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7 · Vol. III · No. 44
Farm agriculture crops wheat field
Openverse (CC0)
스릴러
GLOBAL

빛의 경제: 수직 농장의 마지막 계절

급증하는 전력비와 하락하는 채소 가격의 협박 속에서, 수직 농장 CEO가 마지막 자금 유치 앞에 내몬다. 성공 아니면 파산, 그 사이의 결정들.

· 2분 읽기 · #스토리#스릴러

어둠이 내려앉은 지 오래됐다. 강민재는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재배동을 내려다봤다. 열두 층짜리 선반마다 LED 패널이 식물성 빛을 쏟아냈다. 연두색, 분홍색, 흰빛.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지금 이 회사를 죽이고 있었다.

신록팜이 광주 외곽 산업단지에 제1 재배동을 세운 건 사 년 전이었다. 흙 없이 공기 중에 채소를 키운다는 개념이 투자자들을 흥분시켰다. 물 사용량 기존 농업의 오분의 일. 농약 없음. 계절 무관. 강민재는 그때 슬라이드 한 장 한 장이 완벽하다고 믿었다. 지금 그 슬라이드들은 책상 서랍 깊숙이 처박혀 있었다.

전기요금 고지서가 모니터 화면 가득 채웠다. 지난달 청구액. 두 달 전 것과 비교하면 숫자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산업용 전기 요율이 올 들어 두 차례 조정됐고, 재배동 세 개를 풀가동하는 신록팜은 그 충격을 정면으로 받았다. LED와 공조와 양액 펌프. 쉬지 않는 기계들. 전기가 멈추면 채소가 멈추고, 채소가 멈추면 회사가 멈췄다.

문제는 전기만이 아니었다.

도매 시장에서 상추 킬로그램당 단가가 올봄부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수입 물량이 늘었다. 국내 노지 출하량도 예상보다 많았다. 신록팜의 프리미엄 포지셔닝이 버텨주기를 기대했지만, 마트 바이어들은 냉정했다. 납품가를 낮추면 거래를 유지하고, 아니면 다른 공급처를 찾겠다고 했다. 강민재는 납품가를 낮췄다. 대신 마진이 사라졌다.

태평양 건너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더 나빴다. 작년 이맘때, 비슷한 사업 모델로 수천억 원 투자를 받았던 업체들이 잇따라 문을 닫았다. 에너지 비용과 수확량의 산수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강민재는 그 뉴스를 읽으면서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신록팜은 한국 시장을 잘 알고, 계약 납품처가 있고, 운영 노하우가 축적됐다고. 그런데 사 개월이 지난 지금, 통장 잔고는 그 확신을 비웃고 있었다.

내일 오전 열한 시. 태양벤처스와의 마지막 미팅.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걸렸다. 강민재는 커피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식어 있었다. 언제 식었는지도 몰랐다.

투자 제안서는 완성돼 있었다. 신기술 조명 시스템 도입으로 전력 효율 삼십 퍼센트 향상. 프리미엄 식재료 직납 계약 확대. 동남아 수출 가능성. 숫자들은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강민재는 알고 있었다. 그 숫자들이 서 있는 전제가 흔들린다는 것을. 전기요금이 한 번 더 오르면, 납품 단가가 한 번 더 내리면, 그 제안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배동 쪽 통로로 걸어갔다. 자동문이 열리면서 차가운 공조 공기가 쏟아졌다. 선반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어린 로메인이 뿌리를 뻗고 있었다. 청경채가 잎을 넓혔다. 자신이 설계한 이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문제는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잘 자랐다. 이 채소들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강민재는 가장 낮은 선반 앞에 쭈그려 앉았다. 뿌리가 양액 속에 잠겨 있었다. 보이지 않는 실처럼 빛을 먹고 자라는 것들. 내일 미팅이 어떻게 되든, 이 뿌리들은 오늘 밤도 자라고 있을 것이었다.

그가 언제 일어섰는지, 언제 사무실로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제안서를 다시 펼쳤다. 뭔가 한 줄을 고쳐야 할 것 같았다.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는 아직 몰랐다.

본 글은 허구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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