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에 숨은 황금
해운사의 신입 직원이 화물선 컨테이너에 광고를 붙여 추가 수익을 얻자는 황당한 제안을 하고, 경영진이 이를 진지하게 검토한다.
푸른닻해운 본사 17층 회의실에는 창이 없다. 부산 앞바다가 보이는 쪽 벽을 임원 휴게실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의실 사람들은 바다를 다루는 회사에서 바다를 보지 못한 채 일했다.
입사 3주 차 신입 오다온은 그 사실이 처음부터 이상했다. 하지만 3주 차는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말할 시기가 아니다. 커피 심부름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회의록 작성이었다.
그날 안건은 “하반기 부대수익 발굴 방안”이었다. 2021년 운임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그리고 수에즈 운하를 거대한 배 한 척이 가로막아 온 세상이 컨테이너를 기다리던 며칠의 호황이 지나간 뒤였다. 운임은 제자리로 내려앉았고 임원들의 표정은 그보다 더 내려앉았다.
“아이디어 없습니까. 아이디어.” 마판석 부장이 말했다. 그는 한 문장에 “일단”을 세 번 넣는 사람이었다. “일단 말씀들 해보세요. 일단 아무거나. 일단 틀려도 되니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틀려도 된다는 말이 나올 때 가장 틀리면 안 되는 사람들이 모이는 방이 바로 그 회의실이었다.
오다온은 회의록을 치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벽에 걸린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항만 야적장에 컨테이너 수만 개가 빨강, 파랑, 노랑으로 쌓여 있는 사진이었다. 그는 입이 먼저 움직였다.
“저거, 광고판 아닌가요?”
회의실 공기가 얼어붙었다. 마 부장이 천천히 돌아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죠, 오… 다온 씨?”
“아, 아닙니다. 그냥, 컨테이너 옆면이 워낙 넓어서요. 길이 12미터에 높이가 2미터가 넘는데 그냥 철판으로 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아깝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후회했다. 후회는 늘 말보다 늦게 도착한다.
침묵이 이어졌다. 그때 맨 끝자리의 곽도훈 상무가 안경을 올렸다. 그는 회의 중 눈을 감고 있어서 졸고 있다고들 했지만, 실은 깊이 생각하는 중이라고 본인이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아깝다.” 곽 상무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아깝다는 건 자산이라는 뜻이야.”
“상무님?”
“놀고 있는 면적. 자산이야. 우리 연간 취급 물량이 얼마지?”
“수백만 TEU입니다.” 누군가 대답했다.
“그 하나하나가 양면이야. 아니, 사면이지. 윗면은 새가 보겠군. 아무튼 이게 다 움직이는 광고판이라는 얘기 아닌가.” 곽 상무가 눈을 떴다. 눈빛이 이상하게 맑았다. “움직이는 광고판. 이거 문서로 만들어 오게.”
그렇게 오다온의 말실수는 ‘TF 구성 건’이 되었다.
TF 이름은 ‘컨테이너 매체화 추진단’이었다. 그 이름이 정해지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후보에는 ‘황금면 프로젝트’, ‘박스 위의 기회’, ‘블루오션 2.0’이 있었다. 마지막 것은 이미 바다를 다루는 회사의 프로젝트명으로는 너무 당연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첫 번째 난관은 질문 하나였다. 오다온이 조심스레 꺼냈다.
“그런데 컨테이너는 배에 실리면 몇 겹으로 쌓이지 않습니까. 바깥쪽만 보이고요.”
“몇 겹인데?” 마 부장이 물었다.
“큰 배는 높이로 열 단 넘게 쌓고, 폭으로도 스무 줄 정도 씁니다.”
“그러면 보이는 건 몇 퍼센트야?”
“바깥 줄만 보이니까 아마 한 5퍼센트… 그것도 바다에서 봐야 하는데, 바다에 누가 있겠습니까. 갈매기 정도?”
마 부장이 조용히 메모했다. “일단, 갈매기 타깃 광고. 일단 가능성은 열어두고.”
두 번째 회의에서는 시장조사 결과가 올라왔다. 바다 위 광고의 도달률은 사실상 0에 가까웠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를 이렇게 적었다. “초기 인지도 구축 단계로, 잠재 도달률은 무한대에 수렴.”
곽 상무는 그 문장을 소리 내어 두 번 읽고 나서 말했다. “무한대. 좋군.”
오다온은 손을 들 뻔했다. 0에 가깝다는 것과 무한대는 다른 말이라고 하려 했다. 그러나 옆자리 선배가 그의 소매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선배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회사에서 숫자는 사실이 아니라 분위기다.
세 번째 회의에서 방향이 갈렸다. 영업팀은 항만 야적장 쪽을 주장했다. 그곳은 사람이 있고 트럭 기사가 있고 크레인 기사가 있다. 홍보팀은 반대했다. 크레인 기사에게 치킨 광고를 해서 무엇을 얻겠느냐는 것이었다. 영업팀이 되받았다. 크레인 기사는 퇴근하면 치킨을 먹는다.
회의는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결론은 ‘양쪽 모두 검토’였다. 오다온은 회의록에 이렇게 적었다. 「치킨 광고의 효과성에 대해 이견 있음. 크레인 기사의 퇴근 후 식습관은 확인되지 않음.」 마 부장은 이 문장을 보고 “아주 좋은 관찰”이라고 했고, 그 말이 인사평가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오다온은 알 수 없었다.
그 무렵 사내 소문이 돌았다. 푸른닻해운이 컨테이너 광고로 연 수백억을 번다는 것이었다. 소문의 출처는 알 수 없었으나 한 번 돈 소문은 되돌릴 수 없었다. 재무팀은 어느새 내년도 예산안에 ‘매체 수익’이라는 칸을 만들어 놓았다. 숫자는 비어 있었지만 칸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칸이 생기면 사람들은 그 칸을 채워야 한다고 믿기 시작한다.
한 달이 지나자 상황은 기묘해졌다. 오다온은 일개 신입이면서 ‘프로젝트 발의자’가 되어 있었다. 복도에서 만난 낯선 임원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가 그 박스 친구지? 대단해. 우리 땐 상상도 못 했어.”
그는 “아닙니다, 그건 제가 그냥…” 하고 말을 시작했지만 임원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다.
최종 보고일이 왔다. 대회의실, 이번에는 창이 있는 곳이었다. 보고 자료 첫 장에는 컨테이너 사진 위에 슬로건이 얹혀 있었다. “바다를 건너는 당신의 브랜드.”
그런데 곽 상무가 질문을 던졌다. 한 달 만에 처음으로 눈을 뜬 채였다.
“그런데 이거, 누가 광고를 사지?”
방 안의 모두가 서로를 보았다. 질문은 단순했고 누구도 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게… 광고주 풀은 영업팀에서.” “홍보팀에서 하는 줄…” “저희는 매체 가치 산정만 했습니다.”
마 부장이 땀을 닦았다. “일단 상무님, 일단 이 부분은 2단계에서…”
그때 맨 뒷자리의 오다온이 작게 말했다. 말할 생각은 없었으나 이번에도 입이 먼저였다.
“저, 한 가지 있긴 합니다. 어제 부두에서 컨테이너 한 개가 잘못 내려서 사흘째 주인을 못 찾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누구 건지 아무도 모르고요.”
“그게 광고랑 무슨 상관이지?” 곽 상무가 물었다.
“그 컨테이너 옆면에 누구 건지 써 있었으면 금방 찾았을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곽 상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컨테이너에 글자를 적으면 쓸모가 있다는 거로군.”
”…이미 적혀 있기는 합니다. 번호랑 선사 이름이요.”
“그래? 그럼 그게 이미 광고 아닌가.”
오다온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한 달 동안 그는 이 문장이 어디서 나올지 기다려 왔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훌륭한 결론이었다. 모든 컨테이너 옆면에는 이미 글씨가 크게 적혀 있었고, 푸른닻해운은 지난 수십 년간 자기 이름을 세계 곳곳의 항구에 광고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은 나왔군.” 곽 상무가 일어섰다. “우리는 이미 매체 사업을 하고 있었어. 다만 수익화를 안 했을 뿐이지. 마 부장, 이 프로젝트는 2단계로 간다. 이름은 ‘수익화 추진단’으로.”
“예, 상무님. 일단 알겠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우르르 나갔다. 오다온은 혼자 남아 창가로 갔다. 부산 앞바다가 보였다. 멀리 대형 컨테이너선 한 척이 천천히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뱃전에 쌓인 상자들이 햇빛에 붉고 푸르게 반짝였다. 저 옆면 어딘가에는 지금도 푸른닻이라는 글자가 있을 것이다.
누가 저 글자를 보고 있을까. 갈매기일까, 크레인 기사일까, 아니면 아직 아무도 아닐까.
그의 뒤에서 마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온 씨, 일단 2단계 회의록부터 부탁해요. 일단 오늘 안에.”
배는 여전히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