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8 · Vol. III · No.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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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GLOBAL

잊혀진 화폐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의 사기를 마주한 은행원의 도덕적 딜레마.

· 3분 읽기 · #스토리#스릴러

잊혀진 화폐

서울 여의도 어딘가, 새벽 두 시의 사무실은 빈 커피잔 냄새와 형광등 소리만 가득했다. K는 화면 두 개를 번갈아 보며 눈을 비롤다. 왼쪽 모니터엔 CYON 거래소의 내부 데이터베이스 스냅샷이 열려 있었다. 오른쪽엔 그가 지난 사흘 밤 동안 손으로 짜 넣은 대조표가 있었다.

숫자들이 맞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잘 맞았다. 의심스러울 만큼 완벽하게, 그리고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K은 은행 준법감시팀 소속 수석 분석관이었다. 나이 마흔셋. 이혼한 지 이년 됐고, 초등학교 삼학년인 딸은 전 아내와 함께 분당에 살았다. 주말마다 딸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 중 주로 침묵이 흘렀다. 그는 그 침묵이 싫었지만 끊지 않았다. 그 습관이 이 일과 닮아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거래소 CYON는 국내 코인 시장 3위 플레이어였다. 반년 전 은행권 제휴를 타진하면서 실사 자료를 제출했고, K의 팀이 검토를 맡았다. 대부분의 수치는 단정했다. 다만 거래량 데이터 하나가 그를 걸고 넘어졌다. 특정 코인 페어의 거래량이 피크 시간대에 정확히 1.73배씩 늘었다. 매일. 오차 없이.

자연은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K은 그 실마리를 따라 은행 내부망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대조 작업을 시작했다. 체인 분석 업체의 공개 보고서, 온체인 데이터 집계 서비스, CYON가 제출한 감사 보고서 부록. 세 소스를 교차했을 때 윤곽이 드러났다.

CYON는 자체 봇 계정 무리를 이용해 거래량을 부풀리고 있었다. 적어도 이년 반. 규모는 실거래 대비 최대 삼백 퍼센트. 가장 많이 부풀려진 종목은 거래소의 자체 발행 코인이었다. 상장 당시 “국내 최대 유동성”을 내세워 소매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그 코인이었다.

K은 대조표를 저장하지 않은 채 화면을 껐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팀장 J에게 보고 요청 메일을 보냈다. 제목은 “CYON 실사 건 추가 검토 필요”. J은 오후에 답장했다. “내일 잠깐 얘기해요.”

회의실 문을 닫으며 J이 먼저 말했다.

“어디까지 파악했어요?”

K은 파일을 펼치지 않고 말로 설명했다. 삼 분도 안 걸렸다. J은 블라인드를 내리며 물었다.

“문서화했어요?”

“아직요.”

“다행이네요.”

그 말이 이상했다. K은 천천히 되물었다.

“다행이라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J은 창밖을 보며 손을 포갰다.

“제휴 건 아직 살아 있어요. 위에서는 이쪽이 신사업 핵심이라고 보거든요. CYON 자체도 지금 규모 조정 중이고, 이 시점에 외부로 나가면 업계 전체가 흔들려요.”

“흔들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K 씨가 보기엔 그렇지.” J은 돌아봤다. 표정이 아주 피곤했다. “근데 그 코인 들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계좌만 팔십만 개야. 대부분 월급쟁이들이고. 당신이 이걸 터뜨리면 그 사람들 손실은 누가 책임져요?”

K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그는 서울 금융 감독 기관의 민원 포털을 브라우저에 열었다. 화면을 닫지도 제출하지도 않은 채 두 시간을 앉아 있었다.

팔십만 계좌. J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K도 숫자를 알고 있었다. 공시 자료로 확인된 소매 계좌 잔액 평균은 이십칠만 원대. 큰돈이 아니지만 작은 돈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비상금이거나 누군가의 첫 번째 투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돈은 허구로 부풀려진 숫자 위에 앉아 있었다.

동시에 그는 다른 계산도 하고 있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거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꺼진다. 터뜨리는 사람이 없어도. 그때가 되면 팔십만이 아니라 백오십만, 이백만이 물릴 수 있었다. 시간은 언제나 거품 편이 아니라 중력 편이었다.

그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S는 졸린 목소리로 받았다.

“아빠, 늦었어.”

“응, 미안. 그냥 목소리 들으려고.”

“나 숙제 다 했어.”

“잘했다.”

침묵이 흘렀다. K은 끊지 않았다. S도 끊지 않았다. 창밖에 여의도 빌딩들이 낮게 빛나고 있었다. 어느 건물 어느 서버실에서 오늘 밤도 봇들이 주문을 찍어내고 있을 것이었다. 숫자는 계속 쌓이고 있었다. 누구도 보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분명히.

전화를 끊고 나서 K은 민원 포털 탭을 다시 열었다. 첨부 파일 버튼 위에 커서가 멈췄다.

그는 아직 클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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