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의 커서: 후배 창업가의 첫 재인
초대형 검색서비스 개발팀장이었던 40대 중년이 스타트업 멘토로서 MZ 창업자들을 만나며 자신이 놓쳤던 것들을 발견하는 로맨스 스토리
검색창에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박준혁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다가 잠시 멈췄다. 커서 하나가 흰 바탕 위에서 1초에 한 번씩 사라졌다 나타났다 했다. 빈 검색창이었다. 검색어가 없어도 그 사각형 박스는 늘 사람을 기다리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2003년에 그가 처음 그걸 설계했을 때도 그랬다. 커서는 그냥 기다리는 거야, 그때 팀원 중 누군가가 말했다.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우리가 미리 알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깜빡이면서 기다리는 거예요.
준혁은 그 말을 이십 년째 기억하고 있었다.
판교 어딘가의 공유 오피스 3층이었다. 투명 유리벽 너머로 스물다섯 살짜리들이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격렬하게 써댔다. 오늘은 멘토링 세션 첫날. 그는 초대형 검색서비스 개발팀에서 수석으로 일했다는 이유 하나로 이 자리에 초청됐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의 프로그램 매니저가 소개 문자를 보냈을 때, 준혁은 한참 동안 답장을 못 썼다.
전직 검색서비스 개발팀 리드가 MZ 창업자들에게 통찰을 나눠줄 수 있지 않을까요?
통찰. 그는 그 단어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자기가 가진 게 통찰인지, 아니면 그냥 나이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처음 들어온 팀은 세 명이었다. 이은채, 스물여섯. 목소리가 낮고 눈이 빨랐다. 창업 18개월 차, AI 기반 개인화 식단 추천 서비스를 운영 중이었다. 두 번째 팀은 조민준과 그의 친구 둘, 피벗을 세 번 했다는 커머스 팀이었다.
“저희 리텐션이 떨어지고 있어요.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요.”
이은채가 말했다. 억양이 진술이 아니라 질문에 가까웠다. 준혁은 노트북을 덮었다.
“사용자가 두 번째에 뭘 검색하는지 알아요?”
“네?”
“첫 번째 검색이 아니라, 두 번째요. 결과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 뭘 더 찾는지. 그게 실제로 원했던 게 뭔지를 말해줘요.”
이은채는 입술을 움직였다가 멈췄다. 준혁은 계속했다.
“우리가 검색 초기에 했던 실수가 그거였어요. 첫 쿼리에 집착했어요. 근데 사람들은 원하는 걸 처음부터 정확하게 말하지 않아요. 두 번째, 세 번째에 진짜 의도가 나와요.”
이은채가 뭔가를 빠르게 받아 적었다. 그 모습이 오래된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준혁은 그 감각을 빠르게 지나쳤다.
점심시간이 됐다. 공유 오피스 아래층에 샌드위치 가게가 있었다. 이은채가 혼자 줄을 서 있었다.
“혼자 오셨어요?”
준혁이 물었다. 그녀는 돌아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팀원들은 미팅 있어서요. 저도 사실 밥 먹으면서 데이터 좀 보려고요.”
“아까 제가 한 말, 실제로 해본 적 있어요?”
“두 번째 쿼리 분석이요? 아직은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들은 테이블에 나란히 앉게 됐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줄이 하나였고, 빈 자리가 그것뿐이었다.
이은채가 노트북을 열었다. 화면에 숫자들이 가득했다. 코호트 차트, 드롭오프 퍼널, 세션별 이탈률. 준혁은 그 화면을 보다가 잠시 말을 잃었다.
2007년에 그가 보던 화면과 구조가 똑같았다. 숫자의 색이 다르고 인터페이스가 달라졌을 뿐, 결국 사람이 무언가를 원하다가 떠나는 지점을 추적하는 차트였다.
“여기요,” 그가 화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지점. 세 번째 세션 이후에 이탈이 급격히 늘잖아요.”
이은채가 화면을 기울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같은 점에 닿았다. 거리가 가까웠다. 준혁은 그걸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정확히 그래서 의식했다.
“왜 세 번째일까요?”
그녀가 물었다. 질문이 순수했다. 어떤 답을 기대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냥 정말로 모르는 사람의 눈이었다.
“기대를 한 번 업데이트하고 나서요,” 준혁이 말했다. “처음엔 신기해서 써요. 두 번째엔 진짜로 써봐요. 세 번째에 ‘이게 나한테 맞나?’ 판단해요. 그때 서비스가 그 판단에 답을 못 주면, 떠나요.”
이은채가 볼펜을 멈추고 그를 봤다.
“경험에서 나온 말이에요?”
“실패에서요.”
그녀가 웃었다. 준혁도 웃었다. 이상하게 자연스러운 침묵이 뒤를 채웠다.
오후 세션에서 조민준 팀이 발표를 했다. 세 번 피벗한 이야기를 당당하게 꺼냈다. 그는 실패를 설명하면서 얼굴이 밝았다. 준혁은 그게 낯설었다. 자기 세대에서 실패는 숨기는 것이었다. 혹은 최소한, 그것에 대해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세 번 피벗하면서 뭘 배웠어요?” 준혁이 물었다.
“뭘 원하는지가 아니라, 왜 원하는지를 더 먼저 물어봤어야 한다는 거요.”
준혁은 잠시 멈췄다. 그 문장이 어딘가에 박혔다.
뭘 원하는지가 아니라, 왜 원하는지를.
그는 검색창을 십 년 넘게 설계했다. 사람들이 무엇을 검색하는지는 수십억 건을 분석했다. 그런데 왜 그걸 검색하는지는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쿼리는 있었지만, 그 뒤의 사람은 없었다.
세션이 끝나고 참가자들이 하나씩 나갔다. 이은채는 마지막까지 노트에 무언가를 쓰다가 일어섰다.
“오늘 많이 배웠어요. 감사해요.”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그녀가 멈칫했다. 그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처럼.
“멘토도 배워요?”
“더 많이.”
이은채가 다시 웃었다. 이번엔 조금 더 오래. 나가려다 한 번 더 돌아봤다.
“다음 주에 또 오세요. 그때까지 두 번째 쿼리 분석해볼게요.”
문이 닫혔다. 준혁은 빈 강의실에 혼자 남았다. 화이트보드에는 누군가 지우다 만 숫자들이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는 오랫동안 창밖을 봤다. 터널이 이어지고, 간간이 역의 불빛이 스쳐 지나갔다.
2003년, 그가 처음 검색 인프라를 설계할 때 함께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도 이은채처럼 질문이 빠른 편이었다. 뭘 원하는지가 아니라 왜 원하는지를 묻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준혁이 결과에만 집착하는 사이, 어느 날 조용히 팀을 떠났다. 그 이후 한동안 그는 자기가 무엇을 놓쳤는지 몰랐다. 한참 뒤에야,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었던 무언가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됐다.
지하철이 한강 다리를 건넜다. 밤 강물이 길게 펼쳐졌다가 다시 터널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아무 이름도 검색하지 않았다. 그냥 검색창 안에 커서가 깜빡이는 걸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커서는 기다리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뭘 원하는지, 아직 알 수 없으니까.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