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화폐
경제 침체로 고군분투하던 시골 마을이 자체 디지털 화폐를 만들면서 일어나는 엉뚱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들.
솔밭마을에 새 화폐가 태어난 날, 이장님은 이름을 짓느라 사흘을 보냈다. 결국 ‘솔잎’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솔잎은 태어나자마자 겁이 났다. 마을 편의점은 문을 닫았고, 젊은이들은 떠났고, 지갑에는 먼지뿐이었다.
“저, 진짜 돈 맞아요?” 솔잎이 마을 회계 시스템인 장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장부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돈이 뭐겠니. 누가 받아주면 돈이지.”
첫 거래는 엉뚱했다. 순이 할머니가 깻잎 한 묶음을 팔고 솔잎 열 개를 받았다. 할머니는 그 솔잎으로 철수 아저씨네 이발소에서 파마를 했다. 철수는 그 솔잎으로 다시 순이네 참기름을 샀다. 솔잎은 하루에 같은 골목을 일곱 바퀴 돌았다. “저 어지러워요.” “그게 돌고 돈다는 거란다.”
사고도 있었다. 누군가 솔잎 오십 개를 치르고 닭 한 마리를 샀는데, 닭이 주인 몰래 담을 넘어 도망쳤다. 마을 단톡방은 밤새 시끄러웠고, 장부는 아침에 판결문을 올렸다. “환불 불가. 닭은 자유.” 솔잎은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이 마을 전체로 번졌다.
한 달 뒤, 문 닫았던 편의점에 불이 켜졌다. 솔잎으로 월세를 받아도 된다는 소문에 주인이 돌아온 것이다. 도시로 나간 막내딸은 주말마다 솔잎을 충전해 갔다. 할머니의 깻잎 값을 조금 더 쳐주려는 마음이었다.
솔잎은 이제 묻지 않는다. 밤마다 골목을 돌며 집집의 창문을 하나씩 세어볼 뿐이다. 불 켜진 창이 하나 늘어난 밤, 솔잎은 처음으로 자기가 얼마짜리인지 잊어버렸다.
본 글은 정보 제공 목적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