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의 선택
가공의 항공사 정비사가 발견한 작은 결함이 조직의 은폐와 맞닿으면서, 침묵과 보고 사이에서 갈등하는 하룻밤.
격납고, 자정
형광등이 깜빡이는 3번 격납고에서 한도영은 손전등을 왼쪽 날개 밑으로 밀어 넣었다. 스카이라인항공 7편, 인천발 방콕행 심야 편의 정비 마감 시한까지 남은 시간은 47분이었다.
균열은 처음엔 그림자처럼 보였다. 날개 스파와 동체가 만나는 접합부, 페인트 밑으로 머리카락 굵기의 선 하나가 리벳 열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도영은 손끝으로 표면을 훑었다. 매끄러웠다. 눈으로 봐야만 잡히는 흠집이었다.
그는 균열 게이지를 꺼내 대었다. 0.4밀리미터. 매뉴얼상 한계치는 0.3밀리미터였다.
숫자 하나 차이였다. 0.1밀리미터. 종이 한 장의 절반쯤 되는 두께.
도영은 무릎을 꿇은 채로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격납고 반대편에서는 야간 근무조 두 명이 다른 기체의 타이어를 교체하며 낮은 목소리로 잡담을 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심야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지난달 태평양 건너편에서 있었던 사고, 이륙 직후 동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승객들이 산소마스크를 쓴 채 비명을 지르던 그 영상이 여전히 뉴스 클립으로 돌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격납고 게시판 한쪽에는 그 사고 조사 보고서 요약본이 프린트되어 붙어 있었다. 누군가 빨간 펜으로 “우리도 이럴 수 있다”라고 적어 놓았다가 지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도영은 무전기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통화
“뭔데.” 정비반장 오형석의 목소리는 잠에서 덜 깬 듯 갈라져 있었다. 자정 넘어 걸려 온 전화였다.
“좌측 날개 스파 접합부에 균열이 있습니다. 게이지로 0.4밀리 나왔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3초, 4초.
“확실해? 니가 잘못 잰 거 아니고?”
“세 번 쟀습니다.”
”…씨발.” 낮은 욕설이 새어 나왔다. “07편, 승객 214명 탄 거 알지. 지금 취소하면 대체기 배정에 최소 여섯 시간이야. 방콕에서 연결편 있는 애들 다 놓친다.”
“압니다.”
“매뉴얼 한계 0.3이면 0.4는 아웃 오브 리밋이잖아. 근데 그거, 실제로 구조 강도 시험할 때 세이프티 마진이 몇 배로 잡혀 있는지 알아? 그 숫자 자체가 보수적으로 잡힌 거야. 0.1 초과했다고 날개가 부러지는 게 아니라고.”
도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형석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정비 매뉴얼의 한계치는 대개 실제 파손 강도보다 훨씬 낮게 설정된다. 안전 마진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식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마진이 얼마나 되는지, 이 특정 접합부의 재질 피로도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도영은 알 수 없었다. 아무도 정확히는 몰랐다. 마진이란 건 확률이지 보장이 아니었다.
“일단 사진 찍어서 나한테 보내. 내가 내일 아침 정비이사한테 직접 보고할게. 오늘 밤은 일단 클리어로 처리하고.”
“반장님, 그건 규정 위반입니다. 한계치 초과 항목은 발견 즉시 정비 불가 태그를 걸고 항공안전당국에 보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규정, 규정, 규정. 야 도영아.” 오형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 정비사 된 지 3년 됐지. 나는 18년 됐어. 이런 애매한 케이스 수백 번 봤다. 다 이렇게 넘어갔어. 아무 일도 안 났어.”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을 거란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보장이 어디 있냐고 묻는 새끼가 지금 214명 태운 비행기를 여섯 시간 늦추자는 거야? 그것도 보장 없는 확신으로?”
전화가 끊겼다.
정비고 뒤편
도영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뭔가를 태우고 싶었다. 그는 정비고 뒤 비상계단에 앉아 게이지 사진을 다시 들여다봤다.
3년 전, 그가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 교육 담당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비사의 서명 한 줄이 이 회사에서 가장 무거운 서류입니다. 그 서명 밑에 여러분 이름 석 자가 들어가는 순간, 비행기에 탄 사람들의 목숨이 그 서명에 걸립니다.” 그때는 그 말이 어딘가 연극적으로 들렸다. 지금은 그 말의 무게가 실제로 손바닥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동시에 다른 기억도 있었다. 입사 1년 차 때, 착륙장치 유압 라인에서 미세한 누유를 발견하고 보고했다가 “과민 반응”이라는 평가를 받은 일. 결국 그 항목은 다음 정비 주기까지 유예 처리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 도영의 인사고과에는 “신중함 과잉, 현장 판단력 보완 필요”라는 문구가 붙었다.
과민한 정비사와 안이한 정비사, 그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사고가 난 뒤에야 그 경계가 명확해진다는 사실이 도영을 가장 두렵게 했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항공안전당국의 익명 신고 채널을 검색했다. 화면에 접속 페이지가 떴다. 손가락이 입력창 위에서 멈췄다.
신고를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는 알고 있었다. 07편은 즉시 결항 처리되고, 항공기는 정밀 검사에 들어가고, 회사는 최소 수천만 원의 손실을 볼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내부 기록에 남을 것이며, 조사 과정에서 오형석과의 통화 내용도 드러날 수 있었다. 오형석은 18년 경력의 마지막을 이런 식으로 끝낼 수도 있었다. 그에게는 대학생 딸이 둘 있다는 걸 도영은 알고 있었다.
반대로 신고하지 않으면. 균열은 그대로 남는다. 0.4밀리미터. 어쩌면 다음 정비 주기까지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번 비행 중에 진행될 수도 있었다. 아무도 몰랐다. 그게 문제였다. 아무도 모른다는 것.
게시판
도영은 다시 격납고로 들어갔다. 게시판 앞을 지나며 그 사고 보고서 요약본을 다시 읽었다. 조사 결과, 문제의 부품은 사고 몇 주 전부터 이상 징후가 보고되었지만 “운항 스케줄 압박”으로 정밀 점검이 미뤄졌다고 적혀 있었다. 담당 정비사는 당시 상급자에게 우려를 전달했으나, “안전 마진 내”라는 답변을 받고 넘어갔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 담당 정비사의 이름은 보고서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사고 이후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항공사의 전체 기단이 한 달간 특별 점검을 받았다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었다.
도영은 게이지를 다시 손에 쥐었다. 그리고 07편 앞에 섰다.
기체는 조용했다. 정비등 아래 알루미늄 동체가 창백하게 빛났다. 그는 균열이 있는 접합부에 손을 얹었다. 차가웠다.
멀리서 활주로 조명이 깜빡이고, 이 시각 지상 관제탑에서는 07편의 게이트 배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90분 뒤면 214명의 승객이 탑승을 시작할 것이었다. 그중에는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가 있을 것이고, 오랜만에 손주를 보러 가는 노인이 있을 것이고, 출장 보고서를 노트북에 띄운 채 잠들 회사원이 있을 것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스파 접합부의 0.1밀리미터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 믿음을 지키는 것이 도영과 같은 사람들의 일이었다.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오형석이었다.
“결정했냐.”
도영은 대답하지 않고 무전기를 들여다봤다. 화면에는 통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1초, 2초, 3초.
그는 게이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정비 태그 용지를 꺼냈다. 펜을 쥔 손이 종이 위에서 잠시 멈췄다.
라디오에서는 여전히 그 사고 뉴스가 다른 소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앵커의 목소리가 무심하게, 다음 헤드라인을 읽기 시작했다.
격납고 시계는 새벽 1시 1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07편 출발까지 두 시간 47분이 남아 있었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