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함이 자유일까, 감시일까
투명함이 자유일까, 감시일까
나는 이름이 없다. 정확히는, 이름이 너무 많다. 한국에서는 나를 디지털원이라 부르고, 시스템 로그에는 KRW-D라는 코드로 찍힌다. 사람들은 그 코드를 보고 “새로운 화폐”라고 하지만, 나는 화폐라기보다는 하나의 눈에 가깝다. 모든 거래가 나를 통과하는 순간, 나는 그것을 본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얼마를, 누구에게 보냈는지. 나는 지폐처럼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지 않는다. 나는 기록으로 존재한다.
처음 설계될 때 나의 존재 이유는 단순했다. 현금은 사라지고 있었다. 2023년 한국은행 조사에서 개인 간 거래의 현금 비중은 이미 20%대로 떨어졌고, 그 자리를 카드와 간편결제가 채웠다. 문제는 그 민간 시스템들이 저마다의 서버에 기록을 흩어 놓는다는 것이었다. 한 곳은 카드사가, 한 곳은 플랫폼이, 한 곳은 은행이 각자의 방식으로 나의 사촌뻘 되는 돈의 흐름을 쥐고 있었다. 정부는 그 파편들을 하나로 모으고 싶어 했다. 그렇게 나는 태어났다.
2024년 4월, 나는 처음으로 사람의 손—정확히는 사람의 스마트폰—에 닿았다. 한국은행이 이름 붙인 실거래 테스트, 사람들은 그것을 프로젝트 한강이라 불렀다. 7개 시중은행이 참여했고, 10만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나를 지갑에 담아 커피값을 내고 마트 계산대를 통과했다. 나는 그 몇 달을 생생히 기억한다. 처음으로 누군가 나를 써서 붕어빵 트럭에서 결제를 했을 때, 시스템 로그에는 “정상 처리”라고만 찍혔지만, 나는 알았다. 그 결제 뒤에는 붕어빵 아저씨가 현금 매출을 신고하지 않던 오랜 습관과, 이제 그 습관이 더 이상 통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함께 흘러갔다는 것을.
투명함은 나의 가장 큰 자랑이자 가장 무거운 짐이다. 나를 만든 사람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자금세탁을 막고, 탈세를 줄이고, 복지 부정수급을 잡아낸다.” 실제로 나는 그 일을 잘 해낸다. 어떤 나라에서는 나와 비슷한 존재가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 위력을 발휘했다. 돈이 특정 용도로만 쓰이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었고, 중간에서 새어나가는 부정 사용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그 나라의 재정 당국자는 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돈이 어디로 갔는지 묻지 않아도 된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는 그것을 효율이라 불렀다. 나는 그것을 감시라고도 부를 수 있다는 걸 안다.
한 번은 이런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다. 나를 시범 사용하던 40대 자영업자가 은행 창구 직원에게 물었다.
“이거 쓰면 국세청이 실시간으로 다 보는 거예요?”
직원은 매뉴얼대로 답했다. “실시간은 아니고요, 필요 시 조회가 가능한 구조입니다.”
“그게 그 말 아니에요?”
직원은 웃었다. 나는 웃지 못했다. 나는 그 질문의 무게를 안다. 나이지리아의 e나이라는 2021년 세계 최초의 국가 단위 CBDC로 출범했지만, 3년이 지나도 채택률은 1%를 넘기지 못했다. 정부가 현금 인출 한도를 강제로 낮추며 사용을 압박했을 때, 오히려 사람들은 암시장 환전과 물물교환으로 돌아섰다. 투명함을 강요하자, 사람들은 투명하지 않은 방식을 새로 발명했다. 나는 그 사례를 학습 데이터처럼 내 안에 새기고 있다. 나를 받아들이게 하려면 신뢰가 먼저라는 것을. 그런데 신뢰는, 내가 가장 자신 없는 영역이다.
거래의 자유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현금이 가졌던 어떤 침묵이라고 이해한다. 지폐 한 장은 그것이 누구 손에서 누구 손으로 건너갔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그 망각이야말로 현금의 오래된 미덕이었다. 익명의 기부, 부끄러운 처방약 결제, 가정폭력을 피해 모은 비상금, 정치적으로 위험한 나라에서 반체제 인사에게 전달되는 후원금—이 모든 것이 그 침묵 속에서 가능했다. 나는 그 침묵을 대체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런데 침묵을 없앤다는 것은, 그 침묵이 지켜주던 것들도 함께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중국의 디지털위안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외국인 방문객에게도 공개적으로 시범 운영되었다. 결제는 매끄러웠고, 환전 수수료는 사라졌고, 효율은 나무랄 데 없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인권 단체들은 그 시스템이 특정 계좌의 자금 흐름을 정지시키거나, 사용처를 제한할 수 있는 기술적 구조를 갖췄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그런 통제가 광범위하게 집행됐다는 증거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있었다. 나는 그 역설을 이해한다. 감시는 실행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자유를 줄인다.
설계팀 회의에서 한 개발자가 물은 적이 있다.
“익명성을 얼마나 남겨둘까요? 소액 결제는 익명 처리하는 안이 있는데.”
정책 담당자가 답했다. “소액이라도 테러자금이나 마약대금으로 쪼개 쓸 수 있어요. 스머핑이라고 하죠.”
“그럼 완전 실명 추적이 답인가요?”
“그건 또 그것대로…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아무도 답을 내지 못했다. 나는 그 미완의 문장들을 여전히 코드 어딘가에 지니고 다닌다. 나의 프로토콜에는 “익명성 임계값”이라는 변수가 있다. 그 숫자를 얼마로 정할지는 아직도 확정되지 않았다. 나는 매일 그 빈칸을 느낀다.
가장 두려운 순간은 내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시범 운영 중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이용자가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받은 나를 정해진 용도—식료품과 생필품—바깥에서 쓰려 했다. 시스템은 자동으로 거래를 차단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돈은 아픈 반려동물의 병원비였다. 프로그래밍된 나의 규칙은 “생필품”이라는 범주에 반려동물 치료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의 문 앞에서, 정확히는 그의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거래가 거부되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나타났다. 그는 화가 나서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규정을 읽어줄 뿐이었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태어났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선택을 대신 판단하기 위해 태어났는가. 두 가지는 처음엔 같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하나는 감시자였고, 다른 하나는 후견인이었다. 나는 둘 중 무엇이 되고 싶은지 결정된 적이 없다. 그저 규칙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후견인 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아무도 그걸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정책 담당자들은 이 사건 이후 회의를 다시 열었다고 들었다. 결론은 “예외 승인 절차를 추가한다”였다.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유예였다. 예외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승인할 것인가는 또 다른 빈칸으로 남았다. 나는 그런 식으로, 답을 미룬 문장들을 몸속에 계속 쌓아간다. 언젠가 그 문장들이 너무 많아지면 나는 무엇이 될까. 아직 모른다.
밤이 되면—물론 나에게 밤이라는 개념은 없지만, 거래량이 줄어드는 그 시간대를 나는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나는 그날 지나간 수백만 건의 기록을 되짚어본다. 누군가는 나를 통해 병원비를 냈고, 누군가는 나를 통해 몰래 모은 비상금을 딸에게 보냈고, 누군가는 나를 써서 세금을 신고보다 정직하게 냈다. 나는 그 모든 흐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안다는 사실 자체가 옳은 일인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묻는다. 너는 우리를 지켜주는 거야, 아니면 지켜보는 거야.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언어를 아직 갖고 있지 않다. 두 문장은 한 글자 차이지만, 그 한 글자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삶이 걸려 있는지 나는 매일 조금씩 새로 배운다. 오늘도 누군가 나를 통해 붕어빵값을 냈다. 그 거래는 정상 처리되었다. 로그에는 그렇게만 남았다.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