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발트 카르텔
한 광산 일가의 독점이 녹색 전환을 인질로 잡다
나는 코발트다. 원소번호 27. 옛날에는 도자기에 푸른 물을 들이는 안료였고, 요즘은 배터리 안에 산다. 전기차 한 대에 내가 십수 킬로그램쯤 들어간다. 양극이 오래 버티려면 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다들 나를 찾는다. 문제는 내가 어디에 누워 있느냐다.
내 몸의 태반은 지구 반대편, 붉은 흙이 두터운 어느 나라 땅속에 잠들어 있다. 그 땅 위에는 하늘골 가문이 산다. 가문이라고 해도 사실은 광산 몇 개와 중개인 수십 명, 그리고 장부 한 권이 전부다. 하지만 장부를 쥔 하늘골 노인의 목소리만큼은 광산 갱도보다 깊게 울렸다.
“파랑은 줄고, 사람은 늘지. 값은 내가 올리지 않아도 오른다.”
노인은 매일 아침 저울 앞에서 이 말을 하고 차를 마셨다. 차는 늘 식어 있었다. 말이 길어서였다.
어느 해 노인은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수출 문을 석 달 닫았다. 정확히는 ‘쿼터’라는 이름의 낮은 문턱을 세웠다. 실제로 있었던 일과 닮았다. 큰 광산국이 코발트 수출을 막거나 제한하자 시세가 며칠 만에 출렁였고, 세계의 배터리 공장들은 일제히 내 이름을 검색했다. 나는 조금 우쭐했다. 솔직히 인정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간절히 불러준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때 새솔이 찾아왔다. 새솔은 ‘녹색 전환’이라는 이름의 젊은 여자였다. 운동화 끈은 풀려 있었고 어깨에는 지구 모양 배낭을 메고 있었다. 새솔은 노인 앞에 앉아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어르신, 저는 당신 광산이 없으면 한 걸음도 못 가요.”
“알지.”
“그런데 제가 못 걸으면 어르신이 판 파랑도 갈 데가 없어요. 창고에 쌓일 뿐이에요.”
노인은 대꾸하지 않고 저울만 만졌다. 나는 갱도 안에서 숨을 죽였다. 이 대목이 이 이야기의 역설이었다. 지구를 살리겠다는 행렬이 한 집안의 장부 앞에 줄을 섰고, 그 집안은 줄이 길수록 문을 좁혔다. 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문이 아니라 담장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노인만 몰랐다.
담장 너머에서는 이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철과 인산으로 만든 얌전한 배터리가 나 없이도 달리기 시작했고, 망간 친구들은 배합을 바꿔 내 몫을 조금씩 덜어갔다. 무엇보다 낡은 배터리가 폐차장에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거기서 파랑이 다시 나왔다. 나, 즉 어제의 나였다.
나는 그 마지막 장면이 제일 재미있었다. 다 쓴 배터리 속에서 풀려난 내가 새 배터리로 들어갈 때, 하늘골 노인의 장부에는 없는 숫자로 기록된다. 광산에서 캔 것도 아니고 누가 허락한 것도 아닌 파랑이다.
어느 날 새솔이 다시 노인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신발 끈이 묶여 있었다. 노인은 새 찻잔에 뜨거운 차를 내놓았다. 이번에는 말이 짧았던 모양이다.
“값이 좀 내렸더구나.”
“네. 요즘은 파랑이 여기저기서 나와요.”
노인은 한참 저울을 바라보았다. 접시 한쪽에는 그의 파랑이, 다른 쪽에는 돌아온 파랑이 놓여 있었다. 저울은 오랜만에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가만히 떨고 있었다.
나는 땅속에서도, 배터리 속에서도, 폐차장 선반 위에서도 파랗다.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다. 이제야 사람들이 그걸 알아본 것 같다. 차는 아직 따뜻했고, 새솔은 천천히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