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세금의 그림자
자동화 투자 가속화 속에서 인력 감축과 로봇세 도입 논의가 동시에 벌어질 때, 제조업 CEO가 기업 생존과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동하가 공장 바닥을 내려다본 건 이른 새벽이었다.
3층 유리창 너머로 용접 로봇 팔들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불꽃이 튀고, 금속이 맞닿는 소리가 방음 유리를 뚫고 희미하게 올라왔다. 아무도 없는 공장은 낯설게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이 불편했다.
그의 회사 청광기계는 사흘 전 이사회에서 3단계 자동화 전환안을 통과시켰다. 총 투자 규모 840억 원. 향후 18개월 안에 생산직 인원의 42퍼센트를 단계적으로 감원하는 계획이 거기에 포함돼 있었다. 이동하가 직접 기안했고, 이동하가 직접 설명했고, 이동하가 찬성표를 던졌다.
숫자는 명확했다. 글로벌로봇협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의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밀도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을 넘어섰다. 경쟁사들이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청광기계만 멈추는 건 선택지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렇게 설명했다.
며칠 뒤 중앙의회 산업위원회에서 로봇세 도입 초안이 공개됐다. 내용은 단순했다. 자동화 설비로 대체된 인력 1인당 연 150만 원의 특별세를 부과하고, 그 세수를 재취업 훈련 기금으로 쓴다는 것이었다.
이동하는 그 기사를 커피를 마시다 읽었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다시 읽었다.
법이 통과되면 청광기계는 매년 수십억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이사회가 승인한 계획 전체가 비용 계산으로 되돌아온다.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바로 다음 순간 그 생각이 부끄러웠다.
그는 화면을 닫지 않고 오래 들여다봤다. 로봇세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았다. 수년 전 유럽의 몇몇 정책 논의에서 이미 나온 얘기였다. 당시 업계의 반응은 한결같이 기업 경쟁력 저해였다. 이동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도 반쪽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반쪽이 남았다.
일주일 후, 감원 통보를 받기로 예정된 첫 번째 팀의 명단이 인사팀으로부터 올라왔다. 이동하는 파일을 열었다가 닫았다. 다시 열었다가 한 줄씩 읽었다. 23년 차 용접공 강만수. 야간조 반장 오희진. 소사 공장에서 올해 발령 온 신입 사원 박준혁.
이름들이 숫자로 바뀌는 과정이 이렇게 생겼구나 싶었다.
그는 창밖을 봤다. 공장 불빛이 새벽에도 꺼지지 않았다. 로봇들은 강만수가 하던 자리에서, 오희진이 서 있던 자리에서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쉬지 않고, 불평 없이.
그 정확함이, 그 침묵이, 그를 편안하게 하지 않았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이동하는 그날 밤 로봇세 초안 전문을 인쇄해 책상 위에 올려뒀다. 반대 의견서를 써야 했다. 경영자 단체가 그에게 의견을 요청해온 터였다. 논리는 이미 머릿속에 있었다. 자동화는 국가 경쟁력이고, 세금은 혁신을 늦추고, 재원은 다른 방식으로 마련할 수 있다.
그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책상 위에 놓인 명단 파일과 나란히 두면 어딘가 완성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는 빈 문서를 열고 첫 문장을 쳤다가 지웠다. 다시 쳤다가 또 지웠다. 세 번째 시도에서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공장 조명이 창문에 반사됐다. 그림자들이 움직였다. 로봇의 그림자인지, 사람의 그림자인지 그 높이에서는 구분되지 않았다. 이동하는 한동안 그 경계를 바라봤다. 답을 찾으려 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