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을 붙이는 손
AI를 똑똑하게 만드는 저임금 라벨러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계를 키우고 있다.
밤 열한 시, 박지은의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화면 속 이미지들이 쉬지 않고 흘러왔다. 고속도로의 차선, 적막한 창고 안 팰릿, 아이의 얼굴 표정, 의료 차트 위의 종양 의심 부위. 그것들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를 그녀는 판단하고 분류하고 체크했다. 한 이미지당 약 사십 초. 시간당 삼천 원.
지은은 이 일을 2년 전부터 해왔다. 마흔넷. 아이 둘. 남편은 운수업을 하다 허리를 다쳐 지금은 집에 있었다. 처음 이 플랫폼에 가입했을 때 온보딩 화면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당신의 정답 하나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듭니다.’ 지은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냥 클릭했다. 클릭하면 돈이 들어왔다.
첫해에는 세상이 왜 이런 일을 사람에게 시키는지 가끔 궁금했다. 사진 속 보행자에게 사각형을 그리는 일, 차도와 인도를 색으로 구분하는 일, 대화 문장에 ‘공격적’이나 ‘중립’ 같은 꼬리표를 다는 일. 그게 어디에 쓰이는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같은 작업 풀에 있는 동료들도 비슷했다. 채팅창에 가끔 말을 거는 경기도 어딘가의 여자, 경남에서 야간 작업을 한다는 남자. 셋 모두 묻지 않는 편이 더 빨랐다.
그날 오후, 작업 화면 상단에 공지 하나가 떴다.
‘도심 보행자 인식 태스크 — AI 정확도 97.4% 도달. 해당 풀은 금주 내 종료 예정입니다.’
지은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97.4퍼센트. 이 태스크가 처음 열렸을 때 그 숫자가 얼마였는지 그녀는 흐릿하게 기억했다. 71퍼센트 초반 어딘가. 2년 전 온보딩 메일에 작게 쓰여 있었다. ‘현재 모델 성능 71.2%. 여러분의 기여로 더 나아집니다.’
26퍼센트. 그 간극을 채운 것이 무엇인지 그녀는 이제 알았다.
저녁을 차리다 말고 그녀는 주방 창가에 잠시 섰다. 작년 가을, 국제 AI 콘퍼런스 뉴스를 보다가 우연히 읽은 단락이 떠올랐다. 세계 각지의 데이터 라벨러 수백만 명, 그중 대부분은 시간당 1달러에서 3달러 사이를 받으며 하루 종일 이미지를 분류한다고 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의 작은 도시들. 그 클릭들이 쌓여 모델이 충분히 똑똑해지면 더 이상 그 클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지은은 그때 남 이야기처럼 여겼다. 자신은 그나마 한국에서, 그들보다 조금 더 받는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오늘 그 공지를 읽고 나서야 그 차이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71에서 97로 오르는 데 필요한 것은 어디서나 같았다. 손. 눈. 판단. 그리고 판단이 충분히 쌓이면 그 판단을 하던 사람은 필요 없어졌다.
지은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다음 태스크 풀이 이미 열려 있었다. ‘자율주행 시나리오 — 비 오는 밤 도심 보행자 추적’. 이미지당 사십오 원. 하루 열 시간을 꼬박 채워야 최저임금 경계에 겨우 닿는 금액이었다.
첫 번째 이미지를 열었다. 비 오는 사거리. 가로등 아래 우산을 쓴 노인 한 명. 그녀는 마우스를 쥐고, 박스를 그리고, ‘보행자’를 선택하고, 클릭했다.
다음 이미지. 또 다음 이미지. 손이 움직였다.
그 손이 무엇을 먹이고 있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어서인지, 아직 멈추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는 오늘 밤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창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