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7 · Vol. III · No. 44
Financial banking stock exchange
Openverse (CC0)
액션
GLOBAL

디지털 은행의 오프라인 전략

모바일 우선 핀테크가 100년 역사의 지역 은행을 인수하며 조직 문화 충돌을 마주한다.

· 4분 읽기 · #스토리#액션

핀웨이브가 창립 5년 만에 모바일 금융 앱 월간 활성 사용자 1,800만 명을 돌파한 것은 그해 봄의 일이었다. 대한민국 스마트폰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핀웨이브로 공과금을 내고, 주식을 사고, 대출 한도를 조회했다. 2020년대 중반 들어 순수 디지털 은행들이 오프라인 창구를 확보하기 위해 지역 금융사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랐고, 핀웨이브도 그 흐름 위에 서 있었다.

본사 사무실은 마포구 한 빌딩의 여섯 개 층을 차지했다. 복도에는 라이딩 자전거와 포켓볼 대가 있었다. 평균 나이 29세의 엔지니어들은 슬리퍼를 신고 출근했다.

그 봄, 대표이사 정민준은 이사회 자료를 넘기다 손을 멈췄다.

“오프라인 지점이 없는 건 약점 아닌가요.”

침묵이 회의실을 채웠다. 시니어 투자자 한 명이 기침을 했다.

“우리 사용자의 38%가 50대 이상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자주 묻는 것은 ‘근처 지점이 어디냐’예요.”

정민준은 보고서를 덮었다. “한백저축은행 이야기를 해봅시다.”


한백저축은행은 충남 천안에 본점을 둔 지방 은행이었다. 창립 102년. 전국 47개 지점. 디지털 전환에 뒤처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충청권에서만큼은 어느 시중은행도 따라올 수 없는 신뢰를 쌓아온 곳이었다. 70대 어르신들이 “내 돈은 한백에 있다”고 말하는 지역이었다.

실사 팀이 천안에 내려간 것은 인수 의향서를 보낸 지 3주 뒤였다. 팀장 이수현은 노트북 두 대와 클라우드 접속 설정을 들고 KTX에 올라탔다.

한백저축은행 본점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이수현은 잠시 멈췄다. 창구에는 물리적 번호표 기계가 있었다. 서류함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창구 직원들은 전부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한쪽 벽에는 1982년 창립 40주년 기념 동판이 걸려 있었다.

부행장 박성태가 나와 악수를 건넸다.

“멀리서 오셨군요.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여기선 일 얘기보다 밥 먼저입니다.”

이수현은 손목 시계를 봤다. 오전 11시 15분이었다.

“저희는 바로 데이터 룸 접근이 가능할까요. 오후에 콜이 있어서요.”

박성태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쳤다. “데이터 룸이요?”

“실사 자료 보관소 말씀드리는 겁니다. 물리적 공간이면 그쪽으로 바로—”

“아, 그거요.” 박성태가 복도 쪽을 가리켰다. “3층 문서실입니다. 안내 직원이랑 같이 가셔야 해요. 자료는 외부 반출이 안 됩니다. 복사도 요청서 먼저 내셔야 하고요.”

이수현은 노트북을 내려다봤다. “스캔은요?”

“스캔기가 고장 났거든요.”


이틀 뒤, 핀웨이브 본사에서 통합 로드맵 1차 회의가 열렸다. 한백 측에서는 행장 오영복과 IT 팀장 조현일이 올라왔다. 핀웨이브 쪽은 정민준과 개발 총괄 강다은이 마주 앉았다.

강다은이 노트북 화면을 프로젝터에 띄웠다. API 연동 도식이 펼쳐졌다.

“한백의 코어뱅킹 시스템을 핀웨이브 클라우드 인프라와 연동하는 데 약 8개월 예상합니다. 그 전에 중간 레이어를 두는 방식으로 앱 기능부터 붙이고—”

조현일이 손을 들었다. “잠깐요. 저희 코어뱅킹이 뭔지 아세요?”

“1990년대 레거시 시스템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닉스 기반—”

“1994년입니다. 32년 됐어요. 그 시스템으로 오늘 아침에도 이천 건 거래가 났습니다. 단 한 번도 안 죽었어요.”

강다은이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그레이션이 필요한 겁니다—”

“마이그레이션.” 조현일이 천천히 그 단어를 되뇌었다. “32년치 거래 데이터를 여러분 클라우드로 옮기라는 말씀이죠. 고객 1,200만 명 데이터를요.”

“저희 보안 인프라가—”

“저희는 금감원 검사 때마다 시스템 아키텍처 전체를 종이로 출력해서 드립니다. 여러분 클라우드 계약서가 몇 페이지인지 아세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오영복 행장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정 대표님.”

정민준이 고개를 들었다.

“저희가 100년 동안 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오영복의 목소리는 낮고 고른 편이었다. “논 팔아 가져온 돈을 맡아서, 30년 뒤에 그대로 돌려드리는 겁니다. 우리 직원들은 그 무게를 알아요. 시스템이 느린 게 아니라, 신중한 겁니다.”

정민준은 무언가 반박하려다 멈췄다.

“우리가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오영복이 계속했다. “다만 여러분이 생각하는 ‘빠름’과 우리가 생각하는 ‘안전’이 같은 건지 아직 모르겠다는 거예요.”


회의가 끝난 뒤 정민준은 옥상 흡연 구역에 혼자 올라갔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지만 그곳이 마포구에서 유일하게 전화가 잘 끊기는 장소였다.

서쪽으로 한강이 보였다.

핀웨이브가 5년 만에 1,800만 사용자를 모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 1,800만 명이 단 한 번도 종이 통장을 만든 적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영복이 말한 그 ‘논 팔아 가져온 돈’ — 그것이 핀웨이브의 서버를 거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천안 한백저축은행 3층 문서실 어딘가에는, 1950년대 어느 겨울 개설된 예금 통장이 아직도 종이로 보관되어 있을 터였다.

정민준은 폰을 꺼내 이수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DD 일정 한 주 더 늘려요. 우리가 모르는 게 있어.”


이틀 뒤, 이수현은 다시 KTX를 탔다. 이번에는 노트북 대신 메모 노트를 들고.

한백저축은행 천안 본점 창구에는 오전부터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창구 직원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할머니는 상담사에게 손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상담사는 웃으며 들었다.

이수현은 한쪽 의자에 앉아 그 풍경을 오래 지켜봤다. 그러다 수첩에 한 줄을 썼다.

이건 UI가 아니다.

인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조율해야 할 것들이 산처럼 남아 있었다. 코어뱅킹 통합, 조직 구조, 급여 체계, 지점 유지 여부. 그리고 그보다 더 무겁게, 두 집단이 서로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가 하는 질문.

창구 번호판 숫자가 하나씩 바뀌었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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