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재편의 시작
중국 의존성 탈피를 위해 베트남·인도로 공급망을 이전하는 제조사의 고민과 리스크.
하노이행 비행기가 인천공항 활주로를 벗어나는 순간, 이재현은 좌석 등받이에 조용히 몸을 기댔다. 창밖으로 아침 안개가 깔린 서해가 느리게 흘러갔다. 그는 노트북 화면에 띄워둔 숫자들을 다시 한번 훑었다. 중국 공장 가동률 68퍼센트. 납기 지연 14퍼센트. 그리고 올해 1분기, 미국 수입 관세 인상으로 인한 원가 상승분 — 완제품 한 대당 달러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22달러.
그 숫자가 다온테크를 3년째 짓누르고 있었다.
이재현이 다온테크에 대표이사로 부임한 것은 2022년이었다. 당시 회사는 중국 광저우 인근에 주력 공장을 두고 중저가 생활가전 부품을 위탁 생산하는 중견 전자 제조사였다. 납기는 빨랐고 단가는 경쟁력이 있었다. 문제는 그 모든 이점이 단 하나의 지리적 조건 위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이 아니면 안 됩니다.” 운영본부장 박수연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말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 말이 금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2023년 이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관세 인상과 무역 규제가 반복되자, 다온테크처럼 중국 단일 공장에 의존하던 중소 제조사들은 비슷한 딜레마에 놓였다. 리스크를 분산하자니 비용이 폭등하고, 그대로 버티자니 언제 또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실제로 이 시기 동남아시아로 생산 기지를 이전한 전자 부품 업체들의 수가 전년 대비 30퍼센트 이상 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공포에 의한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합리적 계산이었는지 — 이재현은 아직도 확신이 없었다.
이재현이 처음 공급망 다변화를 꺼냈을 때, 박수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대표님, 지금 광저우 공장을 반만 옮겨도 초기 투자만 삼십억은 넘습니다. 베트남 전기 인프라가 아직 불안하고, 숙련공도 부족해요. 인도는 물류비가 두 배입니다.”
“나도 알아요.” 이재현은 낮고 평평한 목소리로 답했다. “근데 관세가 또 오르면 우리 마진이 얼마나 남겠어요.”
박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 자체가 대답이었다.
하노이 인근 빈증성의 공장 부지는 예상보다 규모가 작았다. 안내를 맡은 현지 파트너 응우옌이 환하게 웃으며 면적을 설명했지만, 이재현의 눈은 부지 너머 허허벌판에 꽂혀 있었다.
“물류 동선이 문제야.” 그는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박수연이 옆에서 받아쳤다. “항구까지 거리가 생각보다 멉니다. 컨테이너 하역하고 공장까지 들어오는 시간만 이틀은 잡아야 해요.”
“인도는요.”
박수연이 태블릿을 꺼내 숫자를 불렀다. “뭄바이 외곽에 후보지 두 곳 있는데, 한 곳은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고 다른 한 곳은 토지 허가가 아직 미결입니다. 둘 다 실사까지 최소 여섯 달.”
이재현은 부지를 한 바퀴 천천히 걸었다. 열기가 발바닥을 뚫고 올라왔다. 빗기운도 없는 건기였는데 이마에 땀이 맺혔다.
뒤쪽에서 응우옌이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화면에는 이미 운영 중인 인근 공장의 전경 사진이 가득했다. “이 구역에 들어온 제조사들은 3년 안에 가동률 80퍼센트를 넘겼습니다.” 그는 유창하지 않은 한국어로 말했다. “처음이 제일 힘들어요.”
이재현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응우옌의 얼굴에는 경험이 축적된 사람 특유의 차분함이 있었다. 그것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이건 옮기는 게 아니야.” 이재현은 부지를 떠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새로 짓는 거야.”
귀국 후 이재현은 이사회 앞에 서서 세 가지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첫 번째는 중국 공장 유지, 관세 리스크 흡수. 두 번째는 베트남 단독 이전, 3년 계획. 세 번째는 베트남과 인도 병행 투자, 5년 장기 플랜.
“첫 번째는 시한폭탄을 안고 가는 겁니다.” 그는 말했다. “두 번째는 리스크를 줄이지만 새로운 종류의 리스크를 만들어요. 세 번째는 비용이 가장 크지만 — 아마 가장 진지한 대답일 겁니다.”
이사 한 명이 손을 들었다.
“5년이면 회사 체질 자체가 바뀌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기존 납기와 품질을 지킬 수 있습니까.”
이재현은 잠시 말을 멈췄다. 프레젠테이션 화면 뒤로 빔프로젝터 냉각팬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모릅니다.” 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지킬 수도 있고, 못 지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안 바꾸면 — 3년 뒤 우리가 어디 있을지도 저는 모릅니다.”
회의실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결론은 당일 나오지 않았다.
박수연은 그날 저녁 늦게 이재현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그는 혼자 창밖의 서울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표님,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물어봐요.”
“지금 이 결정 — 두렵지 않습니까.”
이재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가에 조용한 웃음을 올렸다.
“두려운 게 당연하죠. 두렵지 않으면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거니까.”
박수연은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문을 닫으면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틈새를 마지막으로 한 번 바라봤다. 그 안에서 이재현은 다시 숫자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공급망은 단순히 지도 위의 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선택이, 어느 계절에, 어느 땅 위에 내려앉는 무게였다. 그리고 그 무게는 결정을 내린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베트남 빈증성 부지에는 이미 응우옌의 측량팀이 들어가 있었다. 뭄바이 허가 신청 서류는 법무팀이 검토 중이었다. 중국 광저우 공장은 오늘도 가동률 68퍼센트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온테크 이사회 최종 결의는 두 주 뒤로 예정되어 있었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