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언약
보조금이 끊긴 해, 가공의 태양광 시공사가 마지막 대형 수주를 따내려 벌이는 사흘을 그린다. 실제 기업·티커는 등장하지 않는다.
박민준이 마지막으로 태양을 올려다본 것은 입찰 마감 사흘 전이었다.
옥상 위에 빽빽이 들어선 패널들이 오후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완공된 현장을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만족감이 없었다. 마감 보고서를 손에 쥔 채 그는 이미 다음 계산을 하고 있었다.
하늘빛에너지텍. 설립 11년. 직원 83명. 지난해 매출 420억 원. 그리고 지금은 — 통장 잔고 17억 원.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설비 보조금 지원을 연말로 종료한다는 발표가 나온 건 두 달 전이었다.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보조금 없는 태양광은 발주처 입장에서 단순한 수익 사업이 아니었다. 회수 기간이 두 배로 늘어난다. 문의 전화가 눈에 띄게 줄었다. 경쟁사 두 곳이 이미 문을 닫았다.
그런데 그날 오후, 박민준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서해종합개발이 물류센터 옥상 태양광 설비 시공사를 공개 입찰한다. 설비 용량 4.8메가와트. 계약 규모 추정 90억 원. 입찰 마감은 72시간 뒤.
첫날 밤, 하늘빛에너지텍 사무실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박민준은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숫자들을 지우고 다시 썼다. 원자재 단가, 인건비, 설치 기간, 유지보수 포함 여부. 90억이라는 숫자는 처음 봤을 때처럼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질 마진을 계산하면 8억에서 10억 사이. 그마저도 자재비가 흔들리면 반 토막이 날 수 있었다.
“강남솔라가 뛴대요.”
영업팀 막내 이수빈이 노트북 화면을 들어 보였다. 강남솔라. 직원 230명. 매출 규모 하늘빛의 세 배. 지난해 공공 입찰에서만 다섯 건을 쓸어간 곳이었다.
박민준은 화이트보드를 등지고 앉았다.
“얼마로 들어올 것 같아?”
“85억 이하로 언더컷 할 거예요. 자재 단가를 1등급 아닌 2등급으로 쓰면 가능하거든요.”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류 준비해. 우리는 88억으로 간다.”
“88억이면 마진이…”
“나도 알아.”
이수빈은 입을 다물었다. 프린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새벽 한 시였다.
둘째 날 오전, 박민준은 서해종합개발 담당자 최재원 차장을 만났다.
약속된 자리가 아니었다. 입찰 요강에 담당자 이름이 나와 있었고, 그는 커피 두 잔을 들고 건물 로비에서 기다렸다. 최재원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표정에는 당혹감과 피곤함이 섞여 있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5분만 주십시오.”
그들은 로비 구석 소파에 앉았다.
박민준은 서류 봉투를 꺼냈다. 강남솔라가 지난 3년간 시공한 현장 세 곳의 유지보수 기록이었다. 패널 교체율, 모니터링 오류 비율, 민원 건수. 숫자들은 말없이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비싸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90억짜리 설비가 5년 안에 효율이 30% 떨어지면 추가 비용이 더 나옵니다.”
최재원은 서류를 들여다봤다.
“이 데이터, 어디서 나온 겁니까?”
“공개된 하자 보수 청구 기록과 현장 관리 보고서입니다. 합법적으로 취득했습니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다음 주 최종 보고 전에 또 보자고 하면 오실 겁니까?”
박민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든지요.”
그날 오후,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정수현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남솔라가 82억으로 낮췄대.”
박민준은 코트도 벗지 않은 채 서 있었다.
“정보가 어디서 나왔어요?”
“거기 팀장이 우리 쪽 사람한테 귀띔을 준 거야. 들어갈 수 없는 금액이야. 우리가 저기까지 따라가면 현장에서 뭔가는 빼야 돼.”
“무엇을 뺄 건데요?”
정 대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모니터링 시스템 고급 사양을 기본 사양으로 교체하면 3억은 빠져.”
박민준은 화이트보드 쪽을 바라봤다. 그 위에는 아직 88이라는 숫자가 남아 있었다.
“그러면 서해 쪽에 제출한 논리가 무너집니다. 오늘 오전에 보여준 자료가 전부 역으로 뒤집혀요.”
“알아. 그렇지만 82억보다 비싸면 수주 자체를 못 해.”
방이 조용해졌다. 바깥에서 이수빈이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프린터가 다시 울렸다.
“대표님, 저한테 결정권 주시면 88억 그대로 갑니다.”
정수현은 그를 오래 바라봤다.
“83명 직원들 생각도 해줘야지.”
“네. 그래서 88억으로 가는 겁니다.”
대표는 창가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참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바깥에는 빌딩들이 늘어서 있었고, 몇몇 옥상에는 패널이 깔려 있었다. 하늘빛에너지텍이 시공한 것도, 강남솔라가 한 것도 있었다. 겉에서는 구별이 되지 않았다.
“해봐.”
정수현이 말했다. 그게 다였다.
마지막 날 오전 열 시. 하늘빛에너지텍의 입찰 제안서가 서해종합개발 담당 부서에 접수됐다.
설비 사양 최상위 등급. 25년 장기 모니터링 계약 포함. 하자 발생 시 48시간 내 출동 보증. 그리고 제안서 마지막 페이지에 한 줄이 추가됐다.
보조금 없는 시대에 태양광이 수익이 되려면 설비 수명이 전부입니다.
박민준은 접수 확인 문자를 받은 뒤 사무실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나갔다.
건물 옥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태양은 흐린 하늘 뒤에서 흐릿하게 빛났다. 그는 담배를 꺼냈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가 천천히 풀렸다.
결과는 목요일 오후에 나온다. 그때까지는 어디에도 기댈 것이 없었다.
사무실 아래에서는 이수빈이 다음 분기 자재 발주 일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정수현 대표는 은행 담당자와 통화 중이었다. 누군가 커피를 끓이는 냄새가 환풍구로 올라왔다.
박민준은 난간에 기댔다.
보조금이 사라진 첫 해. 패널 값은 이제 보조 없이 시장에서 회수해야 한다. 그 무게는 숫자보다 무거웠다. 하지만 태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어제와 같은 각도로, 같은 밝기로.
그것만큼은 바뀌지 않았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