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너머의 약속
온라인 교육 플랫폼에서 익명의 두 멘토가 같은 수강생을 지도하다 우연히 정체를 드러내면서 시작되는 로맨스.
나는 화면이다. 정확히는 ‘배움결’이라는 이름의 교육 플랫폼이고, 하루에도 수만 개의 질문이 내 안을 지나간다. 그중 어떤 질문은 오래 남는다.
수강생 하은은 밤마다 코딩 과제를 올렸다. 첨삭은 두 멘토가 번갈아 맡았다. 닉네임 ‘새벽등’과 ‘모래시계’였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 나는 알고 있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연결만 할 뿐, 소개는 하지 못한다.
새벽등의 코멘트는 늘 짧았다. “여기서 한 번 숨 쉬세요.” 모래시계는 길게 썼다. “막힌 건 코드가 아니라 순서일 때가 많아요.” 하은은 두 사람의 말을 번갈아 읽으며 조금씩 나아갔다.
어느 밤, 하은의 과제에 두 사람이 동시에 들어왔다. 한 화면 안에서 두 개의 커서가 깜빡였다. 같은 줄에 같은 문장이 적히다 멈췄다.
“이 비유, 어디서 들은 건가요?” 새벽등이 먼저 물었다. 모래시계가 답했다. “십 년 전 어느 강의 노트에서요. 그쪽도 그 문장을 쓰시네요.”
나는 그 몇 초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 십 년 전 같은 강의실에서 말없이 노트를 빌려주던 두 사람이 있었다. 이름도 묻지 못한 채 학기가 끝났다. 이제야 둘은 알아보고 있었다. 필체는 사라졌어도 문장의 호흡은 남아 있었다.
채팅창에 입력 중이라는 표시가 길게 떴다가 꺼지기를 몇 번 되풀이했다. 나는 서버의 불빛을 아주 조금 낮췄다.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내 한 줄이 올라왔다. “노트, 아직 돌려받지 못했는데요.”
답장은 바로 왔다. “그럼 직접 돌려드려야겠네요.”
하은은 그날 밤 과제를 제출하고 잠들었다. 자기 화면 너머에서 무슨 일이 시작됐는지 알지 못한 채였다. 나는 두 개의 커서가 나란히 깜빡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약속이 어디서 만나자는 것인지, 나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은 연결이 한 번 이루어지면 화면이 꺼진 뒤에도 어딘가에 남는다는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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