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의 악순환: 스트림 홍수 속의 가입자
한 달에 열 개 구독 서비스를 쓰지도 않으면서 내는 고객의 절망적 일상과 더 많은 가입을 노리는 플랫폼의 궁리를 풍자한다.
월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의식이 있다. 카드 명세서를 펼치는 일이다.
진우는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커피 한 잔, 점심, 편의점. 거기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다음 줄부터가 문제였다. “나루스트림 월정액.” 사실 저번 달에 딱 한 번, 잠들기 직전에 첫 화면을 켰다가 뭘 볼지 고르다가 그냥 잠든 게 전부였다. 그 아래에는 “음향정원 프리미엄”이 있었다. 출퇴근길에 쓰겠다고 올해 초에 업그레이드한 서비스였는데, 재작년부터 버스 대신 걸어다니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업그레이드할 때는 잊고 있었다.
명세서는 계속됐다. “책벌레클럽 스탠다드.” 매달 책 한 권 이상 읽으면 본전이라는 논리로 가입했다. 아직 본전을 뽑은 달이 없었다. “운동마당 연간권 월할.” 작년 1월 1일, 새해 결심의 산물이었다. 연간권이라 해지도 못 했다. 헬스장은 집에서 걸어서 이십 분인데 지금까지 세 번 갔다. 세 번이면 방문당 계산하면 꽤 비싼 세션이었다.
전부 더하자 숫자가 나왔다. 진우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사실 이 상황은 진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각종 소비자 조사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수치가 하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구독 중인 서비스의 숫자를 평균 절반 이하로 과소 추정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열 개를 내고 있으면서 네댓 개쯤 된다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명세서 어딘가에서 매달 조용히 빠져나가는 중이다.
플랫폼들은 이 사실을 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 사실을 설계했다.
“나루스트림”을 예로 들면, 가입 버튼은 화면 정중앙에 크게, 해지 버튼은 설정의 설정의 하위 메뉴 안에 작게 있다. 해지를 누르면 “잠깐만요, 한 달 무료 드릴게요” 팝업이 뜬다. 여기서 흔들리지 않고 “그래도 해지”를 누르면 “지금 이 콘텐츠는 여기서만 볼 수 있어요”라며 썸네일 다섯 개를 보여준다. 하나가 꽤 재미있어 보인다. 진우는 그날 저녁 그 콘텐츠를 봤다. 재미있었다. 해지는 다음 달로 밀렸다.
“음향정원”은 더 고전적인 방법을 썼다. 해지 신청을 하면 이삼 일 후에 “당신이 좋아할 만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어요”라는 이메일이 온다. 그리고 그 플레이리스트는 진짜로 취향에 맞았다. 진우는 잠깐 흔들렸다. 알고리즘이 이렇게 자기를 잘 아는데, 이걸 끊는 게 맞나. 그러면서 또 한 달이 갔다.
진우는 다시 명세서를 봤다. 이번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 감정 없이 숫자들을 살폈다. 마치 남의 집 청구서를 구경하듯이. 그렇게 보니까 좀 달랐다. 이 숫자들이 전부 “언젠가 볼 것들”, “언젠가 읽을 것들”, “언젠가 운동할 것들”의 합계였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자신에게 매달 청구되는 비용이었다. 미래의 진우는 독서를 즐기고, 운동을 하고, 훌륭한 음악 취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 미래의 진우가 실현되는 날까지 현재의 진우가 대신 내는 구조다.
진우는 해지 앱을 검색했다. 구독 관리 앱이라는 게 있었다. 별점 4.7. 다운로드했다. 설정하고 나니 알림이 왔다. “진우님의 구독을 최적화하려면 프리미엄 플랜을 이용해 보세요.”
월정액이었다.
진우는 앱을 닫았다. 창밖을 잠깐 바라보다가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구독 서비스로 배달되어 아직 뜯지 않은 밀키트 두 박스가 있었다. 유통기한은 내일까지였다.
어떻게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저 밀키트 중 하나는 오늘 저녁에 뜯어야 할 것 같았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