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8 · Vol. III · No. 45
Industrial manufacturing steel mill
Openverse (CC0)
액션
GLOBAL

항구의 밤 크레인

항만 자동화 계약을 둘러싸고 노후 크레인 기사와 신규 관제팀이 충돌하는 하룻밤. 사라진 컨테이너 한 대를 쫓으며 두 사람은 서로가 놓친 신호를 찾아낸다.

· 3분 읽기 · #스토리#액션

새벽 두 시의 항구는 쉬지 않는다.

오기준은 크레인 조종석에서 부두를 내려다보았다. 25년 동안 이 자리에서 보아온 풍경이지만, 오늘 밤은 달랐다. 부두 북쪽 끝에 새로 들어선 관제 센터 건물이 형광등 불빛을 차갑게 쏟아내고 있었다. 청해터미널이 에이링크 자동화 관제 시스템 도입 계약에 도장을 찍은 게 사흘 전이었다. 계약 규모는 470억 원. 그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 크레인 기사 열여섯 명 중 열두 명은 필요 없어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기준은 모니터를 훑다가 손을 멈추었다.

GCAL-7731. 오늘 밤 처리 목록에 있어야 할 컨테이너였다. 그런데 없었다. D-14 블록에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무전기를 집었다.

“관제, 여기 7번 크레인. GCAL-7731 위치 확인 부탁합니다.”

잠시 정적 뒤에 응답이 왔다.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확인했습니다. 시스템 상 D-14 적재 완료로 처리됐습니다.”

“D-14는 내가 방금 비운 자리야. 거기 없어.”

“시스템 로그가 완료로 나와 있습니다. 아마 인접 블록에—”

“직접 나와서 눈으로 확인해.”

관제 센터에서 김서연이 모니터를 응시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GCAL-7731의 로그는 명확했다. 오후 11시 47분, 자동 크레인 2호기가 D-14 블록에 내려놓았고 하역 확인까지 완료됐다. 그런데 오기준은 없다고 한다.

서연은 재킷을 집어 들었다.

청해터미널이 에이링크 시스템을 도입한 건 국내 주요 항만들이 앞다투어 자동화에 나선 흐름 속에서였다. 크레인 한 대가 한 시간에 처리하는 컨테이너 수, 소위 무브가 사람이 조종할 때 평균 22개에서 29개로 올랐다. 오류율은 0.07퍼센트로 낮아졌다. 숫자는 반박이 안 됐다.

그래서 서연은 오기준 같은 기사들의 불만이 습관과 자존심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부두 바람은 11월 칼날처럼 차가웠다. D-14 블록에 도착했을 때 오기준은 이미 거기 서 있었다. 손전등 빛이 빈 공간을 훑었다.

“봐요. 없잖아요.”

서연이 말했다.

오기준은 대답하지 않고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로그를 처음부터 다시 훑었다. 그런데 한 줄이 걸렸다. 자동 크레인 2호기가 컨테이너를 내린 직후, 같은 위치에서 외부 반출 허가 코드 하나가 찍혀 있었다.

서연의 손이 멈추었다.

XT-204.

“반출됐어요.”

오기준이 고개를 돌렸다. “뭐?”

“외부 반출 허가 코드예요. 오후 11시 51분에 처리됐어요. 근데.”

서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에이링크 허가 코드 체계는 XA부터 XV까지만 존재했다. XT-204는 형식 자체가 없는 코드였다.

“없는 코드예요.”

오기준은 서연의 얼굴을 보았다. 그 표정은 그가 아는 얼굴이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하는 얼굴. 화면 너머에서 생기는 느낌.

“해킹이에요.”

기준은 말없이 무전기를 들었다.

“보안팀, 7번 크레인 오기준이오. 지금 당장 D 블록 출입구 CCTV 확인해야 합니다. GCAL-7731 무단 반출 가능성 있음.”

다음 세 시간은 소란스러웠다. 보안팀이 달려왔고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다. CCTV 화면에서는 11시 54분에 출입구를 빠져나간 화물차 한 대가 잡혔다. 허가 코드를 조작한 사람은 외부 협력 업체 직원이었다. 같은 방식의 반출 시도가 이미 세 건 더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에이링크 시스템이 가동되기 전 사각지대를 노린 것이었다.

새벽 다섯 시가 넘었을 때, 기준과 서연은 관제 센터 입구 계단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어떻게 알았어요? 없어진 걸.”

서연이 물었다.

“그냥 알지.” 기준이 먼 바다를 보며 말했다. “이 부두를 25년 봤어. 오늘 밤 D-14 블록 느낌이 달랐어. 뭔가 비어 있는 느낌.”

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그에는 그 느낌이 없었다.

“XT-204 코드.” 기준이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코드 체계를 외우거든요. 없는 번호예요.”

기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자신이 평생 익힌 항구의 감각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또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는지.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 그리고 화면에서만 보이는 것들. 그 사이 어딘가에 오늘 밤 사라진 컨테이너가 있었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왔다. 부두의 크레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동 크레인과 기준의 크레인이 같은 리듬으로.

서연은 태블릿을 무릎에 올려놓고 코드 체계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오기준은 조종석으로 올라가기 위해 일어섰다.

둘 다 아무 말 없이,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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