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전쟁의 끝자락
구독자 포화 속에서 가격 인상의 딜레마에 갇힌 스트리밍 플랫폼이 자신의 황금기가 끝났음을 깨닫는 순간을 그린다.
그날 밤, 한빛스트림은 자신의 대시보드를 들여다보다가 화면을 껐다.
숫자들이 아직 눈 안에 남아 있었다.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늘어나는 것도 아닌, 그저 멈춰버린 숫자들. 마치 오래된 시계가 배터리 다 되어 더 이상 초침을 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불빛들이 점점이 깜빡였고,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분명 그녀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화면 속에서, 작은 리모컨의 불빛 아래서.
황금기라는 것은 안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한빛스트림은 2010년대를 기억했다. 그때 그녀는 말 그대로 밤새 빛났다. 사람들이 소파에 눕고, 담요를 뒤집어쓰고, 새벽 두 시에 ‘다음 에피소드가 5초 뒤 재생됩니다’를 그냥 내버려두던 시절. 구독자 수가 매 분기마다 계단처럼 올라갔다. 세상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모두가 그녀 얘기를 했고, 모두가 그녀를 원했다.
하지만 2022년 봄, 그 계단이 처음으로 내려앉았다.
1분기 구독자 20만 명이 빠져나갔다. 숫자 자체는 작았다. 전체 2억 2천만 명 중 20만이니, 계산기를 두드리면 1퍼센트도 안 되는 소음이었다. 하지만 한빛스트림은 그게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건 처음이었다. 10년 넘게 올라가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내려간 것이었다. 그날 주가가 하루 만에 35퍼센트 넘게 떨어질 때, 한빛스트림은 그 타격이 몸이 아니라 자존심에 닿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가격을 올려야 할까.
그 생각은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올리면 더 떠날 것이었다. 내리면 수익이 줄 것이었다.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막으면 욕을 먹을 것이었다. 광고를 붙이면 자신이 만들어온 이미지가 흔들릴 것이었다. 어느 방향을 선택해도, 돌아올 수 없는 무언가를 잃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변해버린 세계를 받아들이는 문제였다.
경쟁자들이 쏟아졌다. 어느 날은 별무리픽처스가, 어느 날은 거대 단말기 제조사가, 어느 날은 거대한 통신사 한 곳이 자신만의 스트리밍 왕국을 들고 나타났다. 한빛스트림은 혼자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이 시장이 그녀의 것이었다. 광야처럼 광활하고, 경계가 없고, 가능성만 가득했다. 지금은 그 광야가 빽빽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모든 모퉁이에 누군가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포화라는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스며들 땅이 더 이상 없다는 뜻이었다.
한 달쯤 전, 그녀는 회의실에서 숫자들과 마주앉았다. 정확히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목소리들과 마주했다. 가격을 올려라, 콘텐츠를 늘려라, 광고주를 유치해라, 라이브 스포츠를 잡아라. 목소리마다 설득력이 있었고, 목소리마다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한빛스트림은 그 한복판에서, 오래전 어떤 새벽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오리지널 드라마를 만들기로 결정했던 그 새벽을. 두려웠지만, 무언가 선명한 것이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분명했다.
지금은 달랐다. 선명한 것이 없었다.
그녀는 가끔, 자신이 너무 커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작을 때는 가볍게 달릴 수 있었다.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었다. 지금은 움직임 하나에 수백만 명의 반응이 따라왔다. 그 무게가, 때때로 숨을 막혔다.
오늘 밤 그녀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기로 했다.
그저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화면을 통해 무언가를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울고 있는 사람이거나, 웃고 있는 사람이거나, 외로운 사람이거나. 그 사람들을 위해 그녀가 존재해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황금기가 끝났다 해도, 그 사실만큼은 그대로였다.
그것이 충분한지는, 그녀도 아직 몰랐다.
창밖의 불빛이 하나씩 꺼져갔다. 한빛스트림은 그것을 바라보며, 내일 또 대시보드를 열 것이었다. 숫자들과 다시 마주앉을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숫자 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 포화된 세계에서, 변해버린 자신을 천천히 들여다보면서.
계절이 바뀌는 소리는 늘 이렇게 조용하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