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인의 부활
쇠락한 게임숍이 밈 투자자들과 손잡고 월스트리트에 대항하는 건지적 영웅담.
오창수는 이날도 텅 빈 진열대 앞에 서 있었다.
매장 입구에 붙여둔 종이 한 장 — ‘레트로 게임 전문점, 창수네 게임세상’ — 이 1월의 차가운 바람에 울렁거렸다. 맞은편 편의점 유리창에는 신년 세일 포스터가 나붙었건만, 창수의 가게 안에는 먼지 쌓인 게임 카트리지와 그보다 더 오래된 영업일지만 남아 있었다. 2021년 1월의 일이었다.
가게는 2003년에 열었다. 그때만 해도 오락실이 막 죽어가던 시절이었고, 소비자들은 콘솔 게임을 중고로 사고팔기 위해 이런 가게를 찾았다. 창수는 그 빈자리를 채우며 18년을 버텼다. 그러나 스트리밍이 등장하고, 디지털 다운로드가 정착하고, 코로나가 마지막 일격을 날리면서 매장 앞을 지나는 사람마저 사라졌다. 한때 토요일 오후면 중학생들이 줄을 서던 자리에, 이제는 거미줄이 쳤다.
월세는 3개월째 밀려 있었다.
창수는 계산대 뒤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비용을 계산하려 했는데, 뉴스 알림 하나가 화면을 뚫고 올라왔다.
‘미국 게임 유통 체인, 하루 만에 주가 57% 폭등.’
처음에는 잘못 읽었다고 생각했다. 게임 유통 체인이라니. 자신과 같은 처지의 공룡이 갑자기 날개를 달았다는 소리였다. 기사를 열었다. 미국의 오프라인 게임 판매점 체인, 종목 코드로는 한별게임유통라고 표시된 그 회사가 인터넷 커뮤니티발 매수 열풍에 휩쓸려 단 사흘 만에 주가가 세 배를 넘겼다는 내용이었다.
창수는 화면을 멀뚱히 바라봤다. 자신의 가게 간판이 유리에 반사되어 보였다.
“이것들이 정신이 있나.”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인터넷 어딘가의 커뮤니티 — 미국 주식 이야기를 하는 방 — 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스스로를 ‘유인원’이라 불렀고, 서로를 향해 ‘다이아몬드 손’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한별게임유통 주식을 팔지 말라고 외쳤다. 월스트리트의 대형 헤지펀드들이 이 회사의 주식을 대량으로 공매도해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였다. 주가가 떨어지면 이익을 보는 구조, 즉 회사가 망해야 돈을 버는 쪽에 거대한 자본이 걸려 있었다.
그걸 보고 커뮤니티 사람들이 뭉쳤다.
논리는 단순했다. 우리가 사면 저쪽이 손해다. 손해가 커지면 저쪽이 울며 겨자 먹기로 더 비싸게 사야 한다. 그러면 주가는 더 오른다. 이 순환이 거대한 스프링처럼 압축되었다가 한꺼번에 튀어오르는 것을 그들은 ‘숏 스퀴즈’라 불렀다.
1월 중순, 한별게임유통 주가는 20달러대였다.
1월 말, 그것은 400달러를 넘겼다.
창수는 이틀째 인터넷 탭을 열다 닫다를 반복하며 미국 주식 그래프를 보고 있었다. 오르는 것을 보려던 게 아니었다. 자기 것과 닮은 가게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게임 판매점이 갑자기 세상의 중심이 된 이 상황이 현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날 오후, 손님이 하나 왔다. 23살쯤 돼 보이는 청년이었다. 휴대용 게임기 카트리지를 하나 집어 들고 계산대로 왔다.
“혹시 사장님도 한별게임유통 사셨어요?”
창수가 쳐다봤다. 청년은 해맑게 웃었다.
“저 어제 500주 더 샀거든요. 손해 보면 어때요, 이건 운동이니까요.”
운동이라는 말을 창수는 한동안 곱씹었다. 게임 카트리지 한 장 값을 건네받으며,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했다. 수익이 목적이 아닌 매수. 지는 것도 각오한 전투. 월스트리트가 언제나 이기던 게임판에 룰을 들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판 자체를 엎어버리겠다는 의지.
창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웃어야 할 것 같으면서도.
2021년 1월 28일, 사태는 정점을 찍었다.
미국의 주식 거래 플랫폼이 한별게임유통 매수를 일시 차단했다. 이유는 공식적으로 증거금 요건 문제였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는 분노했다. 일반 투자자는 매수를 막고 헤지펀드는 매도를 허용한다는 것이 노골적인 게임 조작처럼 보였다. 미국 의회가 청문회를 예고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이 같은 날 같은 방향으로 분노했는데, 그런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창수는 그 뉴스를 보며 오래된 게임 하나를 꺼냈다. 슈퍼패미콤 카트리지. 이미 수십 번 팔리고 되팔린 흔적이 스티커에 남아 있었다. 물건은 닳고 닳아도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며 살아남는다. 누군가의 물건이 되고, 다시 누군가의 추억이 되고, 마침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들이 아직도 거래되고 있었다.
오프라인 게임 가게도 그런 것이 아닐까.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어딘가에는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남아 있었다.
창수는 그 카트리지를 진열대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올려놓았다.
2월이 되자 한별게임유통 주가는 다시 내려앉기 시작했다. 300달러에서 100달러, 100달러에서 50달러. 커뮤니티 사람들 중 일부는 팔았고, 일부는 버텼다. 헤지펀드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망하지는 않았다. 세상은 다시 평온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한별게임유통이라는 종목은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회사는 전자상거래 전환을 선언했고, 커뮤니티는 흩어지지 않고 계속 그 종목 주위를 맴돌았다. 주가는 오르락내리락했지만, 공매도 세력은 다시는 그 회사를 예전만큼 편하게 공략하지 못했다. 언제 어디서 ‘유인원’들이 다시 뭉칠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창수의 가게는 3월에 살아남았다.
집주인이 한 달 유예를 더 줬고, 그사이에 중고 휴대용 게임 콘솔를 한꺼번에 다섯 개 팔았다. 23살 청년이 친구 세 명을 데려온 덕이었다. 그들은 한별게임유통 이야기를 하면서 레트로 게임 카트리지를 구경했고, 결국 돈을 썼다.
“이 가게 아직 있어서 다행이에요.”
한 명이 말했다. 창수는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아직 안 망했다고 쓴웃음을 지어야 할지.
여름이 됐다. 창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한별게임유통 주가 탭은 이제 북마크에 박혀 있었다. 의미 있어서가 아니라, 습관이 됐기 때문이었다. 그 상호가 이상하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것들의 이름 같았다.
가게는 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아났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손님은 가끔 왔고, 가끔 오지 않았다. 월세는 더 이상 밀리지 않았지만 여유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창수는 진열대를 닦으며 생각했다. 그 커뮤니티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한 게 맞는가. 맞다. 그런데 그게 전부였는가. 아마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이기고 싶은 상대가 있었다. 오래 이겨온 상대. 자기들이 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상대.
창수에게도 그런 상대가 있었다. 이름 없는 흐름. 디지털화라는 물결. 오프라인은 낡은 것이고 온라인이 새것이라는 전제.
한별게임유통은 그 흐름에 잠깐 균열을 냈다. 다시 봉합됐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직 벌어져 있는지도.
창수는 슈퍼패미콤 카트리지를 진열대에서 내려 손에 쥐었다. 닳고 닳은 플라스틱 껍데기. 안에는 여전히 데이터가 살아 있었다. 아직 실행되는, 아직 팔리는, 아직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것.
그는 카트리지를 다시 진열대에 올려놓았다.
문 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입구 센서였다. 손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