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모래의 목소리
칠레 사막의 규산 채굴장에서 일하는 이민 노동자들이 글로벌 칩 부족이 자신들의 임금을 올리는 역설을 목격한다.
아타카마 사막의 새벽은 소리가 없다.
로드리고 파레데스는 헬멧 끈을 고쳐 조이며 채굴 현장 끝자락에 섰다. 페루 북부 고원에서 나고 자랐으나 칠레의 모래바람은 5년이 지나도 여전히 낯설었다. 코끝이 따끔했다. 곁에 서 있던 호세 키스페가 짧게 기침을 했다.
“오늘 아침 반장 얘기 들었어?”
로드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임금 올린대. 15퍼센트.”
침묵이 잠깐 흘렀다. 사막에서 15퍼센트는 숫자가 아니었다. 딸아이 산티아고 학교 교복값이었고, 어머니의 혈압약 석 달치였고, 매달 고향 쿠스코로 보내는 송금액의 두 달어치였다.
“왜?” 로드리고가 물었다.
호세가 작업복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스페인어 기사 출력물이었다. 헤드라인에 ‘반도체’라는 단어가 있었다. 로드리고는 천천히 읽었다. 세계 곳곳의 자동차 공장이 멈추고 있었다. 전자제품 납기가 수개월씩 밀리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칩 하나가 없어서. 그 칩을 만들려면 고순도 규산이 필요하고, 그 규산을 캘 수 있는 곳은 지구에서 손꼽혔다. 아타카마가 그중 하나였다.
기사를 돌려줬다. 발밑의 모래를 내려다봤다.
회백색이고 결이 고왔다. 매일 이 자리에 서 있었는데 이 모래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따라가 본 적이 없었다. 배에 실려 항구를 떠나고, 트럭에 실려 정제 공장으로 가고, 고온에서 녹아 잉곳이 되고, 얇게 잘려 웨이퍼가 되고, 거기 회로가 새겨져 칩이 되고, 그 칩이 박혀 어딘가의 화면이 켜진다. 누군가의 스마트폰. 누군가의 자동차 계기판. 어느 병원 중환자실의 모니터.
세상이 멈추고 나서야, 이 끝이 보인 것이다.
현장 소장 플로레스가 그달 초에 낯선 방문객을 맞은 것은 다들 알았다. 동양인 남성 두 명이 픽업트럭에서 내려 소장실로 들어갔고 두 시간쯤 뒤에 나갔다. 실광 측 구매 담당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계약 물량을 늘리고 싶다고. 그 대화가 어떤 경로를 거쳐 노무비 항목을 건드리고 15퍼센트가 되어 자신의 통장에 꽂히게 됐는지, 로드리고는 정확히 알 방법이 없었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논리였지만 그 회로가 자기 손 위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것을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작업 개시 사이렌이 울렸다.
삽을 들었다. 모래를 파는 감각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등이 뻐근하고 바람이 차고 먼지가 눈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나 이상하게 오늘은 손에 잡히는 것이 달랐다. 달라진 것이 모래인지, 자신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옆에서 호세가 다시 말을 꺼냈다.
“세상 어딘가 공장이 멈춰야 우리 월급이 오른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로드리고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삽질을 했다.
“이상하지. 근데 올랐잖아.”
호세가 낮게 웃었다.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대화였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삽을 움직였다.
저 멀리 안데스 능선이 아직 어스름에 잠겨 있었다. 해가 뜨면 규산 가루가 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인다. 그 빛을 보는 것이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라고 호세는 가끔 말했다. 로드리고는 그때마다 그냥 들었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의미로 그 말이 걸렸다.
해가 능선 위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모래가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