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7 · Vol. III · No. 44
Retail shopping store supermarket aisle
Openverse (CC0)
액션
GLOBAL

지도 위에 없는 마을의 이야기꾼

관광 플랫폼 창업자가 낙후 지역의 주민들을 로컬 가이드로 연결하며, 소외된 경제 공동체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다.

· 4분 읽기 · #스토리#액션

지도 앱에서 그 마을을 검색하면 파란 점 하나 없이 회색 면만 나왔다. 행정구역 이름은 있는데 가게도, 식당도, 사진도 없었다. 나는 그 회색 면 앞에서 삼 년을 보냈다.

내 회사는 ‘고샅지기’다. 마을 골목을 뜻하는 옛말에서 따왔다. 하는 일은 단순하다. 관광지도에 없는 동네의 주민을 가이드로 등록하고, 여행자와 이어 주고, 값의 팔 할을 그 주민에게 돌려준다. 처음 투자자에게 이 설명을 했을 때 돌아온 말은 “그래서 그 동네에 볼 게 뭐가 있죠?”였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마을에 직접 가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갔다. 행정안전부가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한 여든아홉 곳 중 하나, 산 두 개를 넘어야 나오는 ‘비탈골’이었다. 버스는 하루 세 번이었고, 마지막 차는 오후 네 시 사십 분에 끊겼다.

“서울서 왔수? 여기 뭐 볼 게 있다고.”

정류장 앞에서 만난 할머니가 내게 한 첫마디였다. 같은 질문이었다. 이번엔 나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보여 주시면 알겠죠.”

할머니는 혀를 차더니 앞서 걸었다. 오이풀이 우거진 돌담길, 빨래터 바위에 파인 홈, 육십 년 된 방앗간의 낡은 벨트. 그분이 말을 얹자 풍경이 켜졌다. “저 홈은 시집온 새댁들 방망이질이 판 거유. 이 바위가 우리 동네 일기장이야.” 나는 수첩에 받아 적다가 손이 떨렸다. 파란 점 천 개가 해 주지 못할 일을, 이 사람은 걸으면서 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이름은 봉순이었다. 첫 번째 가이드 등록자가 되었고, 처음 받은 돈은 일 만 이천 원이었다. 내가 인증 문자를 보내자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던 그분이 말했다. “이게 내 이름으로 들어온 거유? 영감 이름 말고?”

그 한마디가 우리 회사의 사업계획서보다 오래 남았다.

일이 커진 건 그다음부터였다. 방앗간집 아들이 사진을 맡았고, 폐교의 마지막 졸업생이던 사십 대 남자가 야간 별 관측 코스를 짰다. 이듬해 봄에는 등록 가이드가 서른한 명이 되었다. 평균 연령은 예순아홉이었다. 앱을 못 쓰는 분들을 위해 큰 글씨 버전과 전화 예약 창구를 따로 만들었는데, 개발자들은 그걸 ‘봉순 모드’라고 불렀다.

물론 낭만만 있던 건 아니다. 투자자는 이 구조로는 규모가 안 나온다고 했고, 나는 규모가 안 나오는 대신 이탈도 없다고 대꾸하다 회의실 문을 닫고 나왔다. 가이드 수수료율을 낮추라는 압박도 받았다. 나는 숫자 앞에서 자주 작아졌다. 그래도 정산표에 찍히는 ‘비탈골 마을 합계’ 칸이 매달 조금씩 길어지는 걸 보면 다시 버텼다.

그리고 그해 칠월, 비가 왔다.


오후 두 시, 서울에서 온 열한 명의 여행자가 비탈골에 있었다. 대학 동아리와 부모 동반 가족들이었다. 가이드는 봉순 할머니와 별 관측 담당 준호 씨였다. 나는 정산 시스템 점검 때문에 사무실에 있다가 알림 하나를 받았다.

재난문자: 비탈골 진입로 인근 산사태 주의보.

곧이어 준호 씨의 전화가 왔다. 빗소리에 말이 반쯤 묻혔다.

“대표님, 아랫길 막혔어요. 흙이 내려와서 버스가 못 올라와요. 지금 애들하고 어르신들까지 열한 명인데.”

“기다리세요. 제가 119에 연락하고……”

“그게, 신호가 안 잡혀요. 윗마을 기지국이 나갔나 봐요. 이 통화도 마지막일지……”

뚝. 끊겼다.

나는 차 키를 잡았다. 도착까지 세 시간이었고, 가는 동안 지도 앱은 비탈골 쪽을 계속 회색으로 보여 주었다. 길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없다는 뜻의 회색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 색이 무서웠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다. 내 입장에서는 들은 그대로 옮길 수밖에 없다.

흙이 쏟아진 뒤 봉순 할머니는 일행을 마을회관 쪽으로 몰았다. 큰길이 아니라, 지도에 없는 골목이었다. 담 사이를 비집고, 밭두렁을 가로질렀다. “여긴 비 오면 물이 이쪽으로 안 가. 우리 시어머니가 이리로 피신 다녔어.” 일행 중 한 명이 휴대폰 지도를 켰지만 현위치 점은 허공에 떠 있었다. 할머니는 그 화면을 보지도 않았다.

준호 씨는 마을회관에서 노인회 어른들과 함께 이불과 라면 상자를 풀었다. 위성전화는 없었지만 이장 댁에 낡은 무전기가 있었다. 사십 년 묵은 것이었다. 준호 씨가 안테나를 잡고 지붕에 올라갔다. 치지직, 치지직. 잡음 속에서 겨우 건너편 능선 마을의 목소리가 걸렸다. “여기 비탈골, 여기 비탈골, 열한 명 안전.” 그 소리가 능선을 두 번 건너 소방서로 갔다.

회관은 밤새 시끄러웠다. 어르신들은 부침개를 부쳤고, 대학생들은 처음 들어 보는 마을 이야기에 귀를 열었다. 빗소리는 지붕에서 둥둥, 둥둥 울렸다. 누군가 말했다고 한다. 이 동네가 지도에 없다는 게 신기하다고.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새벽 네 시가 넘어 내 차가 막힌 길 앞에 닿았을 때, 구조대가 먼저 와 있었다. 흙더미 너머에서 손전등 불빛이 흔들렸다. 나는 비를 맞으며 서 있다가, 마을회관으로 올라가는 구조대원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는 한 번도 멈칫하지 않았다. 앞서 걷는 건 봉순 할머니였다.

아침이 되자 비가 그쳤다. 열한 명은 다친 데 없이 회관 마루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표가 이 비에 뭐 하러 왔수. 길도 모르면서.”

나는 웃으려다 눈물이 났다. 할머니는 못 본 척 국그릇을 내밀었다.


그 일이 기사가 된 건 아니다. 작은 지역 신문에 세 줄이 실렸을 뿐이다. 하지만 이후 우리 앱에는 조용한 변화가 생겼다. 예약 후기란에 이런 글이 늘었다. 가이드님이 길을 알아서 마음이 놓였어요. 우리가 팔던 것은 풍경이 아니라 길을 아는 사람이었다는 걸, 나는 그제야 문장으로 이해했다.

정산표의 ‘비탈골 마을 합계’는 그해 가을 처음으로 천만 원을 넘었다. 방앗간집 아들은 그 돈으로 낡은 벨트를 바꿨고, 준호 씨는 무전기 옆에 중고 위성 단말기를 한 대 놓았다. 봉순 할머니는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고 별말 없이 지갑에 통장을 넣었다. 다음 날 아침, 할머니가 버스 정류장 팻말 밑에 손글씨를 붙여 놓은 걸 보았다. 비탈골 안내: 봉순 010-XXXX-XXXX

나는 아직도 회색 면을 열어 본다. 삼 년 전과 달리 거기엔 파란 점이 마흔두 개 찍혀 있다. 점 하나하나가 이름 있는 사람이다. 점은 늘었지만, 지도가 마을을 다 담았다고는 아직 말하지 못하겠다. 할머니의 골목은 여전히 어느 화면에도 없다.

어쩌면 그래도 되는 건지 모른다. 화면에 없는 길을 아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 전화가 오는 한. 오늘도 휴대폰이 울린다. 비탈골 번호다. 치지직, 하는 잡음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말한다.

“대표, 거기 서울 날씨는 어떻수? 이쪽은 별이 잘 뵈는데.”

나는 창밖을 올려다본다. 빌딩 사이로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대답한다. 여기도 보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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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고지 · 본 스토리는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AI 시스템이 자동 생성한 창작 서사(픽션)입니다. 등장 인물의 발언, 내심, 행위는 실제 사실과 다른 가공된 묘사이며, 실존 인물과 기업에 대한 평가, 비방, 사실 단정이 아닙니다. 투자 권유나 기업 평가가 아닙니다. 정정·삭제 요청은 nicepark0606@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면책조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