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건물 앞에서의 만남
경매 전 마지막 날, 가난한 건축가와 부유한 투자자가 버려진 빌딩 앞에서 우연히 만나다
장면 1 — 황혼의 타일
오준서가 도면 통을 옆구리에 낀 채 골목 모퉁이를 돌았을 때, 건물은 그 자리에 있었다.
1974년에 지어진 6층짜리 상업 건물. 외벽 전면에 박힌 모자이크 타일이 저녁 햇살을 받아 주황빛으로 번졌다. 내일 오전 열 시에 경매가 시작된다. 그 뒤에는 아마 철거될 것이다.
준서는 도면 통을 발치에 내려놓고 담배 한 개비를 뽑았다.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저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건물을 올려다봤다. 이 건물 때문에 현상 설계에 지원했다. 보존 방안을 담은 제안서를 세 달 동안 다듬었다. 어제 탈락 통보를 받았다.
“당신도 이 건물 보러 온 거예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장면 2 — 첫 말
돌아보니 여자가 서 있었다. 캐시미어 코트, 가죽 서류 가방. 준서와 비슷한 나이처럼 보였지만 서 있는 방식이 달랐다. 아스팔트 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무게랄까.
“그냥… 마지막으로 보려고요.”
“마지막이라니.”
그녀가 건물 쪽으로 걸어왔다. 외벽의 타일을 손끝으로 가볍게 건드렸다.
“낙찰되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용도가 바뀌는 거죠.”
“철거되면 사라지죠.”
준서의 말이 생각보다 날카롭게 나왔다. 그녀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강윤아예요.”
“오준서. 건축가입니다.”
“압니다. 현상 설계 제안서 중에 당신 것 봤어요.”
장면 3 — 가격과 기억
침묵이 잠깐 흘렀다. 대로 너머에서 버스 소리가 들렸다.
그해 서울 도심 법원 경매 낙찰가율은 감정가 대비 평균 118퍼센트를 기록했다. 이 건물은 그보다 훨씬 높은 경쟁이 예상된다는 보도가 사흘 전에 나왔다. 준서는 그 기사를 세 번 읽었다. 읽을 때마다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제 제안서 어땠나요?”
그녀가 돌아봤다. 저녁 그림자가 얼굴 절반을 덮었다.
“외벽을 그대로 두고 내부만 바꾸는 안이었잖아요. 타일 패턴 조사도 직접 해왔던데.”
“탈락했으니까요.”
“그게 나쁜 안이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준서는 담배를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불을 붙이지 않은 채로.
장면 4 — 황금빛으로 변할 때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면서 외벽의 모자이크가 다른 색으로 변했다. 주황에서 금빛으로. 두 사람은 나란히 건물을 바라봤다.
“이 타일이요.”
그녀가 먼저 말했다.
“국내에서 이 패턴 만드는 곳이 없어졌다고 했죠, 제안서에. 1970년대 이후 단종됐다고.”
“맞아요.”
“그래서 저도 고민했어요.”
준서는 그녀를 봤다. 그녀는 여전히 건물을 보고 있었다. 뭔가를 말하려다 삼킨 사람의 표정이었다.
“당신이 낙찰자예요?”
“아직은 아니에요. 내일 입찰하는 사람이죠.”
바람이 골목을 훑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흩어졌다. 준서는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아까부터 계속 그랬다.
장면 5 — 삼 년과 오 년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제안서에 담지 않은 게 있을 것 같아서요. 이 건물을 처음 발견한 게 언제예요?”
준서는 대답 대신 1층 옆의 계단 난간을 올려다봤다. 녹이 슬어 있었다. 처음 이 골목에 들어선 건 삼 년 전 가을이었다. 길을 잃었을 때였다. 사무소 면접을 보러 가다가,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 오후였다.
“삼 년 됐어요.”
“저는 오 년.”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 건물 때문에 아버지 회사랑 처음으로 다퉜어요. 여기 올 때마다 조금씩 다시 싸우고.”
가로등 불빛이 타일 위에서 흔들렸다. 준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것이 더 이상했다.
그녀가 서류 가방을 고쳐 들었다.
“내일 결과 보면 알겠죠. 뭘 지킬 수 있는지.”
골목을 나서는 그녀의 발소리가 아스팔트 위에서 멀어졌다. 준서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건물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조금 전보다 더 환하게. 그 색이 사람 때문인지 가로등 때문인지, 준서는 구분하지 못했다.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