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제조사의 재생 도전
폐배터리를 자산으로 전환하는 순환경제 기업의 따뜻한 성공담
낡은 배터리는 무덤이 아니었다. 적어도 ESNG의 눈에는.
창고 안은 어두웠다. 철제 선반 위에 퇴역한 리튬 팩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어느 완성차 공장에서 실려 온 것들이었다. 전기차 주행 거리 인증 기준인 초기 용량의 80퍼센트를 밑돌기 시작한 순간, 그것들은 ‘폐배터리’라는 딱지를 달았다. 자동차에서는 끝이었다.
ESNG는 그 딱지를 뜯어냈다.
회사의 정식 이름은 길었지만, 현장 엔지니어들은 그냥 ‘에스’라고 불렀다. 에스는 원래 조용한 회사였다. 본사 건물은 인천 산업단지 끝자락, 표지판도 작았다. 그러나 2023년 가을, 국내 최대 완성차 그룹과 폐배터리 전량 인수 계약을 체결하면서 에스의 이름이 처음으로 산업 뉴스 1면에 올랐다. 계약 규모는 5년간 누적 2만 톤. 숫자보다 더 큰 것은 그 안에 담긴 전제였다. ‘폐기물은 자산이 될 수 있다.’
에스의 첫 번째 재생 라인이 가동된 날, 컨베이어는 천천히 돌았다.
팩에서 분리된 셀들은 검사대 위에 놓였다. 충·방전 사이클을 측정하는 기계가 윙윙거렸고, 잔여 용량이 60퍼센트를 넘는 셀들은 왼쪽으로, 그 이하는 오른쪽으로 흘렀다. 왼쪽은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으로, 오른쪽은 원료 재순환 라인으로 향했다.
자동차 배터리로는 낙제였지만, 태양광 패널 옆에 설치되는 상업용 ESS에는 충분했다. 주택이나 공장 지붕의 낮 발전량을 밤까지 저장하는 일. 거기서 요구되는 기준은 달랐다. 에스는 그 차이를 수익으로 바꾸는 법을 3년에 걸쳐 터득했다.
첫 분기 재생 배터리 ESS 출하량이 150MWh를 넘긴 날 저녁, 에스의 생산 총괄 박 부장은 창고 입구에 서서 반쯤 찬 야적장을 바라봤다. 다음 달이면 또 트럭들이 들어올 것이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지 않았다. 금연한 지 2년이 넘었다. 대신 손끝으로 선반 모서리를 두드렸다. 철이 낮은 소리를 냈다.
“아직 반은 남았네.”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창고가 들었다면 뭐라고 답했을까. 아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창고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끝이라고 불렸던 것들이 여기 와서 다시 무언가가 된다는 사실을.
에스의 다음 라인 증설 공사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