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프트
40년을 함께한 공장이 자동화의 물결 속에서 변모할 때, 숙련 기술자가 자신의 일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정해석은 오전 여섯 시에 도착했다. 마지막 날도 습관대로였다.
공장 입구 철문 앞에 서자 등 뒤로 새벽 공기가 차갑게 붙었다. 삼십팔 년. 머릿속으로 숫자를 굴려보았다. 열아홉 살에 처음 이 문을 밀고 들어왔을 때 이 문은 지금보다 훨씬 무거웠다.
동광정밀 안산 제2공장. 그는 그곳을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그냥 공장이었다. 아니, 그냥 여기였다.
작업복을 챙겨 입고 라인으로 들어섰다. 기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절삭유와 금속 먼지가 섞인 그 냄새를 그는 오래전부터 아침 인사처럼 여겼다. 오늘은 그 인사가 마지막이었다.
4번 라인 끝에 새것이 들어서 있었다. 여섯 관절 로봇 팔 스물두 대. 회사는 이것을 ‘스마트 자동화 전환’이라고 불렀다. 지난달 공장장이 설명회를 열었을 때 정해석은 맨 뒷줄에 앉아 화면만 바라보았다. 화면 속 데이터는 단순했다. 한 대가 하루 열여섯 시간, 오차 없이, 불만 없이, 쉬지 않고 돌아간다. 작년 통계에서 국내 제조업 근로자 만 명당 투입된 로봇은 천 대를 넘었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다. 그 숫자가 지금 4번 라인 끝에 서 있었다.
그가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 수치가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늘 마지막으로 공구함을 열었다. 손때 묻은 토크렌치. 눈금이 닳아 반쯤 흐릿해진 버니어 캘리퍼스. 선배에게 물려받은 스패너는 자루가 한 번 부러져 헝겊으로 다시 감아놓았다. 도구들이 반질반질했다. 기름이 아니라 손바닥의 것이었다.
그는 마지막 부품을 손으로 집었다. 지름 47밀리미터 플랜지 베어링. 손가락 두 마디로 내경을 훑으면 사천분의 일 밀리미터 오차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손이 그랬다. 기계가 아니라 이 손이.
그 감각을 언제부터 가졌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손끝이 알고 있었다. 그것을 누구에게 설명한 적도 없었다. 설명하면 뭔가 사라질 것 같아서였다.
점심시간에 후배 이민준이 옆에 앉았다.
“선배, 오늘 마지막 날이라고요.”
정해석은 국밥 한 숟갈을 떴다.
“그렇네.”
“억울하지 않아요?”
그는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억울하다는 말을 생각했다. 억울함은 뭔가 빼앗겼을 때 드는 감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은 것 같았다. 삼십팔 년이 여기 있었다. 이 손 안에, 이 몸 안에.
“아니.”
짧게 대답했다. 이민준은 더 묻지 않았다.
오후 시프트가 끝나고 공장은 조용해졌다. 정해석은 혼자 4번 라인 앞에 서서 로봇 팔을 바라보았다. 관절이 여섯 개. 그는 자기 팔을 내려다보았다. 관절이 세 개. 근육이 있고, 기억이 있고, 오차가 있다. 오차가 있는 것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자리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 그는 그것을 모르면서도, 이상하게 불안하지 않았다.
공구함을 닫았다. 자물쇠는 잠그지 않았다. 원래도 잠근 적이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공장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내일도 여기서 불이 켜질 것이었다. 다만 자기 손은 없이.
멀어지면서 한 번 돌아보았다. 공장 불빛이 노랗게 번졌다. 그게 뭔지 몰랐다. 끝인지, 또 다른 무언가의 시작인지도.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