
강민준은 그녀의 자리 앞에 섰다.
“이 대리, CSRD 검증 결과에 대해 내가 정리한 게 있어요. 같이 보겠습니까.”
그는 파일을 내밀었다. 검증 결과를 그대로 반영한 수정 초안이었다. Scope 3 31만 톤 추가. 2030년 목표 달성률 재예측. 그에 따른 이행 계획 수정 방향.
이혜진은 파일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사회에 올리실 겁니까?”
“CFO실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 그쪽에 가져가겠습니다.”
“CFO실에서 막으면요?”
강민준은 잠시 생각했다.
“그러면 그걸 기록해두겠습니다.”
이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 무언가 안도의 기색이 있었다. 강민준은 그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기대는 언제나 무거웠다.
홍대식과의 두 번째 미팅은 사흘 뒤 잡혔다. 이번에는 박철수도 배석했다.
강민준이 수정 초안을 테이블에 놓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강 부사장,” 홍대식이 천천히 말했다. “이게 밖에 나가면 ESG 채권 신용등급에 영향이 갑니다. 지금 시장에서 대영케미칼 그린본드가 1조 2,000억 원 발행돼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수 3공장 상황은 이미 설명 들으셨죠?” 박철수가 끼어들었다. “목표 재조정 없이 이 수치가 나가면 시장이 더 강한 감축 요구를 합니다. 그러면 공장 가동을 실제로 줄여야 해요. 일자리 얘기입니다.”
일자리라는 단어가 공기 속에 떠 있었다.
강민준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CSRD 검증은 외부 기관이 수행한 겁니다. 결과가 이미 고객사에 전달돼 있어요. 우리가 공개 보고서에서 이 수치를 다르게 쓰면, 고객사 보고서와 우리 보고서가 달라집니다. 그게 규제 당국이 봤을 때 어떻게 보일지는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홍대식이 안경테를 만졌다.
“규제 당국이 볼 가능성이 얼마나 됩니까.”
“모릅니다.”
“강 부사장이 모르면 우리도 모르는 거죠.”
“그래서 저는 반영하는 쪽을 택합니다.”
짧은 침묵이 흘렀다.
“CEO께 올라갑니다.” 홍대식이 말했다. “CEO 결정 따르는 겁니까?”
강민준은 자신의 수정 초안을 다시 집어 들었다.
“최 대표께서 결정하시면 따릅니다. 단 제 의견서는 별도로 첨부하겠습니다.”
CEO 면담은 다음 주에 잡혔다.
최형준은 강민준보다 세 살 많은 전형적인 대기업 경영자였다. 강민준이 이사회에서 탄소 중립 로드맵을 발표할 때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그 CEO였다. 지금 그의 표정은 그때와 달랐다.
“강 부사장, 나는 ESG를 믿습니다.”
최형준이 운을 뗐다.
“그런데 ESG가 회사를 살리는 방향으로 작동해야지, 죽이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대표님.”
“그럼 이 수치를 어떻게 해야 회사가 삽니까.”
“정직하게 내놓고, 이행 계획을 수정하는 겁니다. 시장은 거짓말보다 정직한 하향 조정을 더 용인합니다.”
“더 용인합니까, 아니면 덜 패닉합니까.”
강민준은 그 질문에 잠시 멈췄다. 정확한 질문이었다.
“덜 패닉합니다.”
“그 가정이 맞다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보장할 수 없습니다.”
최형준은 창밖을 봤다. 강민준의 사무실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한강이었다.
“강 부사장, 당신이 3년 전에 만든 로드맵 기억합니까. 그때 우리 주가가 이틀 만에 8% 넘게 올랐습니다.”
“기억합니다.”
“그게 전부 허수였습니까.”
강민준은 즉시 답하지 않았다.
“허수가 아니었습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단 현실과 목표 사이의 간격을 우리가 너무 낙관적으로 봤습니다.”
“그 간격을 좁히는 게 당신 일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실제 수치를 반영한 로드맵 수정안을 올리는 겁니다.”
최형준은 오래 생각하는 척했다. 강민준은 그것이 생각이 아니라 계산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누군가와 의논을 했을 것이다. 홍대식이거나, 사외이사이거나.
“일주일 줍니다. 수정안을 가져오되, 단기 주가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강민준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단기 주가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 그것은 방향이 아니었다. 조건이었다. CEO는 실제로 수정안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정안이 얼마나 부드럽게 포장될 수 있는지를 보고 싶었다. 강민준이 어디까지 구부러질 수 있는지를.
일주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이혜진은 외근 중이었다. 빈 사무실에서 그는 다시 보고서 58페이지를 폈다. ‘탄소중립 로드맵: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 2050년 넷제로 달성.’
3년 전에 그가 쓴 문장이었다. 그때 그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는가.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믿음과 계산은 다른 것이었다. 믿음은 검증이 필요 없었다. 계산은 현실이 필요했다.
CBAM 360억. K-ETS 유상 배출권 280억. 재생에너지 전환 190억. 합계 830억. 이것이 ‘탄소 비용’이라는 보험료였다. 회사가 계속 존재하기 위해, 시장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유럽 고객사를 잃지 않기 위해 내야 하는 보험료. 문제는 그 보험이 지구를 위한 것인지, 주주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직책을 위한 것인지가 점점 불분명해진다는 것이었다.
강민준은 펜을 들었다.
수정안 표지에 적기 시작했다. 제목: 2026 ESG 통합보고서 수정 초안 — CSRD 제3자 검증 결과 반영. 작성자: 강민준. 날짜: 2026년 8월.
그는 멈췄다.
이 수정안을 올리면 두 가지 결과 중 하나가 올 것이다. 이사회가 수용해 목표를 현실화하고 시장이 실망하거나, 이사회가 거부해 보고서를 그대로 내보내고 강민준은 의견서만 남기거나.
세 번째 가능성도 있었다. 강민준이 그 자리를 떠나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일주일이 있었다.
창밖으로 늦여름 햇볕이 한강에 반사되고 있었다. 물빛은 어제보다 조금 더 밝았다. 강민준은 그것을 보면서 연구소에 있던 시절 탄소 포집 실험을 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촉매 반응이 실패해도 데이터가 쌓였다. 데이터가 쌓이면 언젠가는 올바른 방향이 보였다. 그것이 과학이 좋았던 이유였다.
하지만 조직은 실험실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실패한 데이터는 기록에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남았다.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이 이야기는 허구이며, 등장하는 기업과 인물은 실존하지 않습니다.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