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7 · Vol. III · No. 44
Semiconductor circuit board
Openverse (CC0)
멜로
GLOBAL

상속받은 빚, 세대의 자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백오십억 원의 부채와 건물. 세 형제가 다른 방식으로 그 유산을 마주한다.

· 3분 읽기 · #스토리#멜로

아버지의 장부는 세 번 읽어야 했다. 처음에는 숫자로, 두 번째에는 글씨체로, 세 번째에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읽었다.

상속 재산은 건물 일곱 채, 감정가 오백억 원이었다. 변호사가 서류를 넘기다 손을 멈춘 건 그 뒤였다. 이름이 낯선 대부업체 두 곳, 아버지가 개인 보증을 선 PF 대출 한 건, 만기를 계속 미뤄 온 브리지론이 있었다. 합치면 백오십억 원이었다. 아버지는 그 돈을 우리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숨긴 게 아니라 안 보여 준 거야.” 큰오빠 도현이 말했다. 변명이라기보다 자기를 설득하는 소리 같았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평생 점심을 드시던 국밥집 이층에서 첫 가족회의를 했다. 나는 둘째 서윤이고 숫자를 만지는 일을 한다. 그래서 어느 편도 아닌 사람으로 앉아 있었다.

도현은 “팔면 끝이야”라고 했다. 건물을 헐값에 넘기면 부채를 갚고도 남는 게 줄어든다는 얘기였다. 그는 성수동 쪽 낡은 건물 두 채를 허물고 복합시설을 올리자고 했다. 대출을 더 받아 올라타면 오 년 뒤 자산이 두 배가 된다는 계산이었다. 그의 눈은 아버지가 젊을 때 내보이던 눈과 같았다.

막내 하준은 고개를 저었다. 서른이 되도록 월급 말고는 가져 본 게 없는 애였다. 그래서 더 단호했다. “전부 정리해서 빚 갚고, 남는 건 인덱스 펀드에 넣자. 잠은 자야 되잖아.” 아버지가 밤마다 거실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던 소리를 하준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임대 수익률표를 펼쳤다. “둘 다 틀린 건 아니야. 그런데 순서가 문제야.”

그 순서가 문제인 이유를 우리는 곧 알게 됐다. 상속세였다. 과세표준 삼십억 원을 넘는 구간의 세율은 오십 퍼센트다. 부채를 빼고 나면 순자산이 삼백오십억 원이니 세금만 수십억 원이었다. 건물은 현금이 아니었고, 세무서는 현금을 원했다. 연부연납을 신청해 몇 년에 걸쳐 나눠 내기로 했지만, 그건 이자가 붙는 또 하나의 빚이었다. 도현의 개발 계획은 그 순간 반쯤 죽었다. 하준의 청산 계획도 마찬가지였다. 서둘러 팔면 양도소득세가 따로 붙는다.

우리는 합의라고 부를 수 없는 합의를 했다. 건물을 셋으로 나눠 각자 방식대로 운용해 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오 년 뒤에 보자. 누가 맞았는지가 아니라 누가 뭘 배웠는지를.”

처음 일 년은 평온했다. 도현은 성수동 부지의 설계를 끝내고 건설사와 계약했다. 하준은 두 채를 매각해 고금리 사채부터 갚았다. 나는 남은 세 채의 임차인 구성을 바꿨다. 공실이 길던 층에 병원과 학원을 들이고, 임대료는 올리는 대신 계약 기간을 늘렸다. 수익률은 눈에 띄지 않게 올랐다.

이 년째 가을, 시장이 얼어붙었다. 기준금리는 불과 일 년 사이 0.5퍼센트에서 3.5퍼센트로 뛰었고, 채권시장이 말라 건설 자금 조달이 멈췄다. 도현의 대출 금리는 연 4퍼센트대에서 9퍼센트를 넘겼다. 공사비는 올랐는데 분양 문의는 끊겼다.

도현이 새벽에 전화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서윤아, 이자만 한 달에 이억이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준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그 말은 칼처럼 오빠에게 들어갔고, 그 뒤로 둘은 일 년 가까이 말을 섞지 않았다.

돈이 가족을 가르는 방식은 극적이지 않다. 단체 대화방에서 답이 한 시간씩 늦어지고, 명절 식탁에 앉는 순서가 달라지고, 조카의 돌잔치에 봉투만 오간다. 우리는 그렇게 멀어졌다.

내 쪽도 쉽지는 않았다. 병원이 들어선 건물은 안정적이었으나, 학원 한 곳이 폐업하면서 보증금 반환 문제가 터졌다. 수익 최적화라는 말은 듣기엔 점잖지만, 실제로는 매달 작은 불을 끄는 일이었다. 하준은 두 채를 판 돈의 대부분을 지수 펀드에 넣었다. 그해 하락장에서 그의 평가액은 이십 퍼센트 가까이 빠졌고, 그는 처음으로 팔고 싶다는 충동과 싸웠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선택도 흔들렸다는 얘기를 그는 내게만 했다.

사 년째 되던 해, 도현은 성수동 부지 중 한 필지를 시세보다 낮게 넘겼다. 공사를 이어 가던 다른 한 필지는 겨우 준공했지만 임차를 채우는 데 일 년이 더 걸렸다. 결과만 보면 그는 가장 많이 잃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해 겨울, 그가 처음으로 나와 하준을 불렀다.

“내가 틀렸다고 말하려고 부른 게 아니야. 아버지가 왜 말을 안 했는지 알 것 같아서.” 도현이 말했다. “말하면 우리가 말릴 걸 알았던 거야. 그리고 자기는 멈출 수 없다는 것도.”

아버지의 백오십억 원은 탐욕의 흔적이 아니었다. 이 건물들을 지키려고 다른 건물을 담보로 잡은 사람의 흔적이었다. 도현은 그 방식을 닮았고, 하준은 그 방식에 겁먹은 채 자랐고, 나는 그 사이에서 장부를 읽었다. 우리 셋은 같은 사람의 서로 다른 조각이었다.

오 년째의 숫자는 이렇다. 도현의 몫은 처음보다 사분의 일쯤 줄었으나 준공된 건물 한 채가 월세를 내기 시작했다. 하준의 몫은 부채가 없고 평가액은 제자리였다. 내 몫은 가장 조금씩, 가장 꾸준히 늘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금리가 반대로 움직였다면 순서는 뒤집혔을 것이다.

마지막 회의는 다시 그 국밥집이었다. 주인이 아버지 자리를 비워 두고 우리를 이층으로 올려 보냈다. 하준이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물려받은 게 뭐였을까. 건물이야, 빚이야?”

아무도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아버지가 첫 번째로 샀다는 낡은 건물의 간판이 보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국물을 한 숟갈 뜨고 말했다. “세금 고지서 옆에 있던 메모 기억나? 아버지 글씨로 ‘애들 밥값’이라고 적혀 있던 거.”

도현이 웃었다. 오 년 만에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수첩에는 숫자가 없었다. 우리가 가진 건 건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틀릴 수 있는 세 사람이 같은 식탁에 다시 앉았다는 사실이다. 그게 자산인지 부채인지는, 아직 장부에 적을 칸이 없다.

◆

픽션 고지 · 본 스토리는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AI 시스템이 자동 생성한 창작 서사(픽션)입니다. 등장 인물의 발언, 내심, 행위는 실제 사실과 다른 가공된 묘사이며, 실존 인물과 기업에 대한 평가, 비방, 사실 단정이 아닙니다. 투자 권유나 기업 평가가 아닙니다. 정정·삭제 요청은 nicepark0606@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면책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