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메모리: 삭제된 추억의 유령
메타버스에서 삭제된 사용자 추억이 되돌아오다
형이 죽고 나서 나는 오랫동안 알림을 껐다.
META 앱이 밀어 보내는 ‘오늘의 추억’ 기능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의 선물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지뢰밭이었다. 2018년 10월, 저녁 여섯 시, 형과 함께 찍은 카페 사진. 2019년 봄, 형이 댓글로 달아 놓은 짧은 농담. 2021년 여름, 형의 마지막 생일 파티 영상 — 그해 12월, 형은 없어졌다.
나는 앱을 삭제하지 않았다. 계정을 탈퇴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탈퇴가 형을 두 번 죽이는 일처럼 느껴졌다. 형의 프로필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META는 그것을 ‘추모 계정’으로 전환해 두었다. 형의 커버 사진은 바뀌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공유한 노래가 그대로 재생 목록에 걸려 있었다. 나는 가끔 그 페이지를 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창을 닫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2025년 봄, META가 발표를 냈다.
보도자료 제목은 「디지털 유산 보호 강화: 추모 계정 영구 아카이브 이전 정책 안내」였다. 요점은 간단했다. 활동이 없는 추모 계정에 보관된 사진, 영상, 메시지 데이터를 META의 새 서버 아키텍처로 이전하며, 이 과정에서 AI 기반 ‘기억 복원’ 기능이 시범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기능 이름은 ‘메모리 스트림’이었다. 회사는 이것을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더 생생하게 보존하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나는 보도자료를 세 번 읽었다. 읽을수록 위가 뒤집히는 것 같았다.
이용약관 제47조 8항에는 이미 그 근거가 있었다. “사용자가 사망 후 추모 계정 상태로 전환된 경우, META는 해당 계정에 저장된 데이터를 플랫폼 서비스 개선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이는 사용자가 생전에 동의한 데이터 활용 조항에 포함된다.” 형은 2014년에 그 약관에 동의했다. 형이 그 항목을 읽었을 리 없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커뮤니티에서 반응은 엇갈렸다. 한쪽은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줄 수 있다”고 했고, 다른 쪽은 “이것은 시신을 기업의 서버에 가두는 일”이라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유족들의 경험담이 쏟아졌다. 미국의 한 여성은 남편의 보이스메일을 AI가 재구성한 음성 파일을 받고 사흘째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다고 썼다. 일본의 한 남성은 어머니의 텍스트 스타일을 학습한 봇이 생성한 문장을 읽다가 구토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의 어떤 여성은 아들의 생전 영상 200시간을 다시 편집해 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다고 했다. 나는 그 세 게시물을 모두 저장해 두었다.
META는 짧은 공식 입장을 냈다. “당사는 유족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메모리 스트림은 선택 사항이며, 원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비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비활성화 링크는 설정 메뉴 다섯 단계 안쪽에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링크를 찾지 못했다.
그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앱을 켰다.
형의 추모 계정 페이지에는 새로운 아이콘이 붙어 있었다. 작은 파란 불꽃 모양. ‘메모리 스트림 활성화됨’. 나는 그 아이콘을 눌렀다.
재생이 시작됐다.
2018년 10월의 카페. 창가 자리. 형이 에스프레소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화면 각도는 내가 기억하는 것과 정확히 같았다. 형이 쓰던 흰 맨투맨. 오른쪽 소매 끝에 작은 얼룩이 있었다. 그날 형이 아이스크림을 쏟았었다. 나는 그 얼룩을 기억했다. META도 기억하고 있었다.
화면 속 형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숨을 멈췄다.
그것은 영상이 아니었다. 사진을 기반으로 한 3D 재구성이었다. 형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선이 카메라를 향하는 각도가, 입가의 미소 비율이, 눈가의 주름 깊이가 — 모두 형이었다. 아니, 형의 데이터였다. 나는 그 두 가지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스피커에서 카페 배경음이 흘러나왔다. 커피 기계 소리. 사람들의 낮은 대화 소리. 창밖에서 지나가는 차 소음. META는 그날의 위치 데이터와 시간대를 바탕으로 음향 환경을 재현했다. 형은 그날 위치 공유를 켜 두었다. 물론 약관에 동의한 상태로.
나는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손이 조금 떨렸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이 나를 힐끗 보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척 창밖을 바라봤다. 그 여성도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화면에 비슷한 파란 불꽃 아이콘이 보였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카페 안에 우리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을, 그 여성도 알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 공통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 이 서비스의 가장 음울한 측면이었다. 쓸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 수십억 개의 추모 계정. 수십억 명의 유족. 플랫폼이 보유한 데이터는 죽음을 넘어서도 축적된다. META는 2021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매년 약 3,000만 명의 사용자가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 리서치 보고서에서 읽은 적 있다. 그 숫자는 해마다 늘어났다. 언젠가 플랫폼에 죽은 사람의 계정이 살아 있는 사람의 계정보다 더 많아지는 시점이 온다. 그 시점이 이미 어느 구석에서는 왔는지도 모른다.
형의 데이터는 그 통계 안에 있었다.
메모리 스트림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형이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입으로 가져가는 동작. 나는 그 동작을 보면서, 형이 커피를 마실 때 항상 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는 것을 떠올렸다. 화면 속 형은 한 손으로 잔을 들었다. 아주 작은 차이였다. 그러나 그 차이가 나에게는 거대한 균열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형이 아니었다. 이것은 형에 관한 데이터가 조합한 하나의 근사치였다.
그러나 얼굴은 형이었다. 목소리는 아직 없었지만, 만약 META가 형의 보이스메일과 영상 속 음성을 학습시켜 목소리를 재현한다면 — 그때 나는 무엇을 느낄까. 그리고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아니면 거부하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일까.
재생은 계속됐다. 카페의 빛이 오후 쪽으로 기울었다. 형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재구성된 시선이 어딘가 멀리를 향했다. 그 시선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데이터에 없었다. META가 추측한 방향이었다.
나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창밖에는 평범한 거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모두 각자의 시간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 중 몇 명은 나처럼 가방 속 어딘가에, 누군가의 데이터를 담은 작은 화면을 들고 다니고 있을 것이었다.
기억은 항상 불완전하다. 나는 형의 손버릇을 잘못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확신하는 세부 사항들 중 일부는 이미 오래전에 내 뇌가 편집한 버전일 수도 있다. 어쩌면 META의 재구성이 내 기억보다 더 정확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픽셀 단위의 얼굴, 위치 로그가 기록한 좌표, 타임스탬프가 찍힌 표정들. 나는 그것들을 믿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 정밀함이 오히려 형을 낯설게 만든다고 느끼는 내 감각을 믿어야 하는가.
화면 속 형이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 같았다.
그것이 가장 닮아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다. 잊는다는 것은 오래전에는 상실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저장되는 시대에 잊는다는 것은 — 어쩌면 선택이 된다. 아니면 사치가 된다. 또는 META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 된다.
삭제 버튼은 설정 메뉴 다섯 단계 안쪽에 있었다.
나는 앱을 닫지 않았다.
형의 재구성된 얼굴이 화면 안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그것이 호흡인지, 데이터의 진동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 지금은 알고 싶지 않았다.
창밖의 오후가 천천히 저물어 갔다.
며칠 뒤, 나는 다시 그 카페를 찾아갔다. 실제로 존재하는 카페였다. 그 시간대, 그 계절에 빛이 어떻게 드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거짓이다. 나는 단지 그곳에 가고 싶었다. 형이 있었던 곳에.
창가 테이블은 빈 채로 있었다. 나는 다른 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주문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들었다가 내려놨다. 내 옆 테이블의 여성은 제 화면에 뭔가 보고 있었다. 파란 불꽃 아이콘이 보이는지는 거리가 멀어서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호라이즌에 다시 접속했다.
형의 메모리 스트림은 여전히 재생 중이었다. 나는 그것을 끄지 않았다. 대신 무한 반복 설정을 했다. 2018년 10월의 카페. 형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동작. 커피잔을 들 때의 그 작은 오류 — 한 손이 아니라 두 손으로 들었어야 했던 그 순간. 혹은 내가 잘못 기억한 것.
META의 데이터를 믿는 것과 내 기억을 믿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지혜로운 선택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선택이라는 것이 더 이상 의미 있는 단어는 아닐 수도 있다. 선택과 강제 사이의 경계가 흐려졌으니까.
나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형의 얼굴이 루프를 반복했다. 끝없이.
그렇게 또 다른 밤이 시작되었다.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