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7 · Vol. III · No. 37
액션
GLOBAL

칩 전쟁의 최후 결전

신성반도체의 회장 민준이 국가 지원금과 미국 규제 사이에 갇혀 회사 존속을 위한 고위험 기술 베팅을 감행하며, 임원진의 반발과 맞서 고독한 결정을 강행한다.

· 4분 읽기 · #스토리#액션

자정의 공장 불빛이 유리창에 번지고 있었다. 민준은 회의실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신성반도체의 클린룸은 새벽 두 시에도 쉬지 않았다. 방진복을 입은 기술자들이 개미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유리 너머로 가물거렸다.

그의 손에는 두 장의 서류가 있었다. 한 장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내려온 국가첨단전략산업 지원 협약서였다. 3조 2천억 원. 다른 한 장은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에서 보내온 수출 통제 예비 통지였다. 14나노 이하 공정 장비의 제3국 이전과 관련한 추가 검토가 개시된다는 내용이었다.

두 장의 종이가 정확히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민준이 신성반도체 회장직을 맡은 건 4년 전이었다. 아버지가 창업한 회사였지만, 아버지는 파운드리 사업에 손을 대지 않았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가 전부였다. 민준이 파운드리로 확장한 건 무모한 도전이라는 말을 들었다. 동방팹과 경쟁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임원들 절반이 반대했다.

그래도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SSMK 주가는 3년간 2.7배 올랐고, 국내 유일의 7나노 파운드리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민준은 그 숫자들이 오히려 지금 자신을 옭아매고 있다는 걸 알았다.

EUV, 즉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그게 다음 관문이었다.

2나노 공정은 EUV 없이는 불가능했다. EUV 장비는 전 세계에서 한 회사만 만든다. 네덜란드의 선도 장비사였다. 한 대에 4천억 원을 훌쩍 넘는 그 기계 없이는 다음 세대 칩을 만들 수 없었다. 신성반도체는 이미 세 대를 주문해 두었고, 그중 두 대는 내년 초 반입 예정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끼어들었다.

BIS의 수출 통제 강화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 워싱턴에서는 몇 달 전부터 신호가 왔다. 동방팹에 대한 장비 수출 차단이 선례가 됐고, 이제 그 반경이 넓어지는 중이었다. 직접적인 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성반도체의 EUV 장비 중 한 대는 제3국 부품 공장으로 이전할 계획이었다. 그 계획이 검토 대상에 걸렸다.

만약 BIS가 반입 이후 이전을 차단하면 어떻게 되는가. 세 대의 EUV를 모두 국내에 묶어야 하고, 그렇다면 당초 계획한 해외 파운드리 거점 전략은 물거품이 된다. 반대로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 해외 생산 이전에 제한이 붙는다. 두 길 다 막히는 셈이었다.

그래서 민준은 제3의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음 날 오전, 이사회가 열렸다. 회의실 테이블은 열두 명으로 가득했다. 민준이 직접 안건을 꺼냈다.

“정부 지원 협약은 수령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자체 자금과 외부 전략 투자자로 조달합니다. 동시에 EUV 장비는 전량 국내에 두고, 해외 파운드리 계획은 전면 재검토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 부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재무 담당이었다. 은발이 성성한 예순 초반의 남자로, 언제나 수치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회장님, 3조 2천억을 거절한다고요? 그 돈이 없으면 내년 Capex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고 계십니까?”

“압니다.”

“자체 조달이 가능합니까?”

민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이 부회장이 안경을 벗고 테이블에 내려놨다. 그 동작이 불만을 표현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또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김 전무였다. 전략기획 총괄로, 민준이 직접 스카우트한 사람이었다.

“전략 투자자라고 하셨는데, 혹시 어느 쪽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중동 국부펀드와 일본 소재 회사 두 곳입니다. 이미 예비 접촉은 됐습니다.”

테이블 분위기가 달라졌다. 누군가 메모를 멈추고 펜을 내려놨다. 민준은 그 작은 신호들을 하나씩 읽었다.

“BIS 통보는 예비 통지 단계입니다. 아직 확정이 아닙니다. 하지만 정부 지원금을 받아두면 나중에 더 복잡해집니다. 두 개의 의무가 충돌하기 전에 하나를 정리하는 겁니다.”

이 부회장이 다시 안경을 집어 들었다.

“그 전략이 실패하면, 회사가 버틸 수 있습니까?”

민준은 직접 대답하지 않았다.

“이사회에서 결정해 주십시오.”


표결은 7대 5였다. 찬성이 7, 반대가 5. 통과되기는 했지만 박빙이었다. 회의실을 나서면서 민준은 반대표를 던진 다섯 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들이 틀린 게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보는 위험과 민준이 보는 위험이 달랐다.

이 부회장이 복도에서 민준을 따라잡았다.

“회장님.”

민준이 걸음을 멈췄다.

“저는 반대했습니다만.”

“알고 있습니다.”

이 부회장이 잠시 뭔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에 무언가가 오갔다.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잘 되길 바랍니다.”

그게 전부였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걸었다.


사흘 후, 민준은 산업부 담당 차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협약서를 돌려보내겠다는 통보였다. 차관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회장님,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규제 환경이 너무 복잡합니다. 지금 당장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내년에 다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민준은 한동안 수화기를 손에 쥔 채 있었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낮이 무심하게 흘러갔다.

중동 쪽 접촉은 진행 중이었다. 아직 성사된 것은 없었다. 일본 소재 업체 쪽도 실무 협의 단계였다. 신성반도체는 지금, 한쪽은 버리고 다른 한쪽은 아직 잡지 못한 상태에서 허공에 떠 있었다.

민준은 그 감각을 잘 알았다. 처음이 아니었다. 파운드리로 전환할 때도 그랬다. 손에 잡힌 것을 놓아야 다음을 잡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사이의 순간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찰나.


그날 밤, 민준은 다시 공장을 내려다봤다. 불빛은 여전했다. 클린룸은 멈추지 않았다. EUV 장비가 들어오면 저 안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그 기계가 작동하려면 수백 명의 숙련 기술자가 필요하다. 그 사람들은 이미 거기 있었다.

민준은 그들이 자신의 결정을 모른다는 걸 알았다. 알 필요도 없었다. 그들의 일은 웨이퍼를 깎는 것이고, 민준의 일은 그들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다.

SSMK의 내일은 아직 아무도 몰랐다. 중동 자금이 들어올 수도 있고,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BIS의 통지가 확정 제재로 굳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 부회장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이었다.

민준은 유리에 이마를 살짝 기댔다. 차가운 감촉이 이마에 닿았다.

다음 EUV 장비 반입일은 석 달 뒤였다. 그 전에 결판이 날 것이다. 아니면 그 이후에 더 긴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오늘 밤의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등장하는 기업명·인물·사건은 실존 여부와 무관하게 창작된 허구이며, 투자 권유나 특정 기업에 대한 주장을 담지 않습니다. 반도체 산업 및 수출 통제 관련 일반적 배경은 공개된 정보를 참고했으나, 구체적 수치·대화·결과는 모두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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