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의 벽이 무너진다
거대 플랫폼 회사의 규제 대응 과정에서 창업자가 경험하는 권력 박탈의 현실을 조명한다.
이준혁은 서른네 살에 이 회사를 세웠다.
그해 겨울, 마포구의 반지하 사무실에서 다섯 명이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며 밥도 제때 못 먹었다. 회사 이름은 청연(靑緣)이었다. 푸른 인연이라는 뜻이었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는 단순한 꿈이 그 두 글자에 담겨 있었다.
열 년이 흘렀다. 청연은 어느 틈에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쓰는 플랫폼이 됐다. 메시지를 보내고, 물건을 사고, 음식을 시키고, 영상을 보고, 돈을 주고받는 일이 모두 청연 안에서 이루어졌다. 시가총액은 50조 원을 넘었고, 직원은 8천 명에 가까웠다. 언론은 이준혁을 ‘한국 플랫폼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지금 유리창 앞에 혼자 서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해 가을이었다. 당국은 메신저와 결제, 커머스를 동시에 운영하는 복합 플랫폼에 대해 교차보조 행위와 시장 잠식 의혹을 들어 조사에 착수했다. 청연의 메시지 서비스 시장점유율은 그 무렵 89퍼센트에 이르렀다. 숫자는 성공의 증표이기도 했고, 동시에 가장 커다란 표적이기도 했다.
조사관들이 서초동 본사에 들이닥치던 날 아침, 이준혁은 마침 제주도에 있었다. 아내의 생일이었다. 그가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 회사 앞에는 카메라가 가득했고, 로비에서 그를 맞이한 법무팀장의 인사는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그 높낮이를 이준혁은 놓치지 않았다.
국회 청문회는 세 차례 열렸다. 이준혁은 세 번 모두 증인석에 앉았다. 의원들은 번갈아 가며 물었다. 청연이 입점 업체에 자사 결제 서비스 사용을 강요했는지, 경쟁사 앱을 이용자의 기기에서 은밀히 밀어냈는지, 그 지시가 어디서 내려왔는지.
그는 모든 질문에 답했다. 일부는 사실이 아니었고, 일부는 사실이지만 맥락이 달랐으며, 일부는 그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회사는 이미 그가 하나하나 직접 챙길 수 없는 크기로 자라 있었다. 그 사실이 세 시간의 청문회 내내 그를 괴롭혔다. 회의실 단상 위에서 그는 자신이 만든 것이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뚜렷하게 느꼈다.
이사회 소집 통보는 12월 초에 왔다. 의제 중에 ‘지배구조 개선안’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이준혁은 그것을 보고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는 이십 년 업계 경험으로 잘 알았다.
회의는 두 시간 반이 걸렸다. 발표자는 외부 컨설팅 회사 파트너였다. 슬라이드는 오십다섯 장이었고, 거기에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규제 위기를 어떻게 관리했는지, 창업자 CEO가 규제 리스크와 얼마나 깊이 결부되는지, 그리고 전문경영인 체제가 왜 지금 시점에 주주 가치를 지키는 최선인지가 담겨 있었다.
이준혁은 발표가 끝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사 중 한 명이 그를 돌아보았다. 청연 초기부터 함께한 재무 담당 공동창업자였다. 그가 입을 열었을 때, 직함 대신 이름을 불렀다.
“준혁아.”
그 한 마디가 이준혁의 가슴 깊은 곳을 찔렀다.
그날 밤 이준혁은 직원들이 다 퇴근한 뒤에도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서울 야경이 창 너머에서 고요하게 빛났다. 한강 건너편 불빛들이 바람도 없는데 가끔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오래전 함께 일하다 청연을 떠난 동료 최수진이었다. 그녀는 지금 이름 없는 작은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뉴스 봤어. 괜찮아?
이준혁은 화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괜찮다고 쓰면 거짓말이고, 괜찮지 않다고 쓰면 그것도 정확하지 않았다. 한참 뒤 그는 이렇게만 썼다.
청연이 처음 생겼을 때가 자꾸 생각나.
열 년 전, 최수진은 청연의 두 번째 직원이었다. 서비스 기획을 맡았고, 이용자 흐름의 첫 번째 뼈대를 함께 짰다. 이준혁은 그녀의 감각을 믿었다. 그녀는 아이디어를 낼 때마다 같은 말을 했다.
“이건 사람이 쓰는 거야. 기술을 파는 게 아니라.”
그 말이 청연의 철학이 됐다. 초기 투자사들에게 처음 피치를 넣던 날, 발표 자료 첫 슬라이드에도 그 문장이 있었다. 이준혁이 쓴 것이 아니었다. 수진이 전날 밤 조용히 넣은 것이었다.
수진이 회사를 떠난 것은 청연이 처음으로 시리즈 C를 받던 해였다. 회사가 빠르게 커지면서 결정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는 것 같다고 했다. 이준혁은 붙잡지 못했다. 붙잡을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 생각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진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때는 좋았지.
이준혁은 어둠 속에서 혼자 웃었다. 웃음이 어색했지만, 나왔다.
창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서울은 여전히 빛났다. 청연의 아이콘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 개의 화면 위에 켜져 있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메시지를 보내고, 누군가와 연결되고, 무언가를 나누고 있을 것이었다.
그것은 이사회 결정에 달려 있지 않았다. 조사 결과에 달려 있지도 않았다. 슬라이드 오십다섯 장에도 담기지 않는 것이었다.
이준혁은 오래 서 있었다. 그가 만든 것이 이제 그것 없이도 살아간다는 사실이, 오늘 밤은 상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정확히 무엇으로 느껴지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사무실 불을 껐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하나는 어쩔 수 없이 떠올랐다.
그해 겨울, 반지하 사무실에서 다섯 명이 나눠 먹던 편의점 삼각김밥.
그게 좋았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