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의 기사들
가공의 항만에서 공급망 마비가 겹친 24시간 동안, 자동화 전환을 앞둔 노동자들이 마지막 교대를 지키는 이야기.
새벽 두 시, 백하항 4번 선석의 바람은 짠맛보다 쇳내가 먼저 났다.
나는 32년째 이 바람을 맡았다. 컨테이너 크레인 운전실은 수면에서 40미터 위에 있고, 거기 앉으면 항구 전체가 한 장의 회로도처럼 보인다. 야드의 노란 불빛, 줄 맞춰 기어가는 야드 트랙터, 방파제 너머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선박의 항해등. 32년 동안 나는 그 회로에서 전류가 어디로 흐르는지 손끝으로 알았다.
오늘이 마지막 교대다.
한성항만운영은 지난봄에 4번에서 7번까지 네 개 선석의 완전 자동화를 확정했다. 원격 조종실은 이미 행정동 3층에 들어섰다. 내일 아침 여섯 시부터 4번 선석의 크레인 세 대는 사람 없이 움직인다. 운전실 의자는 뜯겨 나가고, 그 자리에 카메라 여덟 대가 붙는다.
“반장님, 커피요.”
오지현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스물아홉, 입사 3년 차. 내 아들보다 두 살 어리다. 이 친구는 자동화 팀으로 재배치가 확정됐다. 나는 안 됐다. 회사가 잘못한 건 없다. 나는 예순하나고, 정년까지 넉 달 남았고, 넉 달짜리 사람을 새 시스템에 태우는 건 돈 낭비다. 계산은 정확하다. 정확한 계산에 감정이 낄 자리가 없다는 걸 나도 안다.
문제는 새벽 세 시 십칠 분에 시작됐다.
그 주에 백하항은 이미 몸살을 앓고 있었다. 홍해 항로가 막힌 뒤로 아시아발 유럽행 선박들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았고, 왕복 항해가 열흘 넘게 늘었다. 열흘이 밀리면 도착은 흩어지는 게 아니라 뭉친다. 2주 동안 텅 비었던 부두에 사흘치 물량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게 어제였다. 야드 장치율은 94퍼센트, 평시의 두 배였다.
그 위에 게이트가 죽었다.
터미널 운영 시스템—우리는 그냥 ‘탑’이라고 부른다—이 응답을 멈췄다. 외부 침입인지 단순 장애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확실한 건 하나였다. 어떤 컨테이너가 야드 어느 블록 몇 단에 있는지를 아는 두뇌가, 통째로 눈을 감았다는 것.
자동 크레인은 좌표가 없으면 한 뼘도 못 움직인다. 7번 선석의 신형 세 대가 팔을 뻗은 자세 그대로 멈춰 섰다. 40미터짜리 강철이 허공에서 얼어붙은 모습은, 솔직히 말해서 무서웠다.
무전기가 터졌다. 자동화 팀장 차선우의 목소리였다. 서른일곱, 기계공학 박사, 이 항구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
“4번 선석, 수동 하역 가능합니까.”
나는 마이크를 눌렀다. “가능하다.”
“좌표 데이터 없이요?”
“32년 했다.”
그날 밤 우리가 한 일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탑이 죽었으니 종이로 돌아갔다. 검수원 하나가 야드를 걸어 다니며 컨테이너 번호를 손으로 적었다. 무전으로 부르면 사무실에서 받아 적고, 그걸 다시 나한테 불러줬다. 1970년대식이다. 그런데 됐다.
새벽 네 시 사십 분, 나는 눈으로 선박의 흘수를 읽었다. 배가 물에 잠긴 깊이를 보면 어느 쪽이 무거운지 안다. 무거운 쪽부터 풀면 배가 기운다. 컴퓨터는 적재 계획표로 그걸 계산하고, 나는 배가 물을 밀어내는 모양으로 그걸 본다. 둘 다 맞는 답이 나온다. 다만 나는 정전에도 작동한다.
오지현이 옆자리에 붙어 앉았다. 자동화 팀 소속인데 원격 조종실이 무용지물이 되자 여기로 올라온 것이다.
“반장님, 지금 몇 개째예요?”
“백일흔둘.”
“평소 시간당 몇 개 하셨죠?”
“스물여덟.”
“지금 서른하나예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이 떨리기 시작한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예순한 살의 손이다. 두 시간 넘게 조이스틱을 쥐면 팔뚝 안쪽이 저리고, 저리기 시작하면 정지 오차가 5센티미터씩 커진다. 5센티미터는 아직 괜찮다. 20센티미터가 되면 사람이 죽는다.
오전 열 시 반. 남은 건 마지막 한 줄, 스물아홉 개였다.
그리고 스물둘째 박스에서 바람이 바뀌었다.
순간풍속 18미터. 규정상 15미터를 넘으면 하역 중단이다. 40피트 컨테이너는 빈 것도 4톤이고, 그게 공중에서 흔들리기 시작하면 추가 아니라 돛이 된다. 아래에는 트랙터 기사가 있다.
나는 컨테이너를 공중에 세운 채로 멈췄다.
무전기에서 차선우가 말했다. “중단하시죠. 규정입니다.”
맞는 말이다. 나는 3년 전 기사를 기억한다. 대서양 건너편 항구들에서 노동자 수만 명이 자동화 게이트 도입을 두고 하역을 멈췄던 일. 사흘 만에 끝났고, 자동화는 유예됐고, 결국 몇 년 미뤄졌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멈추는 걸로는 아무것도 못 바꾼다고.
그런데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냥, 내 마지막 박스를 내려놓고 싶었다.
“반장님.” 오지현이었다. “제가 아래 볼게요.”
“뭘 봐.”
“바람요. 야드 쪽 깃발이 여기서 안 보이잖아요. 제가 창가에서 보고 말씀드릴게요. 3초 단위로.”
그 애는 그렇게 했다. 열한 번을 세었다. “지금—지금—아니요—지금.”
나는 네 번째 ‘지금’에서 내렸다. 4톤이 야드 트랙터 위에 소리 없이 앉았다. 오차 3센티미터.
바람이 다시 잦아들 때까지 우리는 그 자세로 앉아 있었다. 아무도 말을 안 했다.
정오 십이 분 전, 마지막 컨테이너가 내려갔다.
스물네 시간 동안 백하항 4번 선석은 1,180개를 처리했다. 자동화 선석의 평시 기록보다 많았다. 그건 자랑할 일이 아니다. 자동화는 24시간 내내 같은 속도로 가고, 사람은 한 번 그렇게 하면 며칠을 앓는다. 기록이 아니라 무리였다.
운전실에서 내려올 때 사다리 손잡이가 뜨거웠다. 해가 높았다.
차선우가 부두에 서 있었다. 손에 종이 뭉치를 들고 있었다. 밤새 검수원들이 손으로 적은 컨테이너 번호들이었다.
“이거요.” 그가 말했다. “스캔해서 학습 데이터로 씁니다. 선생님이 어떤 순서로 푸셨는지가 전부 여기 있어요. 저희 알고리즘은 이 순서를 못 냅니다. 흘수를 못 보거든요.”
나는 종이를 봤다. 내 32년이 A4 마흔 장이었다.
“그게 다인가.”
“아뇨.” 그가 잠깐 망설였다. “비상 운영 매뉴얼을 새로 써야 합니다. 탑이 죽었을 때 사람이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넉 달 남으셨죠.”
다음 날 아침, 나는 방파제 끝에서 담배를 피웠다.
4번 선석의 크레인 세 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 없이, 소리 없이, 정확하게. 트롤리가 미끄러지고 스프레더가 내려가고 박스가 떴다. 40미터 위 운전실 창은 비어 있었다. 그 안이 어떤 냄새인지 아는 사람이 이 항구에 아직 몇 명 남아 있다.
기계는 멈춘 적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제 7번 선석에서 얼어붙었던 세 대도, 오늘은 어제가 없었던 것처럼 움직인다. 기억은 종이 마흔 장에 남았고, 그 종이는 스캐너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담배를 끄고 행정동으로 걸어갔다. 3층 원격 조종실에는 내 자리가 없다. 회의실에는 있다. 넉 달치 자리다.
그게 승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다만 32년 동안 나는 항구가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믿었고, 어제 하루 동안은 그게 사실이었다. 하루면 충분한 사람도 있고, 그 하루를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도 있다.
방파제 뒤로 다음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흘수가 깊었다. 오른쪽이 무거웠다.
본 스토리는 가상의 인물과 기업을 배경으로 한 픽션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기업과는 관련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