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기업의 화석연료 고객 확보
태양광 회사가 대형 석유화학 회사의 탄소중립 계약을 따내며 산업 간 이해관계가 얽힌다.
햇결에너지는 서른한 번째 겨울을 그 회사의 로비에서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막 어른이 된 나이였다. 옥상에 깔아 둔 패널이 눈을 이고 있는 동안, 그녀는 남령화학 본사 1층 소파에서 세 시간째 기다렸다.
남령화학은 여수 산단의 오래된 이름이었다. 나프타를 끓이고 쪼개 플라스틱의 뿌리를 만드는 회사였고, 굴뚝은 일 년 내내 흰 숨을 쉬었다. 햇결은 그 숨이 싫지 않았다. 그녀에게 그것은 일하는 사람의 땀 냄새 같았다. 다만 소리 내어 말한 적은 없었다. 업계에서 두 회사는 오래전부터 서로를 못 본 척하는 사이였다. 한쪽은 하늘을 맑게 하겠다고 말했고, 다른 쪽은 하늘로 먹고살았다.
“대표님이 지금 내려오십니다.”
비서의 말에 그녀는 옷깃을 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은 서정훈이었다. 남령화학의 지속가능경영 총괄이었고, 이 일을 먼저 꺼낸 사람이었다. 그는 악수 대신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올해부터 유럽 쪽 고객사들이 탄소 서류를 안 주면 발주를 안 줍니다. 국경 탄소 조정이라는 게 이제 말이 아니라 청구서가 됐어요. 배출권 값은 해마다 오르고, 무상으로 받던 몫도 줄어들고요. 우리가 착해져서 부르는 게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알아요.” 햇결이 웃었다. “착해서 불러 주는 사람, 저는 별로 못 만나 봤어요.”
그가 잠시 그녀를 봤다. 그 눈에 비웃음은 없었다.
계약의 골자는 단순했다. 공장 부지의 유휴 지붕과 저수지 위 수면, 합쳐 수십만 제곱미터에 태양광을 올리고, 남령화학이 이십 년 동안 그 전기를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숫자 아래에는 숫자가 아닌 것들이 깔려 있었다. 햇결의 이사회는 “화석연료의 면죄부가 되는 것 아니냐”며 반대했고, 남령화학의 노조는 “일자리를 빼앗는 파트너를 왜 들이느냐”며 반대했다. 양쪽 모두에게 이 결합은 배신처럼 보였다.
협상은 가을 내내 이어졌다. 서정훈과 햇결은 여수의 허름한 식당에서 자주 마주 앉았다. 갈치조림을 놓고 단가를 두고 다퉜고, 출력 변동을 누가 감당할지 다퉜다. 해가 없는 날 공장은 멈출 수 없고, 햇결은 해를 약속할 수 없었다. 그 틈을 메우는 저장 설비의 몫이 마지막까지 남았다.
어느 밤 그가 소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이 공장 1세대였습니다. 굴뚝 연기가 곧 월급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하는 일은 그 연기를 줄이는 겁니다. 아버지가 보면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어요.”
“저는 반대예요.” 햇결이 조용히 말했다. “저는 누가 부끄러워서 오는 걸 바라지 않아요. 아버님이 일군 것 위에 지붕을 얹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그 위에 해가 앉는 거죠.”
서정훈은 대답 없이 오래 창밖을 봤다. 산단의 불빛이 바다 위에서 흔들렸다. 그날 둘은 처음으로 계약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헤어졌다.
겨울이 깊어지자 시장이 먼저 반응했다. 발표 당일 햇결의 주가는 크게 뛰었다가 사흘 만에 반쯤 되돌렸다. 애널리스트들은 엇갈렸다. 누구는 “고객 한 곳에 기댄 위험”이라 했고, 누구는 “굴뚝 산업이 가장 큰 시장”이라 했다. 그녀는 숫자들이 자기를 두고 다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칭찬도 비난도 정작 그녀 자신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것이 오히려 편했다.
착공식 날은 유난히 맑았다. 남령화학의 노조 위원장이 맨 앞줄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서정훈이 먼저 그에게 다가가, 지붕 위 설치와 유지보수에 쓸 인력을 공장 출신으로 우선 채용하겠다는 안을 꺼냈다. 햇결의 이사회가 마지막 날 밤에야 허락한 조항이었다. 위원장은 한참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보고 얘기합시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환호는 없었다. 그날 가장 큰 소리는 크레인이 첫 번째 패널 묶음을 들어 올리는 소리였다.
저녁에 햇결은 아직 비어 있는 지붕 위에 서정훈과 나란히 앉았다. 해가 산단 너머로 내려가고, 굴뚝의 흰 숨이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햇결은 처음으로 그 빛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이십 년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그때도 있을까요.”
“저도 그때쯤이면 퇴직했겠죠.” 그가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이에 우리가 뭘 하든 이 지붕은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대답하는 대신 손바닥을 지붕 위에 댔다. 낮 동안 데워진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 온기는 곧 전선을 타고 공장으로 흘러 들어가 나프타를 끓이는 불꽃 곁에서 일을 시작할 것이었다. 하나는 하늘을 맑게 하려는 것이었고 하나는 하늘로 먹고사는 것이었는데, 한 공장 안에서 같은 전기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몇 달 뒤 남령화학의 첫 분기 보고서에는 줄어든 배출량이 한 줄로 실렸다. 햇결의 보고서에는 이십 년짜리 매출이 한 줄로 실렸다. 두 줄 모두 어디에서도 사랑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어느 쪽도 상대를 바꾸지 못했고, 서로의 계산서 한쪽 칸을 채워 주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서정훈은 가끔 옥상에 올라가 해가 지는 방향을 오래 바라보았다. 햇결은 그가 올라올 시간을 이제 알았다. 해가 기우는 시각, 패널이 마지막 빛을 끌어모으는 때였다. 그것이 사랑인지 거래인지는 둘 다 끝내 묻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허구이며, 등장하는 기업과 인물은 모두 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