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인의 연속극
가공의 호텔 야간 근무자들이 투숙객들의 사연과 맞물리며 저마다의 감정을 통과하는 섬세한 드라마.
밤 열한 시의 프런트 데스크는 조용하다. 조용한 것처럼 보인다.
서현우는 예약 시스템 화면을 스크롤하며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김태식. 202호. 매주 금요일, 열한 시에서 자정 사이에 그는 체크인했다. 작년 봄부터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기념일도, 명절 전야도 예외가 없었다.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서 씨.”
김태식은 캐리어 없이 왔다. 항상 그랬다. 작은 가방 하나, 정장 상의는 풀려 있었고 넥타이는 주머니에 반쯤 쑤셔 넣은 채였다. 회사 이름이 박힌 볼펜이 가슴 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편안한 주말 되세요.”
서현우가 카드키를 건네자 김태식은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서현우는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는 집이 있을 텐데. 그럼에도 매주 금요일 밤, 이 호텔 202호로 온다.
박선주 매니저가 백오피스에서 커피를 들고 나왔다. 선임 야간 매니저인 그녀는 굽 낮은 구두를 신고도 서현우보다 서너 센티미터 작았다. 그러나 이 건물 안에서 그녀보다 조용히 많은 것을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투숙객이 로비를 지나치는 속도만 봐도, 박선주는 그 사람이 배가 고픈지 피곤한지 아니면 울고 싶은지를 구별했다.
“202호 단골이 왔네.” 그녀가 모니터 화면을 슬쩍 봤다.
“네. 작년부터 거의 빠지지 않으셨어요.”
“그 방에 뭐가 있는 줄 알아?”
서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지. 그래서 가는 거야.”
그 말을 남기고 박선주는 다시 백오피스로 들어갔다. 서현우는 빈 로비를 바라봤다. 대리석 바닥에 LED 간접등이 희미하게 퍼졌다. 어딘가에서 공조 시스템이 낮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정이 넘었을 때 이유나가 들어왔다. 예약은 이미 온라인으로 돼 있었다. 미니멀 더블 룸. 호텔에서 가장 작은 방이었다. 그녀는 숄더백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고, 짐은 그게 전부였다. 체크인 카드를 작성하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서현우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예약 확인, 카드 스캔, 카드키 발급. 천천히, 그러나 군더더기 없이.
“불편한 것 있으시면 내선 0번으로 연락 주세요. 밤새 여기 있어요.”
이유나는 그때 처음으로 서현우의 얼굴을 제대로 봤다. 뭔가 말이 나올 것 같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새벽 세 시. 로비는 텅 비어 있었다. 서현우가 데스크 아래 두었던 생수를 꺼내려던 참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유나였다. 잠옷 위에 카디건을 걸쳤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녀는 로비 한쪽 구석 소파로 가서 앉았다. 무릎을 모으고, 두 손을 그 위에 얹고. 어딘가를 보는 것도,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도 같은 눈이었다.
서현우는 못 본 척했다. 그게 예의인 것 같았다.
십오 분쯤 지나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용 주방으로 잠깐 들어갔다가 나왔다.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들고 소파 쪽 테이블로 걸어갔다.
“밤에 못 주무시는 분들이 가끔 내려오세요.” 잔을 놓으며 말했다. “드시기 싫으시면 그냥 두셔도 됩니다.”
이유나는 잠시 잔을 내려다보다가 두 손으로 감쌌다. 뜨거운지 확인하듯, 아니면 온기를 오래 쥐고 있고 싶은 듯.
“여기, 뭔가 특별한 게 있어요?”
지역이나 시설을 묻는 말이 아니었다. 막연한 무언가를 향한 질문 같았다.
서현우는 잠깐 생각했다.
“딱히요. 그냥 밤이 있어요.”
이유나가 작게 웃었다. 웃는다는 것 자체가 의외인 것처럼, 스스로 놀란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올해 국내 4성급 이상 호텔의 주말 평균 객실 가동률이 처음으로 78퍼센트를 넘어섰다는 통계가 발표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업계 안팎에서는 ‘완전한 회복’이라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서현우는 그 숫자를 접했을 때 이상한 감각이 들었다. 78퍼센트. 나머지 22퍼센트는 비어 있다. 그리고 채워진 방들도, 다 같은 이유로 채워진 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쉬러 온다. 어떤 사람들은 어딘가로부터 멀어지러 온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밤 한 칸이 필요해서 온다. 누군가의 캐리어 바퀴 소리, 복도 끝에서 들리는 텔레비전 소리, 자판기 불빛.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만드는 게 무엇인지를 서현우는 야간 근무를 시작하고서야 조금씩 배웠다.
이유나는 새벽 다섯 시가 조금 못 됐을 때 일어나 방으로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한 번 서현우 쪽을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체크아웃은 오전 열한 시였다.
주간 팀과 인수인계를 마치고 서현우가 직원 출구 쪽으로 걸어가던 중에 이유나가 프런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캐리어가 생겨 있었다. 아까는 없었는데. 짐 보관을 맡겼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서현우를 알아보고 잠깐 멈췄다.
“잘 쉬었어요.”
선언인지 감사인지 모를 말이었다. 서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나가 회전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며, 서현우는 생각했다. 이 호텔이 파는 것이 무엇인지를 오늘 처음 제대로 이해한 것 같다고. 침대도, 조식도, 수영장도 아니었다.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밤 한 칸. 그리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 누군가.
회전문 유리를 타고 아침 햇살이 로비 바닥 안쪽까지 흘러들었다.
202호의 김태식은 아직 체크아웃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조금 더 자고 있을 것이다. 이번 주도 올 것이다. 아마 다음 주에도.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