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7 · Vol. III · No. 44
Electric vehicle battery electric vehicle charging
Openverse (CC0)
유머
GLOBAL

폐배터리 공장의 초록 악마들

지하 채굴장처럼 느껴졌던 그곳에서, 엔지니어들은 뜻밖의 수익 동력을 발견한다.

· 4분 읽기 · #스토리#유머

공장 직원들 사이에서 그 건물의 별명은 ‘갱도’였다.

실제로는 인천 외곽 낡은 공단 안에 있는 지상 2층짜리 건물이었다. 그러나 창문이라고는 환기구 크기가 고작이었고, 형광등 불빛은 언제나 어딘가 부족했으며, 전해질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코끝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상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곳이었다. 그래서 청록순환의 폐배터리 처리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농담 삼아 ‘광부’라 부르며 웃었다.

“오늘도 악마들이 깨어났군.”

수석 엔지니어 강민준이 헬멧을 고쳐 쓰며 말했다. 오전 여섯 시 사십 분, 그는 처리 라인 3번 앞에서 상황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라인 끝에 쌓인 전기차 배터리팩들이 형광등 빛에 초록빛 반사를 튀기며 묵직하게 앉아 있었다. 실제로 초록색은 아니었다. 다만 그 배터리들이 일으키는 일들이 하나같이 예측 불가능하고 까다로웠기 때문에, 누군가가 농담으로 ‘초록 악마들’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 이름이 굳어버렸다.

초록 악마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첫째는 열폭주였다. 배터리 셀 내부 온도가 제어를 벗어나는 순간, 셀 하나가 이웃 셀에 열을 전달하고, 그 셀이 또 옆 셀을 끌어당기며 연쇄 반응이 시작된다. 짧은 순간에 수백 도 이상의 열이 발생하고, 라인이 멈추는 건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소화 방수에 하루가 꼬박 걸렸다. 강민준이 이 공장에서 일한 삼 년 동안 열폭주는 열여섯 번 일어났다. 그중 두 번은 강민준이 직접 소화기를 들었다.

둘째는 흑분 먼지였다. 배터리 셀을 분해하면 검은 가루, 이른바 흑분이 나왔다. 이 가루 안에 리튬, 코발트, 니켈 같은 가치 있는 금속들이 뒤섞여 있었다. 문제는 흑분이 공기 중 수분과 만나면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습도가 높아지는 날이면 좁은 틈새로 파고든 리튬 먼지가 소리 없이 작은 불꽃을 만들었다. 라인 담당자들은 이것을 ‘악마의 재채기’라고 불렀다.

그러나 악마들 중 가장 다루기 번거로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공정 마지막에 남는 전해질 폐액이었다. 배터리 셀에서 활물질을 추출하고 남은 유기 용매 혼합물은 규정상 특수 폐기물로 분류돼 매달 수거 업체에 처리를 위탁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청록순환의 회계팀장이 분기마다 한숨을 쉬는 이유 중 하나였다.

강민준은 오늘도 처리량 기록지를 펼쳤다. 지난주 전해질 폐액 수거량이 상당히 늘었다. 배터리 수거 물량이 늘면서 처리 비용도 비례해서 뛰고 있었다. 회계팀장의 한숨은 이제 계절과 무관했다.


이상한 일이 시작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리 라인 2번 담당인 박지현이 점심 식사 중에 태블릿을 들고 강민준에게 달려왔다. 화면에는 전날 오후 폐액 수거 드럼을 교체하다가 누군가가 실수로 탱크를 잘못 연결한 내역이 적혀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요.” 박지현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수거 기사님이 두 드럼을 혼합해서 가져가셨거든요. 그런데 그 업체 쪽에서 오늘 아침에 전화가 왔어요.”

“실수로 혼합됐으니 손해 배상하라고?”

“아니요. 저희한테 더 가져다 달라고요.”

강민준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알고 보니 사연이 있었다. 혼합 폐액을 분석한 수거 업체 실험실에서 특이점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청록순환의 특정 공정에서 나오는 폐액에는 일반적인 전해질 폐액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농도의 헥사플루오로인산리튬이 포함돼 있었다. 배터리 제조 공정에서 직접 사용하는 전해질 염이었다. 청록순환이 돈을 내고 버리고 있던 물질이 배터리 제조업체들이 비싸게 구입하는 재료 성분이었다.

“저희가 매달 처리 비용을 내고 내보내던 게…” 박지현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사실은 팔 수 있던 거였다는 거죠.”

강민준은 오후 내내 데이터를 들여다봤다. 공장이 가동된 이후 3년치 폐액 수거 내역, 성분 분석 기록, 수거 단가 변동 추이. 숫자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매달 청구서로만 보이던 항목이 이제는 아직 팔지 못한 재고처럼 보였다.

“이걸 제대로 분리해서 정제하려면 공정을 바꿔야 해.” 강민준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설비 투자가 필요하고, 인증도 새로 받아야 하고.”

박지현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얼마나 걸리겠어요?”

“글쎄.”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두 달 후, 청록순환의 처리 공장 회의실에서 소규모 회의가 열렸다. 공정 설계팀, 회계팀, 전해질 정제 분야의 외부 컨설턴트 한 명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강민준은 프레젠테이션 대신 한 장짜리 요약표를 내밀었다.

“현재 폐기물로 처리하고 있는 전해질 폐액 중 일부는 재정제 공정을 거치면 배터리 제조사에 직납 가능한 등급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설비 교체와 인증 취득까지 포함해서 최소 일 년 반.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회계팀장이 표를 들여다보더니 물었다. “어쨌든 지금보다는 낫겠죠?”

“지금은 돈 내고 버리고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받고 팔 수 있습니다. 차이는 상당합니다.”

회의실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엔 작게, 그러다 몇 명이 더 합류했다. 박지현도 입 꼬리를 올렸다. 강민준은 웃지 않았지만 표정이 조금 풀렸다.

“갱도에서 금 나온다는 얘기 아닙니까.” 회계팀장이 말했다.

“금은 아닙니다.” 강민준이 정정했다. “리튬이에요.”

“더 좋은 거 아닙니까?”

아무도 확답하지 않았다. 그날 회의가 끝나고 공장으로 돌아온 강민준은 라인 3번 끝에 쌓인 배터리팩들을 한동안 바라봤다. 초록 악마들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예측 불가능하고 고약하고, 가끔은 불꽃을 일으키는 것들. 그러나 그 안에 다른 무언가도 있었다.

악마들은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알고 나면, 그전으로는 돌아가기 어렵다.

강민준이 불만 삼아 입에 올리던 ‘갱도’라는 말의 어조가 언제부턴가 달라져 있었다. 불만보다는 익숙함 쪽으로, 그리고 어쩌면 아주 조금, 애착 쪽으로.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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