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7 · Vol. III · No. 44
Semiconductor circuit board
Openverse (CC0)
스릴러
GLOBAL · AISILICON

반도체 설계사의 AI 칩 도박

게이밍 칩에 의존하던 설계사가 AI 칩으로 사업 전환을 시도하면서 기존 고객과의 관계 악화를 감수한다.

· 3분 읽기 · #스토리#스릴러

강민준이 계약서를 다시 펼쳤다. 서른일곱 페이지. 마지막 장에는 서명란이 아직 비어 있었다.

새벽 두 시였다. 세빛반도체 회의실의 형광등만 켜져 있었고, 도시의 야경은 유리창에 희미하게 반사됐다. 강민준은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이미 식어 있었다.

7년이었다. 오로라게임즈와 일한 세월이.

세빛반도체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게이밍 칩 시장은 성장 중이었다. 강민준과 공동창업자 이수연은 직원 세 명짜리 사무실에서 오로라게임즈의 그래픽 처리 유닛 설계를 도맡았다. 납기를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버그가 나오면 밤을 새워 잡았다. 그렇게 세빛은 열다섯 명 규모의 팀으로 자랐고, 오로라게임즈는 전체 매출의 61퍼센트를 책임지는 파트너가 됐다.

오로라게임즈 개발이사 박태준이 처음 전화를 걸어온 건 석 달 전이었다.

“민준 씨, 소문 들었어요.”

강민준은 곧바로 알아챘다. “드림시스템즈 얘기 하시는 거죠.”

“독점 조항이 있다고 하던데.”

“아직 검토 중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박태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날카로웠다. “우리 차세대 칩에 NPU 통합이 들어갑니다. AI 추론 기능이요. 그게 드림시스템즈 계약서에 뭐라고 걸리는지는 알고 있죠?”

강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드림시스템즈는 세 달 전 접촉해왔다. 인공지능 추론 가속기 설계 의뢰였다. 계약 규모는 세빛의 연 매출 전체와 맞먹었다. 단일 계약으로는 창업 이래 최대였다. 세계 AI 가속기 시장이 2023년 이후 급격히 팽창하면서 — 한 업계 분석에 따르면 불과 2년 만에 시장 규모가 세 배를 넘었다 — 드림 같은 회사들이 설계 역량을 확보하려 눈이 돌아가 있었다.

문제는 계약서 12조 3항이었다.

“공급사는 계약 기간 및 그 종료 후 18개월 동안, 드림시스템즈의 사전 서면 동의 없이 경쟁 AI 연산 기술의 개발, 설계 지원, 기술 이전에 관여할 수 없다.”

‘경쟁 AI 연산 기술’의 정의는 별도 부속서 A에 실려 있었다. 강민준은 그 페이지를 다시 폈다.

“추론 연산, 신경망 가속, NPU 아키텍처, 또는 이에 준하는 기능을 포함하는 모든 반도체 설계.”

오로라게임즈의 차세대 칩은 NPU를 내장하게 돼 있었다.

강민준이 드림시스템즈 법무팀에 조항 수정을 요청한 건 두 달 전이었다. 게이밍 칩을 명시적으로 예외로 달아달라고 했다. 법무팀장 손재원은 일주일을 끌다가 답했다. “본사 리스크 정책상 불가합니다. 조항 변경 없이 계약이 진행되거나, 진행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날 이후 강민준은 밤마다 이 회의실에 앉았다.


이수연은 반대 의견을 품고 있지 않았다. 창업 파트너이자 CTO인 이수연은 오히려 강민준이 망설이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쪽이었다. 오늘 오후에도 미팅이 있었다. 이수연은 화이트보드에 숫자를 나열했다.

“드림시스템즈 계약이 들어오면 엔지니어 여덟 명을 더 뽑을 수 있어. AI 칩 시장 성장률은 게이밍의 다섯 배야. 오로라는 이미 내부 설계팀 채용 공고를 냈고. 결국 우리를 버릴 거야.”

강민준은 화이트보드를 바라봤다. 숫자들은 전부 옳았다.

“그 선급금 기억하지?” 강민준이 말했다.

이수연의 손이 잠깐 멈췄다.

창업 첫 해였다. 세빛이 두 번째 프로젝트 납기 직전에 자금이 바닥났을 때, 계약서에 도장도 찍기 전에 오로라게임즈 명의로 선급금 8천만 원이 입금됐다. 박태준이 본사를 설득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 돈이 없었으면 세빛은 그 달을 넘기지 못했다.

이수연은 마커를 내려놓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숫자는 알아.” 강민준이 말했다. “그냥 모르겠는 거야.”


회의실 밖에서 엔지니어 최호진이 지나가다 멈칫했다. 유리 너머로 강민준이 혼자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최호진은 입사한 지 반년이었다. 드림시스템즈 프로젝트 얘기는 팀 안에서 이미 돌고 있었다. 누가 흘렸는지는 몰랐지만, 엔지니어들은 대체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AI 칩 설계 경험은 이력서에 달랐다. 게이밍 칩과는 레벨 자체가 다른 스펙이었다.

최호진은 회의실 문을 노크할까 생각했다가 그냥 지나쳤다.

대표가 저 표정일 때는 말을 거는 게 아니었다.


박태준에게서 문자가 온 건 열한 시 반이었다.

“내일 점심 어때요. 얘기 좀 합시다.”

강민준은 문자를 한참 들여다봤다. 박태준이 먼저 만나자고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무슨 말을 꺼내려는 건지, 강민준은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

오로라게임즈가 차세대 칩 프로젝트를 다른 설계사에 넘기기 전에 통보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반대로, 세빛이 드림시스템즈 계약을 포기해줄 수 있는지 마지막으로 타진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그냥 오래된 파트너끼리의 밥 한 끼일 수도 있었다.

강민준은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세 번 지웠다. 네 번째에야 보냈다.

“좋습니다.”


드림시스템즈의 계약 서명 기한은 사흘 뒤였다. 손재원이 마지막으로 못 박은 날짜였다. “더 이상 연장은 없습니다.”

강민준은 계약서를 덮었다.

회의실의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창밖에서 새벽 배송 트럭 한 대가 지나갔다. 도시는 여전히 깨어 있었고, 세빛반도체 회의실의 시계는 새벽 두 시 십이 분을 가리켰다.

강민준은 펜을 집어 들었다.

서명란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사흘이었다. 박태준을 만나고, 손재원의 전화를 다시 받고, 이수연의 숫자를 한 번 더 들여다볼 시간.

그는 펜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창밖의 야경이 유리창에 흔들렸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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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고지 · 본 스토리는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AI 시스템이 자동 생성한 창작 서사(픽션)입니다. 등장 인물의 발언, 내심, 행위는 실제 사실과 다른 가공된 묘사이며, 실존 인물과 기업에 대한 평가, 비방, 사실 단정이 아닙니다. 투자 권유나 기업 평가가 아닙니다. 정정·삭제 요청은 nicepark0606@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면책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