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받은 빚, 세대의 자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백오십억 원의 부채와 건물. 세 형제가 다른 방식으로 그 유산을 마주한다.
아버지의 장부는 세 번 읽어야 했다. 처음에는 숫자로, 두 번째에는 글씨체로, 세 번째에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읽었다.
상속 재산은 건물 일곱 채, 감정가 오백억 원이었다. 변호사가 서류를 넘기다 손을 멈춘 건 그 뒤였다. 이름이 낯선 대부업체 두 곳, 아버지가 개인 보증을 선 PF 대출 한 건, 만기를 계속 미뤄 온 브리지론이 있었다. 합치면 백오십억 원이었다. 아버지는 그 돈을 우리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숨긴 게 아니라 안 보여 준 거야.” 큰오빠 도현이 말했다. 변명이라기보다 자기를 설득하는 소리 같았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평생 점심을 드시던 국밥집 이층에서 첫 가족회의를 했다. 나는 둘째 서윤이고 숫자를 만지는 일을 한다. 그래서 어느 편도 아닌 사람으로 앉아 있었다.
도현은 “팔면 끝이야”라고 했다. 건물을 헐값에 넘기면 부채를 갚고도 남는 게 줄어든다는 얘기였다. 그는 성수동 쪽 낡은 건물 두 채를 허물고 복합시설을 올리자고 했다. 대출을 더 받아 올라타면 오 년 뒤 자산이 두 배가 된다는 계산이었다. 그의 눈은 아버지가 젊을 때 내보이던 눈과 같았다.
막내 하준은 고개를 저었다. 서른이 되도록 월급 말고는 가져 본 게 없는 애였다. 그래서 더 단호했다. “전부 정리해서 빚 갚고, 남는 건 인덱스 펀드에 넣자. 잠은 자야 되잖아.” 아버지가 밤마다 거실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던 소리를 하준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임대 수익률표를 펼쳤다. “둘 다 틀린 건 아니야. 그런데 순서가 문제야.”
그 순서가 문제인 이유를 우리는 곧 알게 됐다. 상속세였다. 과세표준 삼십억 원을 넘는 구간의 세율은 오십 퍼센트다. 부채를 빼고 나면 순자산이 삼백오십억 원이니 세금만 수십억 원이었다. 건물은 현금이 아니었고, 세무서는 현금을 원했다. 연부연납을 신청해 몇 년에 걸쳐 나눠 내기로 했지만, 그건 이자가 붙는 또 하나의 빚이었다. 도현의 개발 계획은 그 순간 반쯤 죽었다. 하준의 청산 계획도 마찬가지였다. 서둘러 팔면 양도소득세가 따로 붙는다.
우리는 합의라고 부를 수 없는 합의를 했다. 건물을 셋으로 나눠 각자 방식대로 운용해 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오 년 뒤에 보자. 누가 맞았는지가 아니라 누가 뭘 배웠는지를.”
처음 일 년은 평온했다. 도현은 성수동 부지의 설계를 끝내고 건설사와 계약했다. 하준은 두 채를 매각해 고금리 사채부터 갚았다. 나는 남은 세 채의 임차인 구성을 바꿨다. 공실이 길던 층에 병원과 학원을 들이고, 임대료는 올리는 대신 계약 기간을 늘렸다. 수익률은 눈에 띄지 않게 올랐다.
이 년째 가을, 시장이 얼어붙었다. 기준금리는 불과 일 년 사이 0.5퍼센트에서 3.5퍼센트로 뛰었고, 채권시장이 말라 건설 자금 조달이 멈췄다. 도현의 대출 금리는 연 4퍼센트대에서 9퍼센트를 넘겼다. 공사비는 올랐는데 분양 문의는 끊겼다.
도현이 새벽에 전화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서윤아, 이자만 한 달에 이억이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준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그 말은 칼처럼 오빠에게 들어갔고, 그 뒤로 둘은 일 년 가까이 말을 섞지 않았다.
돈이 가족을 가르는 방식은 극적이지 않다. 단체 대화방에서 답이 한 시간씩 늦어지고, 명절 식탁에 앉는 순서가 달라지고, 조카의 돌잔치에 봉투만 오간다. 우리는 그렇게 멀어졌다.
내 쪽도 쉽지는 않았다. 병원이 들어선 건물은 안정적이었으나, 학원 한 곳이 폐업하면서 보증금 반환 문제가 터졌다. 수익 최적화라는 말은 듣기엔 점잖지만, 실제로는 매달 작은 불을 끄는 일이었다. 하준은 두 채를 판 돈의 대부분을 지수 펀드에 넣었다. 그해 하락장에서 그의 평가액은 이십 퍼센트 가까이 빠졌고, 그는 처음으로 팔고 싶다는 충동과 싸웠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선택도 흔들렸다는 얘기를 그는 내게만 했다.
사 년째 되던 해, 도현은 성수동 부지 중 한 필지를 시세보다 낮게 넘겼다. 공사를 이어 가던 다른 한 필지는 겨우 준공했지만 임차를 채우는 데 일 년이 더 걸렸다. 결과만 보면 그는 가장 많이 잃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해 겨울, 그가 처음으로 나와 하준을 불렀다.
“내가 틀렸다고 말하려고 부른 게 아니야. 아버지가 왜 말을 안 했는지 알 것 같아서.” 도현이 말했다. “말하면 우리가 말릴 걸 알았던 거야. 그리고 자기는 멈출 수 없다는 것도.”
아버지의 백오십억 원은 탐욕의 흔적이 아니었다. 이 건물들을 지키려고 다른 건물을 담보로 잡은 사람의 흔적이었다. 도현은 그 방식을 닮았고, 하준은 그 방식에 겁먹은 채 자랐고, 나는 그 사이에서 장부를 읽었다. 우리 셋은 같은 사람의 서로 다른 조각이었다.
오 년째의 숫자는 이렇다. 도현의 몫은 처음보다 사분의 일쯤 줄었으나 준공된 건물 한 채가 월세를 내기 시작했다. 하준의 몫은 부채가 없고 평가액은 제자리였다. 내 몫은 가장 조금씩, 가장 꾸준히 늘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금리가 반대로 움직였다면 순서는 뒤집혔을 것이다.
마지막 회의는 다시 그 국밥집이었다. 주인이 아버지 자리를 비워 두고 우리를 이층으로 올려 보냈다. 하준이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물려받은 게 뭐였을까. 건물이야, 빚이야?”
아무도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아버지가 첫 번째로 샀다는 낡은 건물의 간판이 보였다.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국물을 한 숟갈 뜨고 말했다. “세금 고지서 옆에 있던 메모 기억나? 아버지 글씨로 ‘애들 밥값’이라고 적혀 있던 거.”
도현이 웃었다. 오 년 만에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수첩에는 숫자가 없었다. 우리가 가진 건 건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틀릴 수 있는 세 사람이 같은 식탁에 다시 앉았다는 사실이다. 그게 자산인지 부채인지는, 아직 장부에 적을 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