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농부의 소동기
가공의 자동화 농장에서 고장 난 로봇들이 만드는 예상 밖의 풍년과 혼란스러운 대표의 일상.
로봇 농부의 소동기
농장 대표 오필선은 새벽 다섯 시에 알람 없이 눈을 떴다. 습관이었다. 회사 이름은 아그로랩스, 사람들은 그냥 “로봇 농장”이라고 불렀다. 밭 갈고 씨 뿌리고 물 주는 일을 전부 기계가 하는 곳. 필선의 아버지는 논에서 평생을 보냈고, 필선은 그 논에 센서를 박고 드론을 띄웠다. 처음 이 년은 투자자들도 기자들도 좋아했다. 그다음 여름부터는 아니었다.
문제는 3구역 담당 로봇 ‘삽칠호’였다. 정식 명칭은 AL-7이었지만 현장 사람들은 그냥 삽칠호라고 불렀다. 어느 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잘못 들어가면서 삽칠호의 파종 간격 알고리즘이 어긋났다. 원래는 30센티미터 간격으로 정확하게 씨를 심어야 했는데, 삽칠호는 어떤 구간은 5센티미터로 촘촘하게, 어떤 구간은 60센티미터로 듬성듬성하게 심었다. 마치 취한 사람이 밭을 지나간 것 같았다.
필선은 그 소식을 듣고 새벽부터 3구역으로 달려갔다.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삽칠호가 남긴 자국을 들여다보는데, 옆에 서 있던 관리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 일단 재파종하겠습니다. 종자 값은 얼마 안 되니까요.”
“아니, 잠깐만요.”
필선은 손으로 흙을 뒤집으며 뭔가를 세고 있었다. 오래된 버릇이었다. 대학 시절 식물생리학 수업에서 배운 것, 작물마다 최적 밀도가 다르고 그 밀도는 토양 상태에 따라 또 달라진다는 것. 삽칠호의 실수는 무작위가 아니었다. 배수가 잘 안 되는 낮은 지대에서는 넓게, 물빠짐이 좋은 언덕 쪽에서는 촘촘하게 심어놓았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패턴이 너무 뚜렷했다.
“일단 두고 봅시다.”
관리팀장은 눈을 크게 떴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았다. 다른 구역들은 정석대로 심었는데도 침수 피해를 봤다. 그런데 삽칠호가 엉망으로 심어놓은 3구역만은 이상하게 멀쩡했다. 낮은 지대의 넓은 간격 덕분에 뿌리가 숨 쉴 공간이 있었고, 언덕의 촘촘한 간격은 오히려 잡초가 비집고 들어올 틈을 막았다. 가을 수확철, 3구역의 단위 면적당 수확량은 다른 구역보다 12퍼센트 높았다.
농업 전문 매체 하나가 이 이야기를 짧게 다뤘다. “고장 난 로봇이 심은 밭이 풍년이다.” 필선은 그 기사를 세 번 읽었다. 웃음이 나왔다가, 곧이어 뭔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이 년 동안 그는 로봇들에게 정확함을 요구해왔다. 오차 없는 간격, 오차 없는 수분 공급, 오차 없는 수확 시기. 그런데 정작 좋은 결과를 낸 건 오차 그 자체였다.
그 무렵 다른 문제도 터졌다. 관수 담당 로봇 ‘물돌이’는 습도 센서 배선에 문제가 생겨 무작위로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정량의 세 배를, 어떤 날은 거의 주지 않았다. 관리팀에서는 즉시 가동을 중단시키자고 했지만 필선은 이번에도 며칠 더 지켜보자고 했다. 사실 그는 확신이 없었다. 그저 삽칠호 사건이 자꾸 마음에 걸렸을 뿐이었다.
물돌이 담당 구역의 토마토는 처음엔 스트레스를 받은 듯 잎이 늘어졌다. 필선은 밤에 잠을 못 잤다. 이러다 한 해 농사를 통째로 날리는 게 아닐까. 그는 아버지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가뭄이 든 해에 오히려 당도 높은 벼가 나온다고, 작물은 조금 힘든 게 나을 때도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흘려들었던 말이었다.
결과적으로 물돌이가 심어놓은 불규칙한 수분 스트레스는 토마토의 당도를 끌어올렸다. 수확량은 살짝 줄었지만 상품 등급이 올라갔고, 프리미엄 라인으로 팔린 물량의 수익은 오히려 전체 평균을 웃돌았다. 관리팀장은 이제 필선을 볼 때마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이러다 우리 회사 이름을 ‘고장연구소’로 바꿔야 할 것 같은데요.”
필선은 웃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복잡했다. 이 성공이 실력인지 운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해왔을 때 그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며칠을 미뤘다. “저희 회사의 첨단 알고리즘이 만든 성과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 같았고, “로봇이 고장 나서 잘됐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무책임한 소리 같았다.
결국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완벽한 통제를 목표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배운 건, 자연은 완벽한 통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은 로봇들의 오류를 하나하나 분석해서, 그중에 어떤 불규칙함이 작물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데이터로 검증하고 있습니다.”
기사 제목은 “실수를 연구하는 농장”으로 나갔다. 투자자 몇 명이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고, 몇몇은 여전히 불안해했다. 필선도 확신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그는 더 이상 관리팀에게 “오차를 완전히 없애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대신 “오차를 기록하고 결과를 추적하라”고 지시했다.
가을이 끝나갈 무렵, 필선은 3구역 밭머리에 서서 삽칠호를 바라보았다. 로봇은 여전히 소프트웨어 결함을 안은 채 다음 파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관리팀은 이미 패치를 만들어두었지만, 필선은 아직 그 패치를 적용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고 있었다.
“저 녀석, 고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
관리팀장이 물었다. 필선은 잠시 대답하지 않고 삽칠호가 남긴 흙 위의 불규칙한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글쎄요. 고친다는 게 뭔지 요즘은 잘 모르겠네요.”
바람이 불었고, 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